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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조나단은 악플러!/윤숙희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조나단은 악플러!/윤숙희

입력 2012-01-03 00:00
업데이트 2012-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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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 연습이나 더 하고 와라.

하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노래 실력이 늘 리 없지. ㅋㅋㅋ.

조나단이 되면 나는 용감해진다. 두려운 게 없다.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처럼 인터넷이란 바다를 날아다니며 거침없이 행동한다. 부끄러워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인터넷에선 최고 멋진 아이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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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적긁적 긁적긁적.

몸을 긁으며 가수 미라클 기사에 댓글을 달던 나는 효진이가 떠올랐다. 자기 미니 홈피에 미라클 자료가 많다며 보러 오라고 자랑하던 효진이.

나는 효진이의 미니 홈피에 접속했다. 홈피를 예쁘게 꾸며놓아서 그런지 방문자 수가 많다. 미라클과 관련된 사진과 음악파일도 잔뜩 올라와 있다. 이곳저곳을 살피던 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최효진’이라고 쓴 글귀를 보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웩!’이라는 댓글과 함께 토하는 이모티콘을 달았다. 가슴속에 꾹꾹 누르고 있던 것이 튀어나온 느낌이다. 그러나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내 댓글이 지워졌다.

- 헐, 너네 집에는 거울도 없음?

효진이가 지금 미니 홈피에 들어와 있나 보다. 내가 글을 올리기가 무섭게 또 지워졌다. 지우면 지울수록 더 하고 싶어졌다.

- 완전 밥맛!!

그러자 효진이가 내 글 밑에 댓글을 달았다.

- 조나단, 나한테 감정 있니?

- ㄴㄴ.

- 혹시 너 미동초 다니니?

- ㄴㄴ.

시치미를 떼고 계속 댓글을 달고 있을 때였다.

“종일 컴퓨터만 할 거니? 밖에 나가서 산책 좀 하고 와.”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토피에 맑은 공기를 쐬야 낫는다는 둥,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둥, 인스턴트식품 먹지 말라는 둥. 엄마의 잔소리는 애국가 4절보다 길다.

나는 마지못해 일어났다. 컴퓨터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는 게 우선이다.

날씨가 좋아도 딱히 갈 데가 없다. 함께 놀 친구도 없다. 아파트 단지를 세 바퀴째 빙빙 돌고 있을 때였다. 106동에서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나왔다.

앗, 효진이다. 효진이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나는 재빨리 커다란 나무 뒤로 숨었다. 효진이는 나를 보지 못한 듯 그냥 지나치더니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탔다. 일요일에도 학원에 가나 보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컴퓨터를 틀자마자 효진이의 미니 홈피에 접속했다. 대놓고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후다닥 썼다.

- 왕재수!!!

한 시간쯤 지났을까? 영어숙제를 끝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효진이의 미니 홈피에 들어갔다. 아직 효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내가 쓴 글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 내가 쓴 글 밑에 댓글이 두 개나 달려 있다.

- 왕재수 때문에 짜증나 -_-

- ㅇㅇ 왕재수가 우리 반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누굴까? 누가 이런 댓글을 달았을까?

내가 알기로 효진이를 싫어하는 아이는 우리 반에 없다. 다들 쉬는 시간이면 효진이와 친하고 싶어 효진이에게 몰려들었고, 효진이의 눈에 들려고 주위를 빙빙 돌았다. 나도 그랬다. 그 애의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에 끌려 가까이 다가갔었다.

“어머, 네 얼굴 왜 그래? 옮는 피부병 아니니?”

귓가에 효진이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던 그 애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효진이를 더 골려주고 싶었다. 효진이의 사진 밑에다가 분홍돼지 사진을 스캔해서 올렸다. ‘효진이의 진짜 모습’이라는 글과 함께. 내가 사진을 올리기가 무섭게 접속한 아이들이 주렁주렁 댓글을 달았다.

