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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땐 새 문화 접한 듯하지만 서울 오면 결국 닮은 꼴”

“여행 땐 새 문화 접한 듯하지만 서울 오면 결국 닮은 꼴”

입력 2013-09-25 00:00
업데이트 2013-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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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장편소설 ‘천국에서’ 펴낸 문단의 앙팡 테리블 김사과

‘그 여름 케이가 뉴욕에서 경험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확산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서양과 일부 아시아 국가의 중산층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 나간 삶의 양식으로, 전후 부흥기가 남긴 마지막 한 조각의 케이크였다. 즉, 케이를 포함한 이 젊은이들은 20세기에 대량생산된 중산층의 마지막 세대, 혹은 몰락하는 중산층의 가장 첫 번째 세대였다.’(90쪽)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번 작품은 ‘예외적’이다. 김사과는 “내 성격이 극단적이어서 극단적인 설정과 인물을 다루는 건 쉬웠는데 주눅이 들고 주변에 잘 혹하는 평범한 인물을 다루려니 답답해서 혼났다”고 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번 작품은 ‘예외적’이다. 김사과는 “내 성격이 극단적이어서 극단적인 설정과 인물을 다루는 건 쉬웠는데 주눅이 들고 주변에 잘 혹하는 평범한 인물을 다루려니 답답해서 혼났다”고 했다.
같은 브랜드와 같은 취향을 소비하며 빠르게 동질화되는 세계, 거듭되는 경제위기로 중산층이라는 안온한 요람에서 탈락하는 사람들, 출구 없는 세계에서 불안과 환멸에 사로잡힌 청년들….

소설가 김사과(29)가 새 장편 ‘천국에서’(창비)에서 그린 오늘날의 세계상이다. 스물한 살이던 2001년 창비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그는 극단적인 설정의 문제작을 잇달아 내며 문단의 ‘앙팡 테리블’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분노, 폭력, 분열증 등이 전작들에서 수렴되는 단어였다면 신작은 환멸, 냉소, 불안 등의 단어로 모아진다.

20대 중반 여대생 케이는 여름 한철 뉴욕에서 월가 점령시위와 슬라보예 지젝을 세련되게 소비하는 서머와 댄을 만난다. 소위 ‘힙스터’(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좇는 부류)들과 어울리며 한껏 고양돼 있던 케이는 한경희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서울과 광주, 인천을 떠돌며 여러 인물과 만나고 헤어지는 케이는 그들의 비루함과 진부함이 자신의 것인 것만 같아 불안에 떨고 속물적인 세계에 환멸을 느낀다.

작가는 여행에 대한 회의가 소설을 잉태했다고 했다.

“뉴욕을 가나 유럽 어느 도시를 가나 여행을 떠나면 자기 딴에는 새로운 문화를 접했다고 생각하지만 서울에 돌아오면 결국 닮은꼴이에요.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느낌이죠. 인종, 지방색, 국가라는 경계도 퇴색되고 세계가 하나의 계급 체계로 묶이고 있고요. 최상층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놀고 중산층은 그 밖으로 튕겨 나갈까봐 호들갑을 떨고 나머지 그 아래 사람들은 남아 있는 파이를 가지고 싸우고요. 그 속에서 환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흥미로운 지점은 이야기의 틈새를 중간중간 비집고 들어오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논평이다. 서사의 재미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지만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설득력 있게 읽힌다.

“소설은 모든 장르를 다 포섭하는 복합장르라는 생각해요. 모든 걸 다 먹어치울 수 있는 잡식성이요. 그래서 저도 이번 소설에도 논평, SNS식 글쓰기 등 여러 형식을 동원해 봤어요.”

소설 속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출신 등을 쌓아 올리기 위해 그는 지난해 봄 뉴욕으로 ‘로케이션’까지 다녀왔다. 힙스터들의 구역인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 등에 살아보기도 하고 힙스터 소설의 왕으로 추앙받는 타이완계 미국 작가 타오린의 소설과 블로그, 칼럼까지 섭렵했다.

“1960년대 미국 청년들의 반문화 운동을 살펴보려고 문화연구 책을 들여다보고 총기 문제에 대해 알고 싶어서 미국 지역 라디오까지 찾아들었어요. 제가 너무 미국문화에 탐닉하니까 주변에서 ‘친미주의자’라고 놀릴 정도였죠.”(웃음)

환멸을 얘기하지만 작가는 그 안에 머물지 않는다. 케이의 주변 인물들은 ‘넌 수족관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압박하지만 케이는 그 경계를 스스로 지워낸다.

“수족관이라는 건 우리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일 수 있어요. 존재한다고 여기면 강력한 힘을 끼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자유로울 수 있는 거죠. 출신 배경이나 부동산, 취향 등이 사람을 결정하는 세상에서 개인도 자유 의지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3-09-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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