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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네 안에 웅크린 괴물 잘있니?

애들아, 네 안에 웅크린 괴물 잘있니?

입력 2011-02-19 00:00
업데이트 2011-02-19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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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이정 ‘괴물, 한쪽 눈을 뜨다’ 펴내

중학교 2학년 3반 교실, 뽀송뽀송한 얼굴의 소년도 아니고, 피와 뼈가 튼실히 자리잡은 청년도 아닌 이들이 우글대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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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이정
소설가 은이정
자아는 아직 여물지 않았고, 사람 관계에 대한 공부는 부족하다. 초등학교 때 제대로 접하지 못했던 공부에 대한 중압감에 답답해하며 자신 안에 웅크리고 있는 짐승을 발견한다.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짐승은 ‘야동’을 보거나 친구를 괴롭히는 식으로 안팎에서 불쑥거린다. 말간 개구쟁이 여드름 낯빛으로 그 심각성조차 알지 못한 채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고, 이를 그저 일상 속 유희로 삼을 정도다.

그들 안에 들어 있는 짐승은 악어 또는 하이에나, 사자 등의 모양으로 어슬렁거리다가 문득 괴물이 되기 일쑤다. 순해 보이는 기린, 임팔라, 가시두더지와 같은 초식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배제와 따돌림이라는 나름의 폭력을 통해 피해자 역시 또 다른 공간에서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가 은이정(42)의 ‘괴물, 한쪽 눈을 뜨다’(문학동네 펴냄)는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 즉,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충남 천안의 한 중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은이정은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겪었던 경험과 고민을 핍진하게 작품 안에 녹여냈다.

‘왕따’ 문제는 그동안 문학 작품 속에서 수없이 반복 변주됐던, 새로울 것 없는 주제다. 그러나 ‘괴물’은 다르게 접근한다. 어설픈 해법을 제시하지도, 선생 연(然)하며 아이들을 계몽하지도 않는다.

대신 각자 자신 안에 잠재해 있는 괴물의 실체를 눈 부릅뜨고 마주보게 만든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가해자의 눈으로, 방관자의 눈으로, 피해자의 눈으로, 교사의 눈으로 소설의 시점을 바꿔가며 그 실체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학습 장애를 겪으며 늘상 아프리카 사바나 동물들이 나오는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왕따 영섭이는 현실을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있는 판타지로 인식하며 주변 인물들을 사자, 하이에나, 하마, 코끼리, 악어, 임팔라 등으로 변신시킨다. 스스로 변신을 꾀함은 물론이다.

영섭이는 판타지에 머물며 현실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인식은 현실을 엄정한 눈으로 꿰뚫고 있다. 반장 태준이는 모범생이면서 피해자 영섭이에 대해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먼저 살피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문득문득 집단 가해를 통해 희열을 느끼다가 곧바로 죄의식을 함께 가지는 보통의 청소년 심리를 보여준다.

태준이의 마음 속 충동과 함께 절대적 희생자인 것만 같은 영섭이가 자신 안에도 ‘폭력의 육식동물’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는 장면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지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괴물이 똬리 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괴물은 다스려지는 것이라는 사실.

은이정은 2006년 소천아동문학상 신인상을 받으며 아동문학가로 등단했다. ‘괴물’은 ‘나를 찾아줘’ 등 장편동화 4권을 펴낸 뒤 처음으로 쓴 장편소설이다.

그는 요즘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용의 소설을 쓰고 있다.

“괴물은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인간들 속에 잠재하고 있는 본연의 모습입니다. 통상 공격 욕구, 방어 심리 등으로 드러나죠. 다만 어른들은 이성으로 숨기고 다스리곤 하지만 청소년들은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은이정은 “청소년들이 자신 안에 숨어 있는 감정의 실체를 솔직히 마주하고, 사회적 관계를 통해 이를 다스리는 법을 스스로 얻어 나가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1-02-1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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