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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리뷰] 박태원 원작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연극리뷰] 박태원 원작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입력 2012-12-04 00:00
업데이트 2012-12-0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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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서울거리 고스란히 무대에

“아들이, 제 방에서 나와, 콤마, 마루 끝에 놓인 구두를 신고, 콤마, 기둥 못에 걸린 단장을 끄내들고, 콤마, 그리고 문깐으로 향하야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피리오드” “어듸, 가니” “대답은” “들리지 안헛다” “피리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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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그대로 낭독하면서, 배우들의 몸짓이 이어진다. 객석 가까이, 책상머리에 앉아 글을 쓰는 자리옷(잠잘 때 입는 편한 한복)을 입은 사내(이윤재)와 무대 안쪽 여름양복 차림에 지팡이를 든 사내(오대석), 둘은 닮은꼴이다.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바가지 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모습은, 소설가 구보 박태원과도 닮았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무대에 오른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매우 독특하다. 박태원이 1934년 일간지에 발표한 동명의 중편소설을 말 그대로 ‘고스란히 옮겼다’. 구보가 산책하며 보고 들은 것을 풀어낸 원작을, 성기웅 연출은 무대로 옮기고 해설을 곁들였다. 일테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벗’을 구보의 소설에 삽화를 그린 시인 이상과 이들이 믿고 따르던 선배이자 시인·기자였던 김기림으로 표현하거나, 구보가 머문 ‘다방’을 이상이 운영하던 ‘제비다방’과 조선인이 경영한 최초의 다방 ‘낙랑파라’로 세밀하게 소개하는 식이다. 이런 가운데 구보가 걷는 종로네거리부터 광화문 사이에 놓인 화신상회, 조선은행, 경복궁, 조선호텔 등이 영상과 음악으로 재현되면서 근대 초기 서울의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구보는 종로네거리에 아무런 사무도 갖지 않는다. 처음에 그가 아무렇게나 내여놓았든 바른발이 공교로웁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식의 문어체 말투는 원작 그대로다. 여기에 성 연출은 구보와 김기림이 낙랑파라에서 가진 만남, 구보가 일본 도쿄 유학시절에 겪었을 법한 사랑 등을 상상으로 첨가했다. “그를 적마다 신문사선 날 두구 닦달이니, 온. 전번엔요, 원골 넴겨줬드니 숫제 그 원고허구 더불어 유꾸에후메(행방불명의 일본어).”라는 식으로 당시 지식인의 말투까지 자연스럽게 녹였다.

이상과 김기림, 화신상회와 당시 모던보이, 모던걸의 모습을 영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니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공연시간이 2시간 가량으로 다소 길어진 듯하지만, 구보의 발자취를 따라 자유연애, 다방, 전차 등을 접하면서 1930년대 서울거리를 함께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는 30일까지 공연한다. 3만원. (02)708-5001.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2012-12-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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