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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 코미디 ‘남자사용설명서’

4차원 코미디 ‘남자사용설명서’

입력 2013-03-27 00:00
업데이트 2013-03-2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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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본 적 없는 4차원의 로맨틱코미디 영화가 나왔다. 판타지가 뒤섞였는데 어색하지 않고, 엉뚱하지만 발랄하고 유쾌하다.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얘기다.

이 영화는 온갖 ‘키치’적인 것들을 모아놨다. B급 정서, 싸구려스러움, 복고풍이 물씬 풍기는 소품과 의상, 대사, 설정이 가득하다. 이런 설정이 어설프다면 유치하고 거북하게 느껴질 텐데, 아예 처음부터 작정하고 시작해 일관성 있게 굴러가니 어느새 이상한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열심히 일하며 정석대로 살아온 서른 살의 여자 ‘보나’(이시영 분)가 일에 치이고 남자들에 치여 인생을 회의하다가 우연히 ‘남자사용설명서’라는 비디오테이프를 얻어 인생의 반전을 꾀하는 얘기다. 남자사용설명서의 도움으로 한류스타 ‘승재’(오정세)를 유혹하고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로맨스 영화이기도 하다.

보나는 어느날 바닷가에서 ‘닥터 스왈스키’(박영규)를 만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에 50만 원을 주고 덜컥 ‘남자사용설명서’라는 비디오테이프를 산다. 테이프를 재생시키니 ‘가까이 앉아 몸을 밀착시켜라, 의도하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터치하라, 낮은 목소리로 속삭여 남자를 다가오게 하라,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라’ 등 코웃음칠 만한 고전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헛돈을 썼다며 후회하면서도 보나는 이를 실생활에서 시도한다. 실수로 일을 망쳐 CF를 재촬영해야 하는 상황에서 까칠한 한류스타 승재에게 남자사용설명서의 지침대로 접근해 재촬영을 부탁한다. 신기하게도 여러 상황이 맞물리면서 남자사용설명서가 효과를 발휘한다.


점점 가까워진 승재와 보나는 어느날 함께 술을 마시다 정신을 잃고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닥터 스왈스키는 공든 탑이 무너졌다며 보나를 나무한다. 승재의 도움으로 CF감독 자리까지 오르지만, 제대로 인정받을 기회는 쉽게 열리지 않는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캐릭터와 상황 설정부터 평범하지 않다. 찌질한 캐릭터, 서민적인 이미지로 친근한 배우 오정세가 ‘한류스타’를 연기한다는 것부터가 코미디다. 닥터 스왈스키라는 황당한 판타지 멘토 캐릭터도 눈에 띄는데, 그 배역을 박영규가 연기한다는 게 더 재미있다.

닥터 스왈스키의 비디오테이프에서 시범을 보여주는 두 외국 배우들은 어디서 저런 배우들을 데려왔나 싶을 만큼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50-60년대 비디오테이프에서 튀어나온 듯한 두 배우의 외모와 연기는 참으로 강렬하다.

’남자사용설명서’가 존재한다는 판타지는 유치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기본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방법, 위기에 잘 대처하는 방법 등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요령, 일종의 처세술이란 점에서 꽤 설득력이 있다. 영화 후반부엔 결국 ‘매뉴얼’이란 게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주며 현실로 돌아오기에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의 팍팍함 속에 피어난 진실한 사랑을 얘기하는 교과서적인 결말보다는 전반부의 판타지 가득한 상상과 해설이 더 재미있다. 오정세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이 어이없는 상황과 맞물려 여러 차례 폭소를 자아낸다. ‘순풍산부인과’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박영규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는 것도 반갑다.

숨은그림찾기 ‘월리를 찾아라’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를 비롯해 만화 같은 삽화와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한다.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들은 한편으로 현대미술의 팝아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정확하게 계산된 장면 구성은 뚜렷한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한없이 가벼우면서도 촌스럽지는 않다. 신예 이원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상영시간 116분.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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