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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 순교열전① 첫 순교자 윤지충

한국천주교 순교열전① 첫 순교자 윤지충

입력 2014-08-06 00:00
업데이트 2014-08-0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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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충(1759∼1791·세례명 바오로)은 이번에 시복되는 124위의 대표 순교자이자 한국 천주교 신자 가운데 첫 순교자다.

전라도 진산(현 충남 금산·논산)의 유명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총명하고 품행이 단정했으며 어려서부터 학문에 정진했다.

1783년 진사 시험에 합격할 무렵 고종사촌 정약용을 통해 천주교 신앙을 처음 접한다. 이후 스스로 교회 서적을 구해 읽기 시작해 1787년 인척인 이승훈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어머니와 아우 지헌, 이종사촌 권상연에게도 교리를 가르치고 인척인 유항검과도 자주 왕래하면서 복음 전파에 힘썼다.

1790년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 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윤지충은 권상연과 함께 집안에 있던 신주를 불살랐다. 이듬해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천주교 예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이른바 ‘진산 사건’이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체포명령이 내려졌다. 윤지충은 체포령을 피해 몸을 숨겼다가 숙부의 감금 소식을 듣고 자수했다.

윤지충은 진산 관아를 거쳐 전주 감영으로까지 이어진 설득과 회유, 문초에도 신앙을 굳게 지키면서 교회나 교우들에게 해가 되는 말은 절대 입밖에 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면서 제사의 불합리함을 조목조목 주장했다. 그는 “천주를 큰 부모로 삼았으니 천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결코 그분을 흠숭하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조정의 사형 명령으로 1791년 12월 전주 남문 밖에서 권상연과 함께 처형됐다.

당시 전주 감사가 조정에 올린 보고서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전한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유혈이 낭자하면서도 신음 소리 한마디 없었습니다. 그들은 천주의 가르침이 지엄하다고 하면서 임금이나 부모의 명은 어길지언정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다고 하였으며 칼날 아래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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