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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꾼 같은 소설가는 왜 안나푸르나로 떠났을까

싸움꾼 같은 소설가는 왜 안나푸르나로 떠났을까

입력 2014-04-21 00:00
업데이트 201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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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에세이 ‘히말라야 환상 방황’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유정(48)은 타고난 ‘싸움꾼’이다. 야심한 밤을 틈타 찾는다는 동네 복싱장에선 남자 코치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너무 야무지게 펀치를 날린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올해로 결혼 20년차인 작가는 결혼 뒤 10년간 연하의 남편과 치열하게 싸웠다. “나는 편하게 사는 편인데, 남편은 롤로 된 테이프를 들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먼지를 치울 만큼 성격 차가 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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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네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종주에 도전한 소설가 정유정(오른쪽). 해발 5400m가 넘는 ‘소롱라패스’의 표지판 앞에서 동료 작가 김혜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은행나무 제공
지난해 9월 네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종주에 도전한 소설가 정유정(오른쪽). 해발 5400m가 넘는 ‘소롱라패스’의 표지판 앞에서 동료 작가 김혜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은행나무 제공
간호사로 일하다 과감히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마흔 살 넘어 소설가의 꿈을 이루기까지는 더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다. 20대 때는 어머니 병수발과 동생 뒷바라지로 허기 가득한 고독한 시간을 견뎌야 했고, 지리산 암자에 머물며 ‘글발’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이렇게 성장한 ‘싸움꾼’ 작가는 소설 ‘7년의 밤’ ‘28’로 침체된 국내 출판시장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당당히 맞섰다. 하지만 지난해 중순 에너지가 극심하게 고갈돼 무기력해진 자신과 마주하게 됐다. 전염병을 소재로 한 소설 ‘28’을 탈고한 직후였다.

“내리 8년간 골방에 갇혀 네 편의 장편소설을 뽑아내니 ‘쓰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진 것을 느꼈어요. 완전히 방전된 나 자신을 발견했죠.”

욕망이란 엔진을 되살리기 위한 탈출구는 네팔의 히말라야. 지난해 9월 ‘신들의 땅’이라 불리는 안나푸르나의 영봉을 끼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무려 17일간 걷고, 또 걸었다. 생애 첫 해외여행인 안나푸르나 환상 종주에는 해발 5416m의 ‘소롱라패스’를 넘는 관문도 있었다. 이때마다 독자에게 “정유정 힘 떨어졌네”라는 소리를 듣는 자신을 떠올리며, 악착같이 움직였다.

불씨를 되살리기 위한 여정에는 동료 작가인 김혜나와 현지 가이드인 검부 라이, 짐꾼인 버럼 라이가 동행했다. “순박한 네팔 사람들 못지않게 안나푸르나 자체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어요.”

이런 여행의 기록은 에세이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은행나무)을 통해 최근 고스란히 세상에 드러났다.

작가는 과연 잃었던 ‘싸움꾼’ 기질을 되찾았을까. “안나푸르나는 소설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승민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워하던 곳이죠. 개인적으로도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미지의 공간이었어요. 이곳에 타임캡슐을 묻기 위해 여섯 글자의 메모(전사를 찾아서)를 품에 안고 갔습니다.”

그는 벌써 후속작을 구상 중이다. 2016년 출판 예정인 새 소설은 1인칭 시점의 사이코패스물이다. 최근에는 생애 두 번째 해외여행을 떠나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이어지는 40일간의 900㎞ 순례길을 돌기도 했다. “민낯을 보여주고 투지도 되살아났으니 이제부터 달리겠다”는 게 이 ‘싸움꾼’ 작가의 다짐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4-04-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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