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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국경 수비 태업에… 8000명이 스페인령까지 1.6㎞ 헤엄쳤다

모로코의 국경 수비 태업에… 8000명이 스페인령까지 1.6㎞ 헤엄쳤다

홍희경 기자
홍희경 기자
입력 2021-05-22 07:00
업데이트 2021-05-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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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갈등 일어나자 불법 이민 단속 손 놓은 모로코
“교육·일자리 원해”… 아프리카인들의 목숨건 유럽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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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한 미성년 남성이 바다를 건너면 입을 마른 옷을 담은 페트병에 의지해 북아프리카 스페인령 세우타를 향해 헤엄치고 있다. 그는 스페인 군인에게 “모로코로 돌아가느니 죽는 게 낫다”고 했다. 세우타 로이터 연합뉴스
모로코의 한 미성년 남성이 바다를 건너면 입을 마른 옷을 담은 페트병에 의지해 북아프리카 스페인령 세우타를 향해 헤엄치고 있다. 그는 스페인 군인에게 “모로코로 돌아가느니 죽는 게 낫다”고 했다. 세우타 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에 가서 일자리를 얻고 싶어요.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건 죽기보다 싫어요.”

몸에 매단 페트병 몇 개의 부력에 의지해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까지 약 1.6㎞ 거리의 바다를 헤엄쳐 건넌 한 소년은 세우타 해변에서 자신을 붙잡은 스페인 군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0일(현지시간) 전했다. 영문도 모른 채 가족들의 등에 타고 바다를 헤엄치다 표류한 갓난아기를 스페인 구조대가 가까스로 구해내기도 했다. 지난 17일부터 이런 방식으로 유럽행을 꿈꾸며 세우타의 해안에 도착하거나, 모로코와의 국경을 넘은 이들이 8000명에 이른다고 스페인 정부는 집계했다. 스페인과 모로코 간 협약에 따라 스페인은 동반 가족이 없는 미성년자만 수용하고 성인들은 48시간 내 모로코로 송환하는데, 지금까지 약 4000명이 송환됐다. 목숨을 걸고 바다를 헤엄친 상당수가 북아프리카의 십대 청년들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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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 부력에 의지해 헤엄치는 청년. 세우타 AP 연합뉴스
페트병 부력에 의지해 헤엄치는 청년. 세우타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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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구조대가 18일(현지시간) 유럽행을 향해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까지 바다를 헤엄쳐 건너던 가족들과 떨어져 표류하던 아기를 구조하고 있다. 세우타 EPA 연합뉴스
스페인 구조대가 18일(현지시간) 유럽행을 향해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까지 바다를 헤엄쳐 건너던 가족들과 떨어져 표류하던 아기를 구조하고 있다. 세우타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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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의 한 해변에 유럽행을 꿈꾸며 바다를 건너다 숨져 떠내려온 한 청년의 시신이 비상용 담요로 덮여 있다. 세우타 EPA 연합뉴스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의 한 해변에 유럽행을 꿈꾸며 바다를 건너다 숨져 떠내려온 한 청년의 시신이 비상용 담요로 덮여 있다.
세우타 EPA 연합뉴스
북아프리카의 십대들은 대부분 탈진한 상태로 세우타 해변에 쓸려 온다. 안타깝게 사망한 시신이 세우타 해변에 밀려오기도 했다. 당장 추방을 당하지 않는다 해도 이들이 꿈꾸는대로 세우타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유럽 대륙의 말라가 등지로 가는 여정이 순조롭다고 담보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목숨 걸고 월경하는 이유는 북아프리카에서 이들이 할 직업도, 미래도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청년 일자리는 더 줄어 지난해 모로코의 15~24세 실업률은 31.2%에 달했다. 열악한 근로환경의 창고에서 일하던 14세 소년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부모님은 일할 수 없고, 교육 시스템은 열악하다. 여기(유럽)에 오면 미래를 가질 수 있다”며 ‘부모 동의 하의 난민행’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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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에 헤엄치거나 국경을 넘어 들어온 모로코 청년들이 19일(현지시간)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임시보호소 바깥에 대기하고 있다. 세우타 AP 연합뉴스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에 헤엄치거나 국경을 넘어 들어온 모로코 청년들이 19일(현지시간)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임시보호소 바깥에 대기하고 있다. 세우타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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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령 세우타의 미성년자 보호쉼터에 갇힌 한 모로코 청년이 창살 틈으로 밖을 보고 있다. 세우타 AP 연합뉴스
스페인령 세우타의 미성년자 보호쉼터에 갇힌 한 모로코 청년이 창살 틈으로 밖을 보고 있다. 세우타 AP 연합뉴스
세우타는 원래부터 북아프리카 출신들이 노리는 유럽행 길목이었다. 그렇더라도 지난해 이 곳에 도착한 아프리카인은 2228명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유입된 인원은 분명 이례적인 수치다.

이번 사태의 배경엔 ‘모로코 당국의 태업’이 있다. 모로코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서사하라 지역의 독립 반군인 ‘폴리사리오 전선’의 지도자 브라힘 갈리(73)가 지난달 코로나19에 걸렸는데, 그가 위조여권을 활용해 스페인으로 입국해 치료를 받은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모로코는 스페인이 브라힘 갈리의 위조여권을 의도적으로 묵인했다며 반발했고, 스페인은 위조여권인 줄 식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치료는 인도적 차원의 일이라고 반발했다. 이후 모로코가 스페인으로 향하는 국경과 해안의 경비를 소홀히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유럽행 시도가 몰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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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행을 꿈꾸는 모로코 청년들이 20일(현지시간) 스페인령인 세우타와 가까운 모로코의 프니데크 지역에서 국경을 넘을 기회를 엿보며 노숙하고 있다. 프니데크 AP 연합뉴스
유럽행을 꿈꾸는 모로코 청년들이 20일(현지시간) 스페인령인 세우타와 가까운 모로코의 프니데크 지역에서 국경을 넘을 기회를 엿보며 노숙하고 있다. 프니데크 AP 연합뉴스
이웃 국가인 스페인을 압박하기 위해 국가를 떠나려는 자국의 국민을 풀어주는 것. 모로코 당국의 대응은 우리 관점으로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난민들의 중간 기착지가 되는 국가에선 드문 전략이 아니다. 예컨대 유럽으로 떠나려는 시리아 등 중동 지역 난민들의 기착지인 터키는 난민의 유럽행을 좌절시키는 대가로 유럽연합(EU)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다. EU는 2016년 3월 난민 유입 차단을 위해 터키에 60억 유로(약 8조원)를 제공하는 난민송환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지난달에 다시 EU로부터 추가 지원을 받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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