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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하늘도 절망의 고엽제도… 베트남 아이에겐 ‘무지개’였다

희망의 하늘도 절망의 고엽제도… 베트남 아이에겐 ‘무지개’였다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22-12-08 20:04
업데이트 2022-12-0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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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킴 투이 지음/윤진 옮김/문학과지성사/177쪽/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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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부의 한 마을에서 맹인으로 태어난 7살 소녀(오른쪽 첫 번째).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로 인해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 1078명 중 272명이 장애를 안고 있다. AP 연합뉴스
베트남 중부의 한 마을에서 맹인으로 태어난 7살 소녀(오른쪽 첫 번째).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로 인해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 1078명 중 272명이 장애를 안고 있다.
AP 연합뉴스
1945년 독립선언 이후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한 인도차이나 전쟁까지. 베트남 현대사도 우리만큼이나 굴곡졌다. 이 굵직한 역사 뒤편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고무나무 농장을 운영하는 알렉상드르와 이를 망가뜨리고자 일꾼으로 들어온 마이의 사랑,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떰이 미군의 습격으로 몸 파는 여인이 된 사연, 그가 낳은 홍과 그를 돌보는 흑인 혼혈아 루이가 가족을 이루기까지 ‘앰’(Em)은 베트남 현대사의 질곡을 맞닥뜨린 3대의 삶을 직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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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투이
킴 투이
 1968년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에서 태어난 저자 킴 투이는 열 살 때 보트피플로 조국을 떠나 캐나다 퀘벡에 정착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변호사와 통·번역 일을 했고, 베트남 식당을 운영하다 마흔 살에 작가가 됐다. 퀘벡에 정착하기까지를 쓴 자전적 첫 소설 ‘루‘에 이어 베트남 요리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 ‘만’으로 국제적 작가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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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베트남 바오짜이 마을에서 여성과 어린 아이들이 진흙탕 속에서 웅크린 채 공습을 피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1966년 베트남 바오짜이 마을에서 여성과 어린 아이들이 진흙탕 속에서 웅크린 채 공습을 피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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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 29일 사이공 건물 꼭대기에 자리잡은 에어 아메리카 헬리콥터에 피란민들이 줄을 지어 탑승하고 있다. 소설 ‘앰’은 1960년대 이후 베트남 현대사를 단단하게 직조한다.  로이터 연합뉴스
1975년 4월 29일 사이공 건물 꼭대기에 자리잡은 에어 아메리카 헬리콥터에 피란민들이 줄을 지어 탑승하고 있다. 소설 ‘앰’은 1960년대 이후 베트남 현대사를 단단하게 직조한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소설 역시 역사 속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을 조명한다. 북베트남군의 은신처인 정글에 고엽제를 살포한 ‘랜치 핸드 작전’(1962~1971)을 시작으로 떰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기까지 주요 사건들 위에 보통 사람들을 세웠다. 구정 대공세 이후 미군이 민간인 수백명을 무차별 학살한 ‘미라이 학살’(1968), 전쟁고아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려 했다가 비행기 폭발로 아이들을 포함해 150여명이 사망한 ‘베이비리프트 작전’(1975), 베트남전 마지막 날 미국 대사관 옥상에서 미국인과 베트남인을 헬기로 철수시킨 ‘프리퀀트 윈드 작전’(1975) 등이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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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여쪽에 50여년 현대사를 촘촘히 넣었다. “진짜 진실, 개인적인 진실을 직관적인 진실과 구분해 내는 법을 알았더라면 나는 기꺼이 엉킨 실을 풀어 정리한 뒤 다시 붙도록 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야기 구성이 전체적으로 성기다. 굵직한 뼈대에 실핏줄이 엉긴 불완전한 사람 같다.

 그럼에도 단단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저자 특유의 문체 덕이다. 앞선 소설들과 달리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등장인물 대사 없이 저자의 서술로만 이야기를 끌어간다. “지난밤 떰은 어린아이로 잠들었다. 이튿날 깨어났을 땐 가족을 다 잃었다. (중략) 단 네 시간 만에, 늘 길게 땋아 늘어뜨렸던 어린 소녀의 머리카락이 가죽이 벗겨진 머리들 앞에서 헝클어졌다.”(47쪽) 이처럼 구체적인 묘사 없이도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리게 한다.

 “무지개는 희망, 기쁨, 완전함을 나타낸다. 그런데 미군이 베트남 땅에 쏟아부은 제초제들의 이름 역시 무지개(rainbow)였다. 어릴 때 떰은 무더운 건기와 몬순의 우기 사이에 난데없이 가을이 생겨나기라도 한 듯 농장의 나무들에서 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바로 그 무지개 때문에 암에 걸렸다.”(156쪽) 구구절절할 수 있는 묘사를 작가는 압축해 전한다. 그 문장 속에 날카로운 칼, 때로는 아름다운 꽃을 숨겨 놓는다. 소설이라기보다 서사시를 읽는 듯하다. 캐나다 총독문학상, 프랑스 에르테엘-리르 대상 수상, 그리고 대안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뉴 아카데미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른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문학은 때론 역사적 사실보다 더 강렬하고, 저자의 소설은 ‘문학의 힘은 이런 것’이라 당당하게 증명한다.

김기중 기자
2022-12-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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