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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이야기> 조선시대 CSI, 미라와 기생충

<문화재 이야기> 조선시대 CSI, 미라와 기생충

입력 2014-05-05 00:00
업데이트 2014-05-0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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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으로 음식문화 복원·한양 도시환경 추적 보호장치 없어 대부분 화장, 법적 정비 시급

“신 박사님, 이리 와 보세요. 이 뼈는 아무리 봐도 성인 뼈가 아닌 것 같아요. 어린아이 같아요.”

”그런 듯하네요. 출산하다 돌아가셨나?”

서울대병원 법의학연구소 신동훈 교수와 단국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김명주 교수는 경남 하동군 금난면 진정리 ‘점골’ 소재 진양정씨 문중묘역에서 발견된 미라 1구를 문중의 동의를 얻어 복식사 전공자들과 함께 서울대병원 부검실로 옮겨 해포(解布)하던 중에 다른 사람의 인골로 보이는 뼈 조각들을 발견했다. 상태로 보아 어린아이 것이 분명했으며, 더구나 그것이 발견된 지점으로 보아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하고 엄마 뱃속에서, 혹은 출산 중에 사망한 것으로 보였다.

미라는 조선 중기 때 정희현(鄭希玄·1601~1650)이라는 사람의 두 번째 부인 온양정씨(溫陽鄭氏)였다. 시신을 감싼 옷가지를 분리하는 해포 결과 대략 35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온양정씨는 이와 머리카락도 비교적 온전하게 남았다. 신 교수는 생몰연도가 족보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 여인이 “이가 마모된 상태나 머리카락 상태로 보아 굉장히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2009년 6월7일 진행한 해포 과정에서 추정한 사망 원인은 이후 진행한 본격적인 연구 결과 다른 의구심을 낳았다. 미라에서 채취한 체내물을 분석한 단국대 의과대학 기생충학교실 서민 교수팀은 폐흡충알 수천여 개를 발견한 것이다. 폐흡충알은 폐를 비롯해 간, 장 등지의 장기에서 고루 검출됐다. 현미경으로 확인하고 체내 장기 조직을 떼어 DNA를 분석한 결과 폐흡충알은 조직과 형태가 현재의 그것과 거의 일치했다. 알의 분포와 규모를 토대로 적어도 100여 마리에 이르는 성충이 체내에 기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보통 성충 5-10마리가 몸 안에서 활동하면 기침과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오고 기관지염이 생기는 등의 감염 증상이 일어난다는 폐흡충이 임산부에게 이토록 많이 발견됐으니, 사망원인은 이에서 찾아야 했다. 따라서 하동 미라는 출산 중에 사망했다기 보다는 기생충 감염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훨씬 커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도대체 어떤 경로를 통해 폐흡충에 감염되었을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폐흡충은 폐디스토마라고도 불리는 기생충으로 민물게(참게), 우렁, 가재 등을 날것으로 먹을 때 감염된다. 요즘 활발한 대외 활동으로 유명세를 타는 서 교수는 하동 여인은 민물가재를 갈아 생즙으로 복용했기 때문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 이유를 서 교수는 조선시대 기록이나 구전을 보면 가재즙을 이용한 민간요법이 소개되고, 특히 임신 중 질병을 치료하려고 가재즙을 다량 마신 일이 더러 보인 사실을 들었다.

이 하동 미라에서 보듯이 미라와 기생충은 우리가 전연 생각지 못한 조선시대를 밝혀서 안내하는 CSI다. 둘은 그만큼 밀접하다.

