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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를 배워라 그리고 가진 자들에게 맞대응 하라

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를 배워라 그리고 가진 자들에게 맞대응 하라

입력 2013-01-12 00:00
업데이트 2013-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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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김상근 지음/21세기북스 펴냄

속칭 진보의 멘붕이 거세다. ‘나치 치하’ 운운이 나오더니, 곧이어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삼은 빅토르 위고 원작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인기를 끌고, 근대 영국인들의 밑바닥 삶을 가장 잘 묘사해 냈다는 찰스 디킨스 소설을 한국적으로 변주한 단편소설집 ‘헬로 미스터 디킨스’가 출간됐다. 그게 얼마나 실체와 가까운지의 문제는 일단 밀쳐두고, 많은 이들의 속이 헛헛하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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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년 체사레 보르자(왼쪽)의 침공을 저지하라는 피렌체 공화정의 명령에 따라 그와 협상을 벌이고 있는 마키아벨리. 넉 달 동안 협상을 진행하면서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가 얼마나 교활하고 잔혹하게 권력을 장악해 나가는지 확인했고, 이 경험이 ‘군주론’에 영향을 끼쳤다. 21세기북스 제공
1502년 체사레 보르자(왼쪽)의 침공을 저지하라는 피렌체 공화정의 명령에 따라 그와 협상을 벌이고 있는 마키아벨리. 넉 달 동안 협상을 진행하면서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가 얼마나 교활하고 잔혹하게 권력을 장악해 나가는지 확인했고, 이 경험이 ‘군주론’에 영향을 끼쳤다.
21세기북스 제공
그러면 이 책은 어떨까. ‘군주론’으로 유명한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일생을 다룬 ‘마키아벨리’(김상근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이 책은 아예 표지에다 마키아벨리의 한마디를 써놨다. “울지 마라.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억울하고 분하고 못참겠다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술 마시며 이민가자고 푸념을 해댄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는 얘기다.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인 저자가 마키아벨리를 읽는 관점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이것이다. ‘권모술수는 약자의 미덕이다.’ 마키아벨리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가진 자들이 쓰는 권모술수가 무엇인지 꿰뚫어보고 그에 정확히 대응해 이겨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권모술수를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비도덕적이고 더러운 그 무엇이라고 깎아내리면서, 울며 어깨를 겯고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라고 노래해 봐야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노예의 도덕’이 얼핏 머리에 스친다. 그 노예의 도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권모술수가 가진 자의 악덕이 아니라 약자의 미덕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가 마키아벨리를 두고 “힘과 권력을 가진 강자에게 권모술수를 가르친 음흉한 참모”가 아니라 “약자들의 수호성자”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군주론’에 드러난 마키아벨리식 사고방식이 당대에도 놀라운 것이긴 했다. 사후 40여년쯤 지난 1569년에 발행된 영어사전에 이미 ‘Machiavellian’이란 형용사가 등장하는데, 그 뜻은 ‘통치술에 있어서 권모술수를 부리는’이다. 그런데 이는 양 날의 칼이다. 교활한 수법을 공개해 버림으로써 대응할 수 있는 방법도 생긴다. 가령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사람인 영국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곡 ‘몰타의 유대인’에는 마키아벨리가 등장하는데 그의 대사는 이렇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책에 대한 비난을 퍼붓지.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몰래 내 책을 읽는다네. 내 책을 몰래 읽은 자는 교황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내 책을 던져버린 자는 경쟁자들이 몰래 탄 독약을 성배처럼 들게 되지.”

어떻게 이런 해석을 하게 됐던가.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관심이 오직 조국 피렌체의 부국강병뿐이었다고 본다. 다른 건 부차적인 문제다. 왜. 저자는 마키아벨리 일생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세 가지를 든다. 1479년 나폴리 왕국군의 침공, 1494년 프랑스 샤를 8세의 침공, 로마를 쑥대밭으로 만든 1527년 스페인군의 진군. 그의 조국 피렌체는 주변 강국들에 늘 시달렸다. 고통받는 피렌체 시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화신, 현대 정치공학의 선두주자로 간주하는 연구자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군주론’과 그 뒤에 나온 ‘로마사 논고’ 간의 불일치다. ‘군주론’에서 군주의 냉혹한 통치술을 설명하던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에서는 돌연 군주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공화정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엔 별로 이상하지 않다. 피렌체가 부국강병의 길로만 나간다면, 군주제든 공화정이든 별 의미가 없어서다. ‘군주론’은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시 장악했을 때 쓴 글이다. 힘내라고 ‘군주론’을 썼건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피렌체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걸기로 했다. 너희들이 나서서 뭔가를 바꿔보라고 주문한 것이, 그래서 자기로서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고 밝히면서 쓴 책이 바로 ‘로마사 논고’다. 남들이 보기엔 여기에 붙었다 저기에 붙었다 이상한 행동이었을지 몰라도, 마키아벨리에게는 오직 피렌체의 부국강병 한 길이었다는 해석이다. “조국에 대한 나의 충성심과 공직자로서의 정직함은 내가 가진 가난으로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는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자부심이다.

저자는 ‘군주론’이 냉혹한 체사레 보르자를 열심히 띄웠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본다. 저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마키아벨리즘은 사실은 ‘체사레주의’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까지 해뒀다. 왜 그랬을까.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시 장악하기 위해 내세운 인물이 체사레 보르자였다. 거기다 체사레 보르자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이었다. 당시 메디치 가문은 교황 레오 10세를 처음 배출해 냈다. 체사레 보르자는 비록 실패했지만, 같은 교황의 일족인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부국강병을 단호하게 추진해 달라고 기원한 것이다. 물론 자기를 참모로 써서.

마지막으로 마키아벨리 하면 시오노 나나미의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과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로마사 전공자들의 반응처럼, 르네상스 연구자인 저자의 평가도 냉혹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두고 “기초적인 사료 분석의 미숙함”, “역사가 아니라 일종의 수필”이라고 평하더니 마침내 “기존 사료를 모아다가 대충 얼버무리고 개인적 감상과 소회를 뒤섞는 것은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처럼 ‘글 쓰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고까지 해뒀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봤다면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 1만 8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2013-01-1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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