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당신도 마음이 아팠군요

당신도 마음이 아팠군요

김성호 기자
입력 2015-10-23 22:32
업데이트 2015-10-23 23:28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모든 시대에 걸쳐 존재한 ‘상상병’ 심기증…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내 몸”

상상병 환자들/브라이언 딜런 지음/이문희 옮김/작가정신/380쪽/1만 8000원

2009년 약물 과용 심장마비로 사망한 대중가수 마이클 잭슨은 평생 과도한 성형수술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심한 여드름, 아버지를 닮은 ‘왕코’, 유난히 검은 피부…. 그 치부(?)를 대중에게 감추려는 회피의 몸부림에 온갖 잡담이 쏟아졌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 무성한 소문과 잡담 이면에 숨은 그의 개인적 고통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미지 확대

마이클 잭슨이 앓았던 그 고통은 의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심기증’에 해당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건강염려증’이다. ‘뒷받침할 만한 의학적 증거가 없는데도 몸에 질환이 있다고 의심하거나 더 심한 경우 의심이 반복되면서 행동양식으로 굳어지고 멈추라는 무수한 암시 따위에 아랑곳없이 같은 생동과 실수를 반복하는 경향.’ 이렇게 정의되는 심기증은 모든 시대에 걸쳐 존재했다고 한다. 18세기에는 근대적 사치의 과잉에서 비롯됐고, 21세기 들어서는 과도한 여가와 의학 지식, 혹은 사이비 지식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기인한다고 여겨지기 일쑤이다.

‘상상병 환자들’은 예술문화 계간지 ‘캐비닛’ 영국지부 편집장이 심기증을 앓았던 유명한 위인들을 들춰 흥미롭다. 제임스 보즈웰, 샬럿 브론테, 찰스 다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앨리스 제임스, 다니엘 파울 슈레버, 마르셀 프루스트, 글렌 굴드, 앤디 워홀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가운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몇몇 인물을 한번 들여다보자. ‘제인 에어’의 작가 샬럿 브론테는 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만성통증과 불안에 시달린 신경병 환자였고,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사람들과 어울리길 꺼려 고독한 시간을 간절히 원한 소화불량증 환자였다. ‘백의의 천사’로 널리 알려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자신을 ‘병사들의 어머니’로 여긴 지독한 일 중독자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 작가 앨리스 제임스는 질병마저 예술작업의 일부라 믿었던 감각과민증 환자였고, 프로이트가 논문 제목으로 이용했다는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저자 다니엘 파울 슈레버는 여자가 되고 싶은 나르시시스트로 성기와 털이 사라지는 망상에 빠졌다고 한다.

이 밖에도 책에는 이른바 이름난 상상병 환자들의 이야기들이 소상하게 풀어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약초 연기 자욱하고 빛이 들지 않는 집필실에 스스로를 가둔 천식 환자였으며,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타인과의 신체접촉을 극도로 싫어해 손가락을 다칠까 봐 악수까지 거부하는 강박증 환자였다. 또 팝 아트 선구자 앤디 워홀은 여드름투성이에 딸기코인 얼굴과 왜소한 몸을 부끄러워한 외모 콤플렉스 탓에 미용 시술에 극도로 의존했다.

책은 주로 작가나 예술가, 혹은 많은 글을 남긴 저자를 대상으로 삼았지만 심기병을 앓는 사례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그리고 그 상상병의 환자들은 군주며 정치인, 재계 거물 등에도 폭넓게 포진했을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이들이 앓고 있을 마음의 병이라는 것이다.

책의 특징은 그 마음의 병이 어떻게 유래했는지를 밝히는 데 있지 않다. “심기증의 역사는 더 확실하고 친숙한 의학사의 엑스레이 사진이다. 그 사진은 몸에 대한 우리의 희망과 두려움의 숨은 구조를 드러낸다.” 그 말처럼 마음의 병이 어떻게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독자들이 파악하게 만들고 있다. 종전 고통과 불안, 질병을 위인들의 위업을 돋보이게 하는 부속물로 여긴 것과 달리 상상병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관점의 역전’이 돋보인다.

그러면 그 심기병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유명인사의 유명한 명구로 답을 대신한다. “건강은 없다. 우리는 기껏 중립 상태를 누릴 뿐이라고 의사는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건강하지 않으며 건강할 수도 없음을 아는 것보다 더 나쁜 병이 있을까”(존 던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이 세상에서 내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내 몸이다”(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 ‘잠언집’) 옮긴이의 말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시작되고 주입되는 진단과 검사와 처방과 의심과 불안과 공포가 내면화되고 일상화된 세계에서 우리의 불안을 가장 기뻐할 이들은 누구일까.”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15-10-24 19면

많이 본 뉴스

‘금융투자소득세’ 당신의 생각은?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의 투자로 5000만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했을 때 초과분에 한해 20%의 금투세와 2%의 지방소득세를, 3억원 이상은 초과분의 25% 금투세와 2.5%의 지방소득세를 내는 것이 골자입니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제도 도입과 유예,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일정 기간 유예해야 한다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