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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語로 풀어낸 江과 인간의 비극

詩語로 풀어낸 江과 인간의 비극

입력 2012-10-20 00:00
업데이트 2012-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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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장편소설 ‘물의 연인들’ 펴낸 시인 김선우

시인 김선우(42)의 세 번째 장편소설 ‘물의 연인들’(민음사 펴냄)을 다 읽고 내려놓을 때의 느낌은 ‘시인이 쓴 소설답다.’는 것이다. 애써 골라 쓴 단어들이며 과거나 현상을 보여주기 위해 굵은 글씨체로 강조한 문장들은 딱 시인의 감수성 그 자체다. 지루한 대목이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건 아니다. 아무튼 시인의 냄새가 물씬 난다.
시인  김선우
시인 김선우


처음에는 이 소설이 유경과 7년 전에 사라져 버린 그녀의 연인, 그리고 그녀의 엄마 한지수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물의 연인’은 15살 수린과 17살 해울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김선우가 “2010년에 쓴 초고를 2011년에 절반쯤 덜어 내며 다시 쓰고 2012년에 또다시 절반쯤 덜어 내며 다시 썼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런 과정에서 물의 연인이 유경과 그녀의 연인에서, 수린·해울로 옮겨 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자비한 남자의 폭력을 고발하는 페미니즘 소설에서 문명의 폭력을 고발하는 생명소설로 넘어갔다고나 할까.

이야기의 공간은 와이강이다. 와이강은 유경이 태어나 자란 곳이고 그녀의 엄마 한지숙과 10대의 한지숙을 취한 뒤 그녀를 평생 괴롭히는 남자의 고향이다. 그 고향에는 세습 무당인 당골네와 그녀의 손녀딸 수린, 와이강에 버려져 죽을 뻔했다가 구조된 뒤 수린과 오누이로 자란 해울이 살고 있다. 또 와이강은 그 근처에서 발견된 뒤 스웨덴에 입양돼 자란 ‘유경의 연인’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유경의 연인 이름은 스스로 책을 읽어 가며 찾아보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다.

사람들의 먹는 물로, 물가에서 멱을 감을 수 있는 놀이터로, 그 주변에 야생 수국이 피어 관광지로도 아름다운 와이강은 생명의 원천이다. 와이강에 기대어 사는 생명은 인간만이 아니다. 버들치·놋쇠·물고기·모래무지·꺽지·퉁가리·쉬리·다슬기 같은 물 것들, 쑥부쟁이·달맞이꽃·달뿌리풀·패랭이꽃 등 땅의 것들, 꼬마물떼새·노랑할미새·원앙새·물총새·비오리 같은 날것들에게도 삶의 원천이 된다. 모두 와이강에서 퍼져나가 연어처럼 와이강으로 모여든다.

수천 년을 무심하고 조화롭게 잘 살아왔던 와이강에 ‘강 생명 살리기’ ‘홍수 예방’이라며 흙탕물을 일으키는 인간들이 나타나면서 변고가 생긴다. 강바닥의 바위가 다이너마이트에 의해 폭파당하고 물고기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며 죽어 떠올랐다. 와이강과 와이산을 모시는 당골네는 강바닥을 뒤집으면 후환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 첫 희생자가 손녀 수린이다. 수린은 공사가 시작되자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점점 상태가 나빠진다. 토하고 쓰러지고 발작을 하다가 언제부턴가 피부에서 진물이 나고 딱딱해지는 등 독일의 추상화가 클레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클레는 ‘유경의 연인’이 좋아하는 화가다.

현대의학에서 수린의 병명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이라고 진단된다. 17살의 해울은 원인불명으로 하루하루 죽어 가는 여동생을 살리려면 공사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울의 생각은 비상식적인 미신으로 치부된다. 해울의 담임교사인 유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골리앗을 향해 든 다윗의 돌팔매지요. (중략) 신은 다윗의 편을 들었지만 지금의 신은 권력의 편인걸요. 정부에서 하는 일을 어쩌겠어요? 안 그래요?”(177쪽) 유 선생의 이런 발언은 ‘4대강 사업’을 대하던 한국 사람들의 복잡하고 뒤틀린 심사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부의 4대강 사업을 꾸준히 반대해 온 김선우가 이 소설을 쓴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강원도 출신으로 시내와 냇가, 강을 보고 자랐을 김선우는 2009년 12월 4대강 사업 예산안이 통과됐을 때부터 많이 아팠고 눈물이 나서 우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녀는 아마도 ‘강변에서 채소를 기르고 심어 자란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동화를 쓰고 사랑을 하면서 그 옆에서 강이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런 삶을 꿈꿨을지도 모르겠다.

유경은 자신의 연인을 유혹해 잠자리를 가진 유 선생에게 일종의 화해 편지를 쓴다. 그 편지 말미의 인사말이 독자들에게도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보이는 인연보다 안 보이는 인연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수께끼 같은 인생이고 인연입니다.” 언젠가는 분명 인간을 죽일지도 모를 문명의 무지함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2012-10-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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