경남 하동군 금성면 가덕리에서 발견, 수습된 400년 전 여성 미라에서는 참굴큰입흡충(Gymnophalloides seoi)이라는 기생충이 관찰되기도 했다. 한데 참굴큰입흡충은 1993년에야 서울의대 기생충학교실이 처음으로 확인해 세계학회에 보고된 기생충이다. 이 역시 민물과 바닷물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에서 비롯되는 기생충으로 추정됐다. 최근에야 존재를 드러낸 기생충이 그보다 훨씬 이전 조선시대에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미라에서는 대체로 기생충이 검출되기는 하지만, 둘이 반드시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인분이나 동물의 배설물에서도 얼마든지 기생충은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들어 곳곳이 대규모 공사에 그에 따른 고고학 발굴이 이뤄진 서울 사대문 안 사정은 가히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신동훈 서민 교수 등이 이들 발굴지역에서 채취한 흙시료를 분석한 결과 광화문 앞에서 세종로로 이어지는 서울의 중심가가 온통 분뇨로 덮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문헌에 한양의 심각한 오염 상태가 기록되긴 했지만 흙에서 추출한 기생충알로 실증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연구팀이 밝혀낸 기생충은 간흡충(간디스토마), 회충, 편충, 광절열두조충 등이었다. 이들은 포유류나 어류 등 동물을 숙주로 삼아 인체로 침투한 후 장기에서 기생하다 변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온다. 경복궁 앞에서 추출한 흙에서는 1g당 최고 165개의 알이 나왔고, 나머지 샘플에서도 평균 35개의 알이 발견됐다. 이 정도면 당시 인분에 의한 흙의 오염도가 상당히 우려할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미라와 기생충을 통한 최근의 연구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장기를 빼낸 고대 이집트 미라와는 달리 조선시대 미라는 전통적인 유교의 효 관념에 따라 시신을 그대로 매장한 까닭에 그에서 얻는 정보는 훨씬 많다. 더구나 조선시대 무덤은 회곽묘가 많아 보존 상태가 여타 지역 미라에 견주어 유례없이 풍부한 정보를 담은 미라를 많이 제공한다. 예컨대 기생충 등의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질병 연구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DNA 검사까지 가세하면서 이 분야 연구는 아연 활기를 띤다. 신동훈 교수는 “조선시대 미라는 뇌조직 안에 포함된 DNA의 양과 질이 매우 우수하다”면서 “따라서 이에 대한 분석을 시행하면 오늘날 법의학에서 시행하는 과학수사 수준의 DNA 분석 결과의 획득도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기생충란에서도 DNA 추출이 가능해짐으로써 기생충의 진화도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질병 연구만 해도 더욱 다채로운 성과를 낼 수 있다. 개별 미라에 대한 질병 분석 결과를 축적하면 근대화 이후와 이전의 한국인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질병의 변화 양상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미라의 주인공이 생전에 앓았을 가능성이 있는 결핵, 나병, 헬리코박터 등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정보를 주는 조선시대 미라는 여러 가지 이유로 발견, 수습과 함께 대부분이 이 순간에도 화장 혹은 재매장이라는 형식으로 미라 그 자체보다 더 많은 타임캡슐인 기생충과 함께 그대로 사라지고 있다. 시신은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한국사회 전통의 관념과 더불어 무엇보다 이를 보존하고 연구할 법적 기반이 전연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2년 10월10일 충남 태안군 태안읍 삭선2리 소재 의령남씨(宜寧南氏) 공동묘역에서 발견된 가선대부(嘉善大夫)이자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종2품)를 역임한 남오성(南五星·1643~1712)은 미라 상태인 신장이 무려 190㎝에 달한 데다 거의 전신이 온전하게 남았지만 후손들은 곧바로 화장했다. 그나마 그의 복식 유물은 남았지만 다시 산화(散化)한 것이다.

조선시대 미라 연구를 선도하는 기관 중 한 곳인 서울대 해부학교실은 미라는 조사 분석을 끝낸 다음에는 관련 기관이나 유족(대체로 문중)한테 돌려준다. 이런 까닭에 현재 국내에 보존된 미라는 총 10~20구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체 미라를 여타 다른 고고학 출토 유물처럼 전시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연구 기반은 조속히 확립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신동훈 교수는 “미라가 지닌 역사문화적, 의과학적 가치를 고려하면 현재와 같은 불안한 상태의 연구조사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연구기반을 국내에도 갖추어야 한다”면서 “대개 어느 선진국도 미라 연구는 허용하며 이에 대해 지원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참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요컨대 미라와 기생충도 ‘문화재’ 혹은 문화재에 버금가는 인류의 유산이라는 발상 전환과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한 실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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