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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기 싫은 무사가 싸워야 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지…”

“싸우기 싫은 무사가 싸워야 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지…”

입력 2013-04-15 00:00
업데이트 2013-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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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올해 첫 창작극 ‘칼집 속에 아버지’ 주연 김영민

김영민
김영민
무사(武士)다. 손에 칼을 쥐었다. 복수를 숙명처럼 여기고, 목소리를 낮게 깐 채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해야 마땅한 처지다. 그런데 이 무사, 싸우는 게 싫다. 용맹함으로 이름 떨치던 아버지 ‘찬솔아비’는 살아있을 때 싸우라고 강요했고, 아비가 죽자 어머니 ‘아란부인’은 복수를 간청한다. 그를 만나는 무사마다 칼을 뽑아들고, 마을처녀 ‘초희’는 지상의 왕 ‘검은등’에게서 자신을 해방시켜달라고 요구한다. “내가 아닌 다른 것 때문에 변하고 싶지 않다”는 ‘갈매’에게 무사의 길은 운명이면서 짐이자 압박이다. 국립극단의 올해 첫 창작극 ‘칼집 속에 아버지’는 칼싸움하는 무사가 되고 싶지 않은 갈매의 여정을 따라가며 사회적 억압과 극복을 이야기한다.

갈매만 맘고생이 심한 줄 알았더니, 배우의 몸고생도 만만치 않다.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판에서 만난 김영민(42)은 손가락마다 상처투성이다. “연습할 때는 몰랐는데 끝나고 보면 까져 있다. 어제는 어디에 부딪혔는지 가슴 쪽에 통증이 있다”면서 배시시 웃었다. 찬솔아비(김정호)와는 몸싸움을 하면서 바닥을 구르기 일쑤다. 흑룡강(윤상화), 백호(박완규)와 칼싸움을 하면서는 머리 위로, 발 아래로, 배를 향해 날아드는 칼을 날렵하게 막고 피한다. 배우들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져 관객들은 굉장히 흥미진진하겠지만, 배우는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다.

‘햄릿’, ‘에쿠우스’, ‘에이미’, ‘M버터플라이’…. 다양한 작품을 한 김영민은 별별 경험을 다했지만, 이렇게 과격한 칼싸움·몸싸움은 처음이다. ‘연극계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어울리는 잘생긴 얼굴로 그는 “이젠 40대라 몸 쓰는 게 힘들다”는 농을 던지면서도 꽤 즐겁다고 했다. “고연옥 작가가 쓴 극본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강량원 연출과는 처음 만난 건데, 작업 과정이 좀 달랐죠. 보통은 연습 전에 대본 리딩을 어느 정도 하는데 강 연출은 바로 연습에 들어가더라고요. 배우들과 연습을 하면서 인물과 상황을 함께 만들어가고, 느끼면서 체득하는 식이죠.”

싸우기 싫은 무사가 싸워야 하는 운명에 놓인, 갈매의 딜레마는 김영민에게도 고민을 던졌다. “저 역시 부딪히거나 싸우길 원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어쩔 수 없이 싫은 소리를 하게 되면 뒤돌아서 무척 후회하죠. 갈매처럼 당혹한 상황에 맞닥뜨린 것은 아니지만, 원래 우리가 사는 세상도 싸우고 투쟁하고, 때론 피비린내날 정도로 잔인하잖아요.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싸워야 하나, 등져야 하나. 계속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는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간극, 그 틈을 어떻게 좁혀갈 것인가가 갈매의 숙제이자 내가 풀어야할 숙제”라고 했다.

복수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어쩌면 극이 하염없이 무거워지고, 갈매의 처지가 너무 처절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꽤 코믹한 설정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동작만큼 날쌔게 입을 나불대는 흑룡강과 제 입을 슉슉 소리를 내며 칼싸움을 하는 엉뚱한 백호는 진지한데 웃긴다. “배가 불렀다”고 꾸짖는 찬솔아비에게 “먹고는 살겠죠”라고 받아치거나, 연인에게 안긴 듯한 자세로 “날 좀 죽여주시오”라고 어울리지 않는 말을 내뱉는 갈매가 또 그렇다. 꽤 진중한 역할을 많이 했던 그에게서 엿보이는 장난기 어린 표정 변화가 색다른 느낌이다. 그는 “재미있고 쉽게 풀어내면서 관객에게 충분히 즐기고 판단할 여지를 준다는 게 공연의 장점”이라고 꼽았다.

판단의 시작점은 ‘칼’이다. 칼이란 무엇인가. 싸움이나 투쟁 그 자체가 될 수도 있고, 세상과 맞설 수 있는 무기라는 상징일 수도 있다. “나 이제야 돌아왔어요”라는 갈매의 마지막 대사 역시 판단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 아버지에게 하는 말인지, 갈매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이제 무사로서 살겠다는 것인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인지.

“공연이 끝나면 많은 관객은 이렇게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무사의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니라고.”

연극 ‘칼집 속에 아버지’는 26일부터 5월 12일까지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 오른다. 26·27일 공연은 프리뷰.

글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사진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2013-04-1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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