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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낯선 공간·낯선 문화의 삶 써보고 싶었다”

김인숙 “낯선 공간·낯선 문화의 삶 써보고 싶었다”

입력 2011-06-11 00:00
업데이트 2011-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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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

건물은 무너졌고, 찢긴 시체들은 떨어진 꽃송이처럼 시멘트 덩어리 틈 사이에 널브러졌다. 임시로 차린 병원은 차라리 죽여 달라며 소리치고 신음하는 환자들로 넘쳐났다. 엄마를, 형제를 찾는 이들이 부르짖는 아우성은 환청인 듯 귓가에 박혔다. 엄청난 지진이 땅을 흔들었고 절벽처럼 일어선 바다가 섬을 뒤덮었다. 대재앙에서 비롯된 죽음과 붕괴, 공포와 불안이 불러온 것은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또는 기억하려야 기억할 수 없는-과거의 한 장면이다. 새 희망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랑도,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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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30년을 앞두고 진정한 사랑을 묻는 신작 장편을 낸 김인숙 작가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체험케 했던 기억에서 빠져나온 일을 얘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한겨레출판 제공
등단 30년을 앞두고 진정한 사랑을 묻는 신작 장편을 낸 김인숙 작가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체험케 했던 기억에서 빠져나온 일을 얘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한겨레출판 제공
김인숙(48)의 새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한겨레출판 펴냄)는 사랑의 진정성을 묻는 작품이면서 또한 한 편의 재난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초 발생한 일본 대지진의 끔찍함을 상기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 7일 만난 김인숙은 아직도 흥분과 충격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한 듯 한껏 상기돼 있었다. 비록 자신이 만들어낸 소설 속 공간의 재앙이었고 죽음의 기억이었지만, 그만큼 강렬하게 소설에 사로잡혀 지낸 탓이리라.

김인숙은 “지난해 11월까지 문학웹진에 연재한 뒤 단행본을 내기 위해 올해 여섯 달 동안 끙끙거리며 고쳐 썼는데 그 사이 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면서 “가능하면 TV도 보지 않고 신문 기사도 읽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지진 이야기를 (작가로서) 얼마나 진정성 있게 쓰고 있는지 자문하면서도, TV 등을 보고서 지진을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과연 옳은 자세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노부부가 쓰나미가 등 뒤에서 몰려오는 순간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는 기사를 봤어요. 대단히 인상적이었죠. 나는 이런 현실을 알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득 생각났다는 투로 쉼표를 찍듯, 천천히 말을 이어 간 김인숙의 볼이 살짝 붉어졌고 눈시울에 물기가 어렸다.

소설 속 공간은 ‘신들의 섬’이라고 하는 이국의 섬이다.

언어에 시제가 따로 없어 어제와 오늘, 내일이 모두 현재형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관광객이 없으면 한시도 지탱할 수 없는 곳이면서, 돈 많은 외국인 여자 또는 남자와 사랑인지 매춘인지 알 수 없는 만남을 꿈꾸는 청춘 남녀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설은 여자 ‘진’과 섬의 관광 가이드 운전 기사 ‘이야나’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진의 남편 유진은 7년 전 섬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온 뒤 아예 혼자 섬에 눌러앉는다.

그리고 진이 국내를 오가는 사이 유진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어린 하인 여자아이에게 살의(殺意)의 충동을 느끼게 되고, ‘기억이 모호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진은 살인 사건과 함께 사라진 유진을 찾기 위해 다시 섬으로 왔고, 거기에서 끔찍한 대지진을 직접 겪는다.

진은 ‘세상이 무너지고 땅이 전부 갈라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겠는가.’라고 읊조리며 7년 전 살인 사건 또한 결국 한 사람의 인생에는 어마어마한 대지진이었음을 깨닫는다. 끔찍한 죽음을 부를 수밖에 없는 지진이 형태를 달리해 7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난 셈이다.

옛 사랑을 되찾고, 깨끗이 버리고, 또 새 사랑을 만나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 거쳐야 할 삶의 필연적 수순이다. 지진과 죽음이 휩쓸고 가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위에 섰다면 무엇이든 새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삶의 수순, 사랑의 운명이다. 설령 그조차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무너질 것임을 뻔히 알더라도 마찬가지다.

김인숙은 “소설에서 굳이 밝히지는 않았지만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5년 전부터 길게는 넉 달, 짧게는 1~2주일 수차례 머물며 쓴 얘기”라면서 “낯선 공간, 낯선 문화의 삶을 써 보고 싶었다. 한국 사람을 아예 등장시키지 않으려고도 했으나 힘이 달려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인숙은 1983년 스무 살 나이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문단에 나왔다. 벌써 등단 30년을 바라본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모두 섭렵한 세월이다.

그는 “30년 가까이 써 왔지만 계속 변화하고 싶은 마음뿐”이라면서 “판타지 소설, 로맨스 소설 등 장르소설도 제대로 써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1-06-1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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