- ㅋㅋㅋ. 공주병 환자가 사실은 돼지였네. 핑크돼지!

- 핑크돼지가 돼지 콜레라를 퍼뜨리고 있다!!

- 더러운 바이러스 덩어리는 지구를 떠나라~

‘어라? 얘네들 봐라. 얘네들도 나처럼 효진이한테 당했었나?’

더듬이를 세운 곤충처럼 눈치만 보던 아이들이 갑자기 효진이에게 달려들자, 컴퓨터를 떠날 수가 없다. 수시로 효진이의 미니 홈피를 들락거리며 댓글을 확인했다. 댓글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거칠어졌다. 욕을 하기도 했다.

이상하다. 그런 댓글을 보고 있으려니 처음엔 시원했지만, 긁으면 긁을수록 따가워지는 내 피부처럼 마음이 따가웠다.

다음날, 황사가 찾아왔다. 올해 들어 최악의 황사란다.

뿌연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교실로 들어서자 아이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앨리스가 누구니, 카멜레온이 누구니 하는 소리도 들렸다. ‘조나단은 누굴까?’ 하는 말에 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네 닉네임이 뭐야?”

효진이의 짝 선화였다. 당황한 내가 더듬거렸다.

“왜··· 왜?”

“네가 혹시 카멜레온 아니니?”

“아, 아니.”

‘더러운 바이러스 덩어리는 지구를 떠나라’라고 했던 앨리스를 떠올리며 나도 선화에게 물었다.

“네가 앨리스 아냐?”

“말도 안 돼. 내가 왜 앨리스야?”

선화가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들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이 아이들도 나처럼 컴퓨터만 틀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건가?’

그때 경쾌하고 맑은 목소리가 문 앞에서 들려왔다.

“얘들아, 안녕?”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본 순간, 모여 있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장난기 많은 남자 아이들은 꿀꿀꿀 하며 돼지 흉내를 내기도 했다.

“무슨 재미있는 일 있어?”

레이스 달린 분홍 원피스를 나풀거리며 효진이가 다가왔다.

두근두근. 효진이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무것도 아냐. 너 노을 들어봤니?”

선화가 재빨리 효진이를 데리고 자리에 앉더니 미라클 이야기를 꺼냈다. 이내 둘은 엠피쓰리로 미라클의 노래를 들으며 까르륵거렸다.

그런데 첫째시간이 끝나고 난 뒤였다. 뿌연 창밖을 내다보며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목덜미를 벅벅 긁고 있을 때였다. 화장실 갔던 효진이가 눈이 퉁퉁 부은 채 교실로 들어섰다. 울었는지 눈동자가 뻘겠다.

‘드디어 미니 홈피에 쓰여 있는 댓글들을 보았구나!’

뜨끔했다. 가려운 목덜미보다 가슴이 더 뜨끔했다. 거기 쓴 댓글들을 모두 내가 쓴 것마냥 가슴이 두 방망이질 쳤다.

효진이는 의자에 앉자마자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미라클 팬클럽 회장한테 문자 왔는데, 미라클 언니가 잠적했대. 자살했을지도 모른대.”

효진이는 옆에 있는 선화를 껴안고 교실이 떠나가도록 울음을 터뜨렸다.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있던 효진이는 조퇴를 하고 집으로 일찍 가버렸다. 마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하루가 지났는지 모르겠다.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미라클, ‘모두들 안녕’이라는 유서 남기고 잠적!’

‘미라클을 벼랑 끝으로 내몬 건 바로 악플!’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듯 미라클에 대한 기사가 잔뜩 올라와 있다. 미라클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그 원인이 평소에 시달리던 악플이라는 글을 보자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런데 기사 밑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무서운 댓글이 달려 있다.

- 차라리 잘됐다. 죽어라 죽어!

소름이 쫙 하고 끼쳤다. 뾰족한 칼에 찔린 것처럼 온몸이 화끈거렸다.

‘어떻게 이렇게 심한 글을 쓸 수 있지?’

