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의 사과…미국이 ‘여성 소비’에 대응하는 방식

‘엑스맨’의 사과…미국이 ‘여성 소비’에 대응하는 방식

방승언 기자
입력 2016-06-09 10:28
업데이트 2016-06-0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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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할리우드 리포트
사진=할리우드 리포트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X-Men: Apocalypse)의 홍보용 포스터가 미국에서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문제가 된 포스터에는 ‘오직 강한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문구와 함께 영화의 악당 캐릭터 ‘아포칼립스’(오스카 아이삭)가 주인공 ‘미스틱’(제니퍼 로렌스)의 목을 한 손으로 졸라 허공에 들고 있는 영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 광고의 ‘문제점’을 먼저 공론화 한 것은 영화배우 로즈 맥고완이다. 그는 영화 전문매체 ‘할리우드 리포트’와 한 인터뷰에서 “여성을 향한 일상적 폭력(casual violence)을 광고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백인이 흑인의 목을, 혹은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의 목을 조르고 있는 장면이었다고 가정하면 그 반향은 엄청났을 것”이라며 현지의 대중과 여론이 인종차별 등 다른 종류의 차별에 비해 성차별 이슈에만 유독 둔감하다고 주장했다.

가디언, 텔레그래프, 허핑턴포스트 등 외신들은 맥고완의 주장에 대체적으로 동조하는 분위기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를 고려하면 해당 장면에서 여성 차별 혹은 여성 혐오의 메시지를 읽어내기 힘들지만 인쇄광고에는 전후맥락이 드러나지 않는 만큼 장면 선정에 더 유의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 이는 아동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인쇄광고물의 특성을 고려한 평가로 보인다. 해당 광고는 실제로 다양한 크기의 옥외간판으로 제작된 바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불만 표출에 영화 배급사 20세기 폭스는 사과의 뜻을 밝히고 문제가 된 광고를 모두 철거하겠다고 발표했다. 폭스는 “우리는 악당 ‘아포칼립스’의 사악한 면모를 부각시키고자 했고, 때문에 해당 장면이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며 “우리의 결정에 불편을 느꼈을 모든 분들에게 사과한다”고 해명했다.

작가 라파엘 앨버커키가 그린 ‘배트걸 #41’의 배리언트 커버(variant cover)
작가 라파엘 앨버커키가 그린 ‘배트걸 #41’의 배리언트 커버(variant cover) 사진=DC 코믹스
이번 사례와 같이 대중매체 속에서 여성이 묘사되는 방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미국에서 새로운 움직임은 아니다. 그러나 통념적으로 ‘남성 중심적’, ‘소수 취향’으로 여겨지던 슈퍼히어로 만화, 비디오 게임 등의 서브컬처 분야에서도 페미니즘적 인식이 신속하게 확산되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일례로 지난해 만화출판사 ‘DC 코믹스’가 내놓은 ‘배트걸’ 시리즈의 41번째 이슈 또한 한 장의 삽화로 인해 이번 엑스맨 포스터가 야기한 것과 매우 흡사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해당 삽화에서 주인공 배트걸은 악당 ‘조커’에 붙들려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다. 조커는 손가락을 배트걸의 뺨에 위협적으로 겨냥한 채 음산한 미소를 짓는다.

‘배트걸’은 본래 악당 조커에게 총격을 맞아 반신불수의 운명을 맞지만 이후 컴퓨터 전문가 히어로 ‘오라클’ 로서 큰 활약을 보인다. 그러나 많은 독자들은 남성 히어로들의 경우 악당에게 큰 부상을 입고도 어렵잖게 재기에 성공하는데 반해, 오라클만은 피습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는 ‘유약한 피해자’로 묘사된다는 점을 지적해왔고, DC 코믹스는 이러한 지적에 부응해 트라우마를 이겨낸 새로운 배트걸을 선보이며 호응을 얻었었다. 문제의 삽화는 이러한 분위기를 지나치게 역행한다는 점에서 반발을 산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기존에 성평등 관련 논의가 비교적 미약했던 분야에서 페미니즘이 점차 핵심 이슈로 대두되는 것은 환영할만한 현상이다. 그러나 일부 마니아들은 서브컬처계에 일종의 ‘무차별 검열’ 바람이 불 것을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로 유명한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의 최신작 ‘오버워치’의 캐릭터 디자인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이런 우려의 원인을 잘 드러내준다.

‘오버워치’ 캐릭터 ‘트레이서’(왼쪽)와 ‘위도우메이커’
‘오버워치’ 캐릭터 ‘트레이서’(왼쪽)와 ‘위도우메이커’ 사진=블리자드
‘오버워치’는 각자의 특기를 지닌 21명의 남녀 캐릭터가 서로 격돌하는 FPS(1인칭 슈터) 게임이다. 문제의 발단은 일부 여성운동가들이 이 게임에 등장하는 몇몇 여성 캐릭터가 ‘비현실적 몸매’를 지니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위도우메이커’, ‘트레이서’, 등의 캐릭터가 몸에 완전히 달라붙는 의상과 지나치게 잘 짜인 체형을 지니고 있다며 블리자드가 그릇된 미의 기준을 제시하고 여성을 상품화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왼쪽부터) ‘파라’, ‘메이’, ‘자리야’
(왼쪽부터) ‘파라’, ‘메이’, ‘자리야’ 사진=블리자드
그러나 블리자드는 그간 작품들에서 주요 여성 캐릭터의 의상 노출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가는 등 여성차별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오버워치’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여서 몸매가 전혀 부각되지 않는 복장을 입은 ‘파라’, ‘메이’, 그리고 우람한 근육질 체격을 자랑하는 ‘자리야’ 등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또한 명랑한 캐릭터인 ‘트레이서’의 승리 포즈가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성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소비자 지적에 이를 빠르게 수정하기도 했다. 다수의 네티즌들은 블리자드가 이처럼 획일적 여성상을 제시하지 않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 더 나아가 게임에 등장하는 ‘비현실적으로 완벽한 몸매’의 인물은 여성들뿐만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최초 문제를 제기한 활동가들이야말로 ‘편파적’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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