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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속 ‘세월’ 엿보니 역사의 발자국 소리가…

박물관 속 ‘세월’ 엿보니 역사의 발자국 소리가…

입력 2011-12-03 00:00
업데이트 2011-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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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 개인전

‘스키피오의 눈물’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로마를 괴롭혀 온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굴복시킨 명장 스키피오. 골칫거리가 두번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카르타고를 철저히 짓밟는 광경을 바라보는 스키피오의 얼굴에는,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 머문다. 카르타고의 최후에서 로마의 미래를 봤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최고라지만, 언젠가 로마도 한줌 재로 돌아가리라.

그렇다면 카르타고의 흔적이 복원된다면? 그래서 승자 로마가 패자 카르타고의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만나게 되는 독일 작가 칸디다 회퍼(67)의 작품들은 그런 의미에서 ‘회퍼의 미소’쯤으로 불러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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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디다 회퍼가 찍은 독일 베를린의 신(新)박물관 내부 풍경. 19세기 중반 지어진 신박물관은 2차대전으로 파괴됐다가 1997년 복원됐다.
칸디다 회퍼가 찍은 독일 베를린의 신(新)박물관 내부 풍경. 19세기 중반 지어진 신박물관은 2차대전으로 파괴됐다가 1997년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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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디다 회퍼가 찍은 독일 베를린의 신(新)박물관 내부 풍경. 19세기 중반 지어진 신박물관은 2차대전으로 파괴됐다가 1997년 복원됐다.
칸디다 회퍼가 찍은 독일 베를린의 신(新)박물관 내부 풍경. 19세기 중반 지어진 신박물관은 2차대전으로 파괴됐다가 1997년 복원됐다.
●복원된 ‘노이에스 뮤제움’ 내부 풍경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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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디다 회퍼
칸디다 회퍼
회퍼는 인물 사진에서 시작해 미술관, 극장, 도서관 같은 공공장소의 내부를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다. 이번 한국 개인전에 내놓은 작품들은 독일 베를린의 신박물관(노이에스 뮤제움)의 내부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다. 19세기 중반 지어진 신박물관은 2차대전으로 파괴된 뒤 60여년간 방치됐다가 1997년 복원설계 공모에 뽑힌 영국의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복원한 건물이다.

치퍼필드는 요란하고 파격적이고 멋진 건축 대신 극도로 절제된 건축을 지향하는 건축가다. 그래서 복원 작업도 ‘절대 손대지 않음’으로 일관했다. 건물에 묻어 있는 세세한 총탄 자국 하나하나까지 고스란히 다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10여년에 걸친 복원작업 끝에 2009년 재개관했다지만 복원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조금씩 조금씩 고쳐가고 있다. 이렇게 긴 세월, 굼뜨다 못해 어떻게 보면 갑갑할 정도로 느려터진 시간을 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건물 그 자체가, 그 건물이 품고 있는 공기 자체가 하나의 역사라는 판단에 따라서다.

●건물 품고 있는 공기 자체가 하나의 역사

회퍼는 치퍼필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복원작업이 진행 중인 신박물관에 들어가 다양한 사진작업을 진행했다. 이번에 공개한 작품들은 2009년 이후 작업한 최신작들이다. 박물관이다 보니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중세 유물들을 보관해 둔 공간을 고스란히 프레임에 담았다. 크기도 마찬가지. 벽에 걸린 사진들 앞에 서면 박물관 내부에 발을 내디딘 듯 친숙해진다. 치퍼필드와 죽이 잘 맞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회퍼의 사진에는 어떤 요란스러움도 없다. 조도를 일일이 측정해 가며 자연광을 고스란히 살려 내서 정직하게 있는 광경 그 자체를 촬영했다. 알록달록한 타일, 벗겨지고 긁힌 자국은 물론 모든 요소들이 생생하다.

전민경 국제갤러리 큐레이터는 “촬영 현장을 직접 방문한 적이 있다. 실제 공간에 들어서 보면 아주 낡은 건물인데 사진에서는 화사하게 빛나고 있어서 너무 신기했다.”고 전했다.

●사람 흔적 없어도 그리스·로마가 생생해

홀딱 벗은 누드화인데, 색스럽다기보다 몸뚱어리 그 자체로 증언대에 선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데 저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저벅저벅 들려오는 듯하다.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역사의 발자국 소리가. 대한민국사를 성공의 역사로 새롭게 쓰자는 목소리가 요란한 요즘, 깊은 울림을 주는 전시다. 25일까지. (02)735-8449.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12-0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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