불현듯 효진이가 생각났다. 나는 급히 효진이의 미니 홈피로 이동했다.

지워졌다. 악플들이 싹 지워졌다. 악플뿐만이 아니라 미니 홈피에 있던 글이며 사진이 모두 지워졌다. 대신 ‘모두들 안녕!’이라고 쓴 글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귓가에 효진이가 배경음악으로 깔아놓은 ‘노을’이 점점 크게 들렸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미라클이 죽으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울먹이던 효진이가 떠올랐다. 어쩌면 어쩌면······. 불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올랐다. 나는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나갔다. 황사바람을 뚫고 달리고 또 달렸다

‘효진이가 위험해. 효진이를 찾아야 해!’

단숨에 106동 앞까지 달려왔다. 막상 효진이의 집 앞까지 왔지만, 호수를 몰라 주위를 빙빙 돌았다. 한참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뿌연 황사 사이로 레이스 달린 분홍 원피스가 보였다. 효진이다. 효진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다. 한 손에는 ‘언니 돌아와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아프다고 조퇴하고 가더니 미라클을 응원하고 오나 보다.

‘휴, 다행이다. 효진이가 무사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효진이가 다가왔다.

“내가 악플을 당해보니까 미라클 언니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이해가 돼. 아이들이 왜 나한테 악플을 다는 걸까?”

갑작스러운 효진이의 질문에 더듬거렸다.

“그, 그건······ 잘 생각해봐. 아이들이 왜 그런지.”

발그레해진 얼굴로 효진이의 눈을 피한 채 돌아섰다.

황급히 걷고 있는데, 뒤에서 효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조나단!”

흠칫 놀라 발을 멈추었다. 내가 조나단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내 예감이 맞았어. 네가 조나단 맞지?”

효진이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확신에 찬 말투로 몰아붙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내 홈피에 들어와 악플을 달다니, 너무한 거 아냐? 너 때문에 지금 내가 얼마나 마음 아픈 줄 알아? 넌 정말 비겁한 애야.”

효진이의 말에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네가 먼저 상처줬잖아.”

“내가 언제?”

“전학 온 첫날부터 날 전염병환자 보듯 했잖아. 네 눈길이, 네 행동이 날 얼마나 힘들게 했는 줄 알아? 악플보다 더 고통스러웠다구!”

“야, 그건······.”

당혹스러워하는 효진이를 남겨두고 달렸다. 효진이가 따라오며 ‘조해윤’ 하고 불렀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달리다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조나단 뒤에 숨어서 했던 일들을.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효진이의 말처럼 비겁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트니 팬들의 응원에 감동한 미라클이 다시 복귀했다는 기사가 떴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댓글을 달았다.

- 언니가 돌아와서 기뻐요. 언니 힘내세요!

이상하다. 내가 쓴 댓글을 보고 있으니 오히려 내가 힘이 나는 것 같다. 마음도 한결 편안했다. 그때 누군가가 내가 쓴 글 밑에 댓글을 달았다.

- 조나단, 너도 미라클 팬이었구나? 반가워 

핑크공주라는 닉네임을 본 순간, 단박에 효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무시하고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려는데 댓글이 또 달렸다.

- 내일도 황사온대. 학교 올 때 마스크 쓰고 와 

어라? 얘 좀 보게. 웬일로 내 걱정을 다하네. 모니터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지금 효진이가 사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 조나단, 전학 왔을 때보다 요즘 피부가 많이 좋아졌더라!

새로 달린 효진이의 글을 보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머뭇거리던 나는 드디어 댓글을 달았다.

- 핑크공주, 오늘 입은 분홍 원피스 예쁘더라. 넌 분홍색이 잘 어울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웃고 있을 효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웃고 있듯 그 애도 지금 웃고 있을 것이다.

그날 밤, 조나단이라는 갈매기는 인터넷이란 바다를 그 어느 때보다 멋지고 용감하게 날아다녔다.

2012-01-03 4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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