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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50·끝> 골드바흐의 추측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50·끝> 골드바흐의 추측

입력 2015-09-06 23:36
업데이트 2015-09-0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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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그가 미친 하나의 문제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위 명제는 얼핏 보면 단순하고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270여년 동안 많은 수학자들을 도전하게 하고 절망에 빠뜨린 수학계의 풀리지 않는 난제, 이름하여 ‘골드바흐의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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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권경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1742년 독일 출신의 수학자 크리스티안 골드바흐는 당시 최고의 수학자였던 레온하르트 오일러에게 ‘2보다 큰 모든 정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내용이 적힌 편지를 보낸다. 당시 골드바흐는 1을 소수로 간주했기 때문에 3=1+1+1, 4=1+1+2, 5=1+1+3, 6=1+2+3, 7=2+2+3과 같이 2보다 큰 모든 정수를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편지를 받은 오일러는 이 내용을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와 ‘5보다 큰 모든 홀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의 두 가지로 나눠 정리했는데 이 중 전자를 가리켜 ‘골드바흐의 추측’이라고 한다. 오일러는 골드바흐의 추측이 옳다고 생각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실제 이 명제에서 어긋나는 짝수를 현재까지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커다란 수를 대입해 가며 확인한다고 해도 이는 수학적 증명은 될 수 없다. 하나라도 예외가 나타나면 이 명제는 거짓이 되고 마는데, 무한한 수를 두고 언제까지나 대입만 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은 이러한 골드바흐의 추측을 소재로 한 소설로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한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지은이는 그리스 태생의 수학 천재 소설가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62)다.

작품 속 화자인 ‘나’는 집안의 골칫거리라 여겨지는 페트로스 삼촌이 사실은 뛰어난 수학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삼촌이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매달려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과 인생을 탕진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오히려 삼촌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자신도 수학자가 돼야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이 작품은 삼촌의 뒤를 이은 ‘나’의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기 위한 도전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페트로스 삼촌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수학에 별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수학자의 꿈을 접게 되는데, 대신 삼촌이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세상에서 잊히고 실패한 인생의 대변자처럼 돼 버렸는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일찍이 수학적 천재성을 인정받은, 아테네 출신의 페트로스는 24세에 독일 뮌헨대의 정교수가 된다. 그에게는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자신을 떠나 다른 사람과 결혼한 것 때문에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갖게 된다. 결국 그는 그녀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너에게 끌린 건 네가 소문난 천재이기 때문이야’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그 누구도 풀지 못했던 수학 문제를 풀어 자신의 천재성을 입증해 보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바로 골드바흐의 추측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대신 이 문제에 집착하면서 본의 아니게 은둔자가 되어 혼자만의 연구실에 틀어박히게 되고 결국 친구도 가족도 수학자로서 촉망받던 장밋빛 미래도 다 잃게 된다.

수학자와 수학 문제를 다룬 소설답게 이 작품 속에는 수학사를 수놓은 천재 수학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물론 페트로스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 또한 모델이 된 인물이 있다. 바로 그리스 출신의 수학자, 흐리스토스 파파키리아코풀로스. 이름이 너무 길어 파파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는 골드바흐의 추측과 더불어 수학계의 난제라고 꼽혔던 ‘푸앵카레 추측’을 풀기 위해 수도승이란 별명까지 얻으며 연구에 매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젊은 날에는 부모의 반대로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졌던 경험이 있고 미국에 온 뒤 빨리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자기에게 어울리는 여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 그가 바로 페트로스의 모델이다.

그 밖에도 정수론의 대가라 불리는 영국의 G H 하디와 J E 리틀우드, 그리고 32세의 젊은 나이에 숨졌으나 ‘분할 이론’으로 초끈 이론의 기반을 마련한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이 페트로스의 절친한 동료 수학자로서 지면을 장식한다. 또한 ‘참명제라고 항상 증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불완전성 원리의 괴델과 ‘어떠한 명제가 선험적으로 증명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증명해 보기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을 밝혀낸 앨런 튜링까지, 이 작품은 페트로스가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매달렸다가 결국 이를 포기하기까지의 과정 속에 적절하게 실존 수학자들을 등장시켜 작품의 허구성을 빛바래게 만드는 효과를 낳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의 매력은 수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수학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순수 수학에 대한 감탄과 호의를 이끌어 낸다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작품 여기저기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수학자들의 모습과 그들이 추구하는 수학의 세계는 분명 순수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페트로스의 삶은 그 자체로 인생의 여러 단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실연당한 여인에게 보란 듯이 내세우고 싶은 성공에 대한 열망, 절친한 동료였지만 라이벌이기도 했던 라마누잔의 죽음에 남모르게 느꼈던 안도감,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움켜쥐고 있는 데 대한 초조함과 불안감, 잠깐 동안이었지만 문제를 해결했다고 확신한 데서 오는 성취감과 희열감 등 우리가 희로애락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면면을 치밀한 구성과 유머러스한 문체로 그려 내고 있다는 데 이 작품의 또 다른 진가가 숨어 있다.

작품 속에서 페트로스는 누가 뭐라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실패한 게 아니야.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지’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어쩌다 보니 운 나쁘게도 참이란 것을 증명할 수 없는 문제에 매달리게 된 것뿐이다. 어쩌면 생각하기에 따라 그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일 수도 있다. 자신의 모든 재능과 열정 그리고 젊음을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바칠 수 있는 삶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페트로스처럼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산다. 증명하기 전까지는 그것이 증명 가능한 명제인지 불가능한 명제인지 알 수 없다는 튜링의 확인처럼 그 꿈을 이루는 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최선을 다해 그 꿈을 향해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전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절망할 권리가 있다.

권경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2015-09-0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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