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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 금지 조선시대 소 도살 ‘백태’>

<도살 금지 조선시대 소 도살 ‘백태’>

입력 2011-09-14 00:00
업데이트 2011-09-14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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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목 교수, 고문서서 각종 편법 발굴

“제 상전은 어버이의 병환이 한 달 전부터 갑자기 깊어져 의원에게 물어보니 중풍허증(中風虛症)이라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원은 ‘반드시 우황을 복용해야만 낳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금(牛禁)ㆍ주금(酒禁)ㆍ송금(松禁)의 세 가지 법금(法禁)은 실로 나라에서 금하는 일이라 감히 이를 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제 상전은 그저 혼자 애를 태울 뿐입니다.”

조선후기에 나온 공문서 작성 서직집인 유서필지(儒胥必知)라는 문헌에 소개된 이른바 공문서 양식 중 하나로, 위친환용전우고소지(爲親患用全牛膏所志), 곧 부모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전우고(全牛膏. 우황)를 사용해야 하니 소를 잡을 수 있게 허락해 달라는 청원서인 셈이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우금과 주금, 그리고 송금, 즉 소 도살, 밀주 제조, 소나무 벌채를 법률로 엄격히 금지했다.

하지만 그 시대 금지 사항을 보면 역설적으로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국가에서 법까지 만들어 그것을 금지하고자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문서 전공인 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조선시대 세 가지 법금 중에서도 바로 우금을 주목해 주로 고문서 자료를 통해 법률과 실제가 얼마나 판이했는지를 파헤쳤다.

전 교수가 최근 한국고문서학회에서 발표한 ‘소를 잡아먹기 위해 동원된 갖가지 편법들’은 중농 정책 아래서 소 도살이 금지된 조선사회가 실제는 공공연히 도살이 자행되는 사회였음을 입증한다.

전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소 도살을 청원한 공문서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앞에서 본 부모 병환 치료를 위한 것 말고도 소 다리가 부러진 절각(折脚)이나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경우, 돌림병에 걸렸을 때나 각종 사고나 돌연사 때, 혹은 제수용 등의 이유로 소 도살이 광범위하게 행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전 교수는 고문서에 보이는 이런 사례를 분석하면 이런 사례는 허울일 뿐이며, 실제는 소 도살을 하기 위한 편법 부리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소가 스스로 낭떠러지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으므로 그 소를 잡게 해달라고 수령에게 청원하는 문서가 많지만 요즘도 소를 키워본 사람들은 대번 알지만 소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일은 거의 없다.

더욱 웃지 못할 사례는 규장각에 소장된 고문서에 보이는 행태다.

어느 고을 북면 도암리라는 곳에 있는 연생원댁(延生員宅) 사내종 귀돌이 무오년(戊午年) 12월에 고을 수령에게 제출한 문서는 그의 상전댁 농우(農牛)가 한 달 전에 새끼를 낳았는데 그제 밤에 도둑이 들어 어미를 훔쳐가고 오늘 아침에는 그 새끼마저 갑작스럽게 죽었다고 하면서 그 새끼를 도살하게 해달라는 내용을 담았다.

전 교수는 “이 문서 내용을 보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서 “귀돌의 주장처럼 그저께 어미소를 도둑맞았다면 당연히 그날 밤 혹은 그 다음 날 아침에 수령에게 신고해야 하지만 청원서는 그런 내용은 전혀 보이지 않고 죽은 송아지만 잡게 해달라는 말만 보인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조선왕조는 중농 정책을 유지하고자 소 도살을 엄격히 금지하고자 했지만, 실제는 교묘한 편법을 동원해 도살이 광범위하게 행해졌다”고 결론내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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