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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점 위에 색점 : 누군가의 흔적 위, 지난 시간을 감추고 새로운 시간을 덧입히다

색점 위에 색점 : 누군가의 흔적 위, 지난 시간을 감추고 새로운 시간을 덧입히다

입력 2015-01-26 17:46
업데이트 2015-01-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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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작가 양주혜 개인전 ‘시간의 그물’

작가 양주혜(60)는 2006년 광화문 제자리찾기 공사장에 바코드와 색점으로 광화문을 그려 설치됐던 대형 가림막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있었던 프랑스문화원 설치(1993)에서 시작해 옛 문화관광부 청사 건물, 아르코미술관 외벽, 용산구 한남동 일신빌딩 공사장 펜스, 바닷가, 공터 등 공공적인 성격의 설치 작업과 조형물 작업을 주로 해 온 그가 이번에는 생활에서 친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직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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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위치한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시간의 그물’에는 누군가 사용했던 보자기, 방석, 이불보, 타월과 같은 일상용품과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색점을 찍어 작업한 작품 3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천에 그려진 작품들에서는 공사장 가림막, 미술관 외벽 등 공공적 성격의 설치작업과 달리 보다 개인적이고 친밀감이 느껴진다.

유학 시절 읽어 내기 어려운 프랑스어로 된 책 위에 글자를 지워 나가듯 색칠을 한 것이 그가 30여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 색점 작업이다. 하나의 색점 위에 또 다른 색점을 찍어 나가면서 지난 시간을 감추고 새로운 시간을 덧입힌다. 전시 오픈에 맞춰 기자와 만난 작가는 “내게 색채는 빛의 흔적이고, 점을 찍는 작업은 시간을 시각화하는 방법”이라면서 “색깔의 배열은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이하게도 이번 전시에 사용된 소재들은 모두 누군가 사용했던 것들이다. 심지어 캔버스도 지인이 외국으로 떠나면서 선배들이 남기고 간 것으로 물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에 덧칠을 해 사용했다. 그는 “누군가의 흔적이 있는 바탕에 작업을 했더니 마음이 더 편하더라”라면서 “재료와 작업과정 등을 돌이켜 보면 앞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시간과 그 위에 작업했던 시간들이 작품에 중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천은 직조에 따라 그 위에 칠해진 물감과 조응해 자연스러운 구김과 우그러짐을 만들며 형태가 변했다. 바탕 천 위에 그려진 점과 선은 직물의 성격과 형태의 흐름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시간과 함께 오래 곰삭아 세상에 나온 작품은 물감을 엄청나게 빨아들이는 탓에 무게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작가가 작품과 함께 보낸 시간의 무게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면서 세 아이를 키워야 했던 그는 “한다고 했지만 엄마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 같다”면서 “요즘은 누빈 천에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고 있다. 어머니들의 손바느질처럼 무의미하다고 여겨졌던 작업들에 대한 오마주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시는 2월 25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5-01-2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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