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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다 읽고 간 사람… 그 이름 김현

이 세상 다 읽고 간 사람… 그 이름 김현

입력 2010-06-19 00:00
업데이트 2010-06-19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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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김현 추모 20주기

김현(1942.7.29~1990.6.27).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꼭 20년이다. 반복되는 노동과 휴식 등 일상의 삶에 치여 사는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다. 그는 문학평론가다. 한자 또는 식민지 언어가 아닌, 모국어로 사유하고 그 감성으로 글을 쓴 첫 세대인 ‘4·19세대’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의 짧은 삶을 아쉬워하는 것은 단순히 한 세대의 빼어난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왕성한 독서욕과 성실한 읽기로 한국 평단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를 두고 “이 세상을 다 읽고 간 사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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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김현
문학평론가 김현
아름다운 문체로 전개되는 그의 감수성 넘치는 비평은 훗날 수사학적 인상 비평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비평을 독자적인 문학 장르로 끌어올린 첫걸음이었다는 데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지금도 그의 매혹적인 문장과 문체는 ‘김현체(體)’로 불리며 후학들의 전범으로 통한다.

●‘문학과 지성’ 창간… 48세 생애에 저서만 50권

순수·참여 문학 논쟁이 여전히 정리되지 않던 1970년 가을, 그는 문학평론가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이들은 ‘4K’로 불렸다-과 함께 계간지 ‘문학과지성’을 만든다. 이른바 ‘문지’가 또 다른 대척점에 섰던 ‘창작과비평’(창비)과 함께 한국 문단의 묵직한 성처럼 우뚝 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문학주의 이데올로그’인 그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1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비평가”(황지우 시인)라는 찬사에 걸맞게 그는 한국 문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김현은 담배만을 안주 삼아 거의 매일 문인들과 그리고 제자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대학 3학년 때 늦깎이로 배운 술이었지만 그는 1980년대 ‘불꽃의 말’이라는 에세이에서 “술자리의 분위기를 지워 버린 나의 삶을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했을 정도로 술을 예찬했다. 심지어 몸이 너무 아플 때조차 “나 대신 마시라.”며 주변에 술값을 건넬 정도였다.

●건강 나빠지자 술값 건네며 “대신 마셔 다오”

그럼에도 1990년 마흔여덟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뜨기까지 23권의 책과 6권의 공저(共著), 7권의 편서(編書), 19권의 번역서를 남겼다. 어디 그뿐인가. 무수한 논문에 소설까지 몇 편 얹었다. 김현식 표현을 빌리자면 ‘아, 놀라워라.’다. 문청들의 가슴에 시(詩)의 지독한 우울함과 설렘, 외로움을 심어 놓고 떠난 시인 기형도(1960~1989)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만들고 해설한 이도 그다. 그러고는 이듬해 훌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기형도처럼 숱한 문청들에게 좌절과 동경을 함께 안겨준 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이면 ‘김현 신화’는 얼추 완성된다.

김현은 전남 목포에서 약품공급업을 하는 부유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덕분에 구김살 없이 특유의 다독(多讀) 습관을 익힐 수 있었지만, 이는 또한 쉼 없는 갈등의 배경이 됐다. 김현은 언젠가 사석에서 “판사나 검사를 하지 않고 문학 나부랭이를 했다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나를 꾸짖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갈등이 없었다면 뒷날 그가 정립한 ‘무용한 문학의 유용성론(論)’이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김현은 “유용함은 인간을 억압한다. 문학은 쓸모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며 억압이 인간에게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지 보여 준다. 이것이 바로 쓸모없는 문학이 쓸모 있는 이유다.’라고 설파했다.

창조적인 문장과 수사적 표현은 평단(評團)을 넘어 작단(作團)까지 넘겨봤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66년 발표한 단편소설 ‘노숙’ 등이 대표적이다.

●고향 목포에 문학관 건립… 김현문학상 제정 주장도

20주기를 맞아 추모 열기도 뜨겁다. 문학과지성사는 18일 서울 동교동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말들의 풍경과 비평의 심연’이라는 주제로 ‘김현 20주기 문학 심포지엄’을 열었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박성창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김현 비평은 인식론에서 논증의 구조, 그리고 문체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개성과 특이성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고유명사로 통용이 가능하다.”며 김현의 문학사적 좌표를 명확히 했다.

이어 “일방적인 찬사를 통해 옹호하는 일이나, 수사적 전략으로 폄하시키는 일 모두 그를 특정한 테두리 안에 가두는 일인 만큼 폭넓은 연구를 통해 세대론적 시각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조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의 서울대 제자인 소설가 이인성은 스승에게서 받은 편지 한 통을 공개해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1977년 9월8일 날짜가 적힌 편지에서 김현은 “바 선생(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 지칭)의 ‘몽상의 시학’을 번역하고 있다.”고 근황을 밝힌 뒤 “가짜로 살고 가짜로 싸우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아플 때 아프다고 소리 지르지 마시오. 그 순간에 아픔은 말이 되어, 아픔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르오.”라고 적었다.

너무 심각했다 싶었는지 “이러니까 교과서를 쓰는 것 같소.”라며 “일요일쯤 심심하면 놀러 오시오. 소주나 한 컵 합시다.”라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애주가의 면모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문학관 건립도 추진 중이다. 김현의 고향인 전남 목포시는 올 연말까지 ‘김현문학관’을 세워 주요 저서와 필기도구, 편지, 일기장, 그림, 병상일지, 영수증 등 수천점의 유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김현문학상’을 제정하자는 주장도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김현

▲1942년 전남 진도군 진도읍 남동 출생(본명 김광남) ▲1957년 목포 문태고 입학한 뒤 서울 경복고로 전학 ▲1960년 서울대 문리대 불문학과 입학 ▲1962년 ‘자유문학’에 평론 ‘나르시스의 시론’으로 등단. 필명 ‘김현’ 처음 사용 ▲1968년 4·19세대 문인들이 대거 참여한 ‘68그룹’ 동인 결성 ▲1970년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등과 함께 ‘문학과지성’ 창간 ▲1974년 서울대 불문과 교수 임용 ▲1990년 간경화로 타계
2010-06-1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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