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65>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65>

입력 2013-06-28 00:00
업데이트 2013-06-28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글 김주영 그림 최석운

이미 숫막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무뢰배들에게 입맛을 들여 장시의 행상과는 등지고 살게 된 주모에게 섣부른 수작 붙일 것 없이 그 숫막의 내막은 일행들도 이미 훤하게 꿰고 있었다. 그 숫막은 삽짝 바로 앞에 나귀 두 필 정도를 들여 맬 수 있는 작둣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허섶 쓰레기나 버리는 허청으로 쓰고 있었다. 작둣간을 비켜가면 그 맞은편에 일자 집이 있는데 왼쪽 끝에 널쪽문이 달린 부엌이 있었다. 부엌에서 안방으로 통하는 외짝 지게문이 있고 안방 곁으로 봉노 둘이 나란하게 붙어 있었다. 봉노 앞으로 삐걱거리는 툇마루가 있고 역시 외짝 지게문이 하나씩 있었다. 안방이나 길손이 묵는 봉노나 모두 바람벽 위에 바라지 하나씩이 붙어 있는데, 협소하여 사람이 들락거릴 수는 없었다. 뒷간은 뒤꼍으로 물러나 있었고, 툇마루 끝에 오줌 버캐가 허옇게 낀 구유 하나가 이 집의 주인은 나란 듯이 허연 아가리를 벌린 채 놓여 있었다. 그래서 봉노에서 술추렴하던 주정꾼들이 굳이 뒤꼍의 뒷간까지 가지 않더라도 툇마루 끝으로 가면 소피를 속시원하게 내쏟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적굴 놈들이 어느 쪽이든 한 봉노만 차지하고 술추렴하고 있다면 덮치기가 수월할 것인데, 봉노 둘을 도차지해 일거에 덮치기가 손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게문 둘만 지키고 있다면 제아무리 용력이 드센 놈들이라 할지라도 수월하게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정한조는 척후를 놓아 숫막에 든 산적들의 동정을 놓치지 않고 살피게 하였다. 오늘 아니면 내일 중에 그들을 섬멸하지 못하면 곧장 흩어져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울바자 밖에서 들어도 봉노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들려왔다. 저들끼리 나누는 대화로 짐작하건데, 둘러앉아 투전장을 뽑는 것이 적실했기 때문이다.

“눈깔은 거리 동냥을 보냈나, 똥창에 박고 지내나. 이 패가 보이지 않나?”

“이놈 봐라, 외삼촌이 물에 빠졌나 웃기는 왜 웃어?”

“주리를 안길 놈, 개평 서푼에 눈깔이 뒤집히고 말았군.”

“이런 망할 놈 보게, 돼지 꼬리를 잡고 순대 달라 하네.

“장님 동네에선 애꾸눈 끗발이 제일이라 했어. 서시면 됐지 내 패가 어때서?”

“어디 한번 홀딱 벗겨볼까.”

“장가처를 파는 한이 있더라도 서시*를 뽑아 들고 죽을 수야 없지.”

“노루잠에 개꿈이지. 어디 한번 버텨봐.”

“흰소리 집어치워. 먹을 것이라면 쓴 댓진인들 마다할까.”

걸찍한 언사에 빠르게 오가는 손짓들이 눈에 잡힐 듯한데, 그 투전판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었다. 곁에 있는 봉노에서는 술추렴 또한 밤 깊도록 계속되어 단숨에 덮치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날이 새고 나면 필경 숫막을 뜰 것이었다. 먼동이 틀 때까지 기다린다 해도 오늘밤 안으로 거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저들을 혼비백산하도록 하자면 우선 화승총을 방포하여 얼혼부터 빼놓는 게 상책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미처 예상치 못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안방 지게문이 열리는가 하였더니 난데없는 주모가 불두덩을 실겅실겅 긁으면서 툇마루로 나섰다. 울바자 아래 몸을 숨기고 동정을 살피던 동무가 가만히 뇌까렸다.

“저 음탕한 갈보 좀 보게…… 씹 거웃을 실그정 실그정 긁는 거조를 보아하니 홍문에 붙은 검정콩알이 근질근질한 게로군.”

*서시 : 여섯끗

2013-06-28 21면

많이 본 뉴스

‘금융투자소득세’ 당신의 생각은?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의 투자로 5000만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했을 때 초과분에 한해 20%의 금투세와 2%의 지방소득세를, 3억원 이상은 초과분의 25% 금투세와 2.5%의 지방소득세를 내는 것이 골자입니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제도 도입과 유예,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일정 기간 유예해야 한다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