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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한국영화 살려면 대기업 정신차려야”

정지영 “한국영화 살려면 대기업 정신차려야”

입력 2012-11-24 00:00
업데이트 2012-11-2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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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살아남으려면 대기업이 정신차리면 돼요.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시스템이 계속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면 문제를 못 고쳐요. 영화계와 투자·배급하는 사람들(대기업)이 윈-윈 해야 하는데 지금 저들의 힘과, 그 힘에 대한 과신이 위험하다는 겁니다.”

한국영화계의 노장 정지영 감독은 국내 영화계를 탐구한 다큐멘터리 ‘영화판’ 개봉을 앞두고 최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영화판’은 정 감독이 ‘부러진 화살’을 촬영하기 전 10여년 동안 영화를 만들지 못하며 쌓인 우리 영화계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기획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업에는 미국에서 오래 지내다 귀국해 한국 영화계에 여러 의문을 품고 있던 허철 감독이 의기투합했다. 허 감독은 미국에서 15년간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고 샌프란시스코주립대에서 7년간 영상연출을 강의하다 2007년 귀국했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로 일하던 허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정 감독에게 먼저 제안했다.

”미국에 갔다가 NYU(뉴욕대) 교수가 한국영화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해서 봤는데 ‘이게 뭐야’ 싶었어요. 미국인의 시각에서 보고 싶은 한국영화사, 미국인의 흥미에 맞는 내용만 담았더군요. 그래서 당시 고려대에서 함께 강의를 하던 정 감독님에게 하소연하면서 한국영화 하는 사람들이 우리 영화를 돌아보는 작업을 안 했느냐고 물어봤죠. 미국만 해도 미국영화를 돌아보는 다큐멘터리가 많은데 우리는 하나도 없더라고요.

이들은 한국영화계에 몸담은 여러 사람을 인터뷰해보기로 하고 인터뷰를 진행할 배우로 윤진서를 섭외했다. 윤진서 역시 당시 여배우로서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다.

2009년 하반기부터 이듬해 겨울까지 이들은 100여명의 영화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목소리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영화란 무엇인가’ 이걸 찾아가는 셈인데, 200시간을 찍었어요. 이걸 한 시간 반 분량으로 만든 거죠. 200시간을 20시간으로 가면 우리가 의도한 걸 찾아갈 수 있는데 한 시간 반으로 줄였기 때문에 결국 한국영화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길잡이, 서문이라고 생각하자고 결론내렸죠.”

이 다큐멘터리 촬영이 끝난 뒤 정 감독이 ‘부러진 화살’ 촬영에 곧바로 들어가는 바람에 편집은 모두 허 감독의 몫이 됐다. 결국 정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의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정 감독과 윤진서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대부분 유명 영화인들이다. 임권택, 강제규, 임상수, 박찬욱, 봉준호, 임순례, 변영주 등 감독들부터 안성기, 박중훈, 강수연, 최민식, 김혜수 등 스타들이 망라됐다.

감독들은 거대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의 등장을 상징하는 ‘밴(자동차)’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고, 마치 U.F.O.에서 내려오는 외계인 같다고 꼬집는다. 예전처럼 현장에서 함께 부대끼는 문화가 사라지고 배우들이 다른 존재가 돼버렸다고 개탄한다.

여성 감독들은 남성 감독에 비해 기회를 적게 주는 현실을 토로하고 여배우들은 노출을 강요하는 분위기와 여배우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다큐멘터리는 또 한국 영화사를 거슬러 오르며 1960-7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검열 하에 만들어진 독특한 영화들, 할리우드 영화 배급권을 따내기 위해 한국영화를 양산하던 세태,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국내 직배 이후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한 스크린쿼터 운동, 그 과정에서의 영화계 내부 갈등까지 다룬다.

정지영 감독을 비롯한 노장 감독들은 최근 한국영화산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영화가 비슷비슷한 상품으로 제작되고 예전에 비해 좋은 영화가 덜 나오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정 감독은 특히 영화계를 좌지우지하는 대기업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예를 들어 ‘광해’를 봅시다. 그것을 CJ는 몇 년 동안 기획·개발하고 감독을 불러서 완성해서 1천만(관객) 짜리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게 마치 교과서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어요. 그런데 ‘광해’를 만든 사람들이 한 팀이 쭉 있었던 게 아니고 들락날락 한 거죠. 그러면서 무슨 개발을 계속 하겠어요. 한 팀이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물건이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게 하나의 모델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런 자만이 위험하단 거죠. 영화라는 게 가끔 어떤 것 하나를 성공시킬 순 있지만 이게 지속 가능하진 않습니다. 그들이 실패한 건 왜 얘기 안 하나요?”

정 감독은 곧 개봉하는 ‘영화판’이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기업이 이윤 추구하는 노력 자체를 탓하는 건 아니에요. 단지 이런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거죠. 냉정하게 봅시다. CJ가 지향하는 게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데 지금처럼 해서는 불가능해요. 영화사가 성장하려면 길게 보고 작품을 기다려야 하고 어떤 건 10년이 걸릴 수도 있는데 여기(CJ)는 1년 만에 잘못하면 잘리고 사람이 다 바뀌어요. 영화사인데도 일반 다른 기업의 시스템을 가져와서 운영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자신들이 영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할리우드 기업들은 그 안의 모든 사람이 다 영화인인데 이들(CJ 직원들)은 영화인들을 다스리는 하나의 관리일 뿐이죠. 내 말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거고 기업을 영화 시스템으로 바꿔줘야 한다는 거죠.”

그는 영화산업의 제작-투자-배급-영화관까지 장악한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 문제도 강하게 비판했다.

”배급과 상영(영화관)을 분리해야 해요. 지금은 이게 묶여 있으니까 큰 문제죠. 지금은 CJ가 A라는 작품을 만들어 자기네 극장에서 다른 작품을 방해하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예요. 심지어 ‘1+1’(티켓증정 이벤트)까지 해가면서 말이지. 하지만 배급과 상영을 분리하면 한 영화가 전 극장을 독점하는 건 어려워집니다.”

허 감독은 세계 최대 영화산업을 보유한 미국에 비해서도 한국의 영화 다양성이 크게 떨어지는 현실을 지적했다.

”미국은 L.A, 뉴욕,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다양해요. 독립극장들이 아주 많죠. 그런 극장들은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해서 오는 게 아니라 일단 들어와서 무슨 영화인지 몰라도 믿고 보는 문화로 활성화했어요. 한국에서 무서운 건, 1억 관객 시대가 됐다고 하지만 관객들이 상업영화의 포뮬러(공식)에 너무 길들어서 조금만 달라도 지겨워하게 된 겁니다. 해법은 관객들이 자꾸 그런 독립·실험영화에 노출되게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배급망이 다양해져야 하고요. 미국은 특히 대학교의 극장을 활용해서 유럽의 작은 영화들이 많이 들어오는 창구가 됐습니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정부가 할 일이 있겠죠.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영화는 다음달 6일 개봉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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