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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짝 찾아 바다 건넌 소녀 평생해로 부부 역사가 된 사랑

꿈속의 짝 찾아 바다 건넌 소녀 평생해로 부부 역사가 된 사랑

입력 2014-05-29 00:00
업데이트 2014-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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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정해준 인연 찾아온 인도 공주 ‘허황옥 신행길’ 부산~창원~김해

얼추 2000년 전쯤이다. 인도 아유타국(아요디아)의 공주가 극동의 작은 나라 가락국을 찾아 긴 항해를 시작한다. 하늘이 정해준 피앙세, 김수로왕을 찾아 나선 길이다. 공주의 이름은 허황옥. 16세(추정) 가녀린 소녀가 벌인 대항해의 여정은 삼국유사 ‘가락국기’편을 통해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소녀의 여정이 이제 테마길로 태어날 예정이다.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알알이 맺힌 ‘허황옥 신행길’이다. 부산과 경남 창원(옛 진해)을 거쳐 김해에 닿은 소녀의 여정을 따라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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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소녀 허황옥이 첫발을 디뎠다는 망산도.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바위들이 퍽 인상적이다. 작은 섬이지만 시간을 두고 꼼꼼하게 둘러보는 게 좋다.
16세 소녀 허황옥이 첫발을 디뎠다는 망산도.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바위들이 퍽 인상적이다. 작은 섬이지만 시간을 두고 꼼꼼하게 둘러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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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삶을 살다 188년 세상을 뜬 허황옥의 능역. 왕비릉 왼쪽의 조붓한 언덕길을 올라가면 수로왕 탄강설화의 중심지인 구지봉이 나온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188년 세상을 뜬 허황옥의 능역. 왕비릉 왼쪽의 조붓한 언덕길을 올라가면 수로왕 탄강설화의 중심지인 구지봉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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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릉 정문의 쌍어 문양.
수로왕릉 정문의 쌍어 문양.




 옛 가락국의 수도, 김해에 들면 물고기 조각상이 종종 눈에 띈다. 이른바 신어(神魚) 신앙을 상징하는 조각들이다. 수로왕릉 정문의 문설주에도 두 마리 신어가 조각돼 있다. 물고기는 인도 드라비다어로 ‘가야’, ‘가라’ 등으로 불린다고 한다. 500년 동안이나 실재했으나 역사 속에선 완벽하게 사라진 나라 가야의 국호 또한 이 단어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 신어 신앙의 중심에 허황옥이 있다.



우리나라 첫 국제결혼·연상연하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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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잠재운다는 수로왕비릉 초입의 파사석탑.
파도를 잠재운다는 수로왕비릉 초입의 파사석탑.


 허황옥의 고향은 인도 갠지스강 중류의 아유타국이란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아유타에선 쌍어문장(雙魚紋章)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경찰 계급장, 택시 번호판 등에도 쌍어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 이 신어 사상이 허황옥을 통해 가락국에 전파됐다는 것이다.

 먼저 김수로와 허황옥 사랑이야기의 얼개를 살피자.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결혼’이니 이야깃거리도 많을 터. 그 내용이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허황옥의 아버지, 그러니까 인도 아유타국의 왕이 꿈을 꾼다. 천제가 나타나 배를 타고 동쪽 끝까지 올라가 닿는 나라에 딸의 배필이 있다고 알려준다. 왕은 곧바로 허황옥을 배에 태워 보낸다. 서기 48년께 일이다. 이때 동행하는 인물이 오라버니 장유화상이다. 현 김해 장유신도시 명칭도 장유화상 이름에서 따왔다.

 이때부터 16세 소녀의 대항해가 시작된다. 허황옥은 ‘돌배’ 위에 파도를 잠재운다는 ‘파사석’을 싣고 가락국으로 향한다. 같은 시기, 가락국의 왕 김수로도 비슷한 꿈을 꾼다. 수로왕은 꿈에서 자신의 배필이 멀리서 배를 타고 올 것이라는 천제의 가르침을 듣는다. 수로왕은 신하 유천간을 망산도로 보내 피앙세를 맞는 한편, 자신은 명월사 인근에 행궁을 차리고 허황옥 일행을 기다린다. 그 명월사가 있던 곳이 현 명월산 자락의 흥국사(명월사 터가 따로 있다는 주장도 있다)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이곳에서 첫날밤을 보낸다. 이때 수로왕의 나이 6세. 무려 2000년 가까이 앞서 요즘 ‘대세’라는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탄생한 셈이다.

 수로왕과 허황옥은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낳는다. 이 가운데 첫째 아들은 2대 거등왕에 오르고, 둘째와 셋째는 허왕후의 요청에 따라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된다. 여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결혼을 하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나머지 7명의 아들은 장유화상을 따라 승려가 된다. 그곳이 바로 경남 하동의 지리산 자락에 있는 칠불사다. 두 딸 중 첫째는 신라 석씨 왕의 시조가 되고, 둘째 딸은 일본국 초대 천황의 모후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둘의 러브 스토리는 여기서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난다.

 이제 그들의 실제 흔적을 좇을 차례다. 들머리는 망산도다. 허황옥 일행이 첫발을 디뎠다는 섬이다. 망산도는 경남 창원과 부산의 경계에 걸쳐 있다. 현재 대부분의 검색 사이트에서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는 부산 강서구 송정동에 속한다. 그러니까 망산도를 둘러싼 땅은 창원, 망산도와 주변 바다는 부산으로 보면 틀림없겠다.

 망산도는 작은 섬이다. 주변 땅이 간척되기 훨씬 이전, 그러니까 신화의 시대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외로운 섬이었을 게다. 망산도는 흘낏 봐선 진면목을 알 수 없다. 섬 안에 들어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특히 바다 쪽에서 보는 망산도의 바위들은 정말 독특하다. 하나같이 거북의 등껍질처럼 쫙쫙 갈라졌다. 필경 풍화작용이 진행 중일 터. 돌로 태어나 2000년 전 신화 시대의 아득한 이야기를 후세에 전한 뒤, 먼지가 되어 홀연히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유주암, 유주비각 등 설화와 관련된 유적들도 망산도 주변에 산재해 있다.

 망산도 앞의 정자 유주정에 앉아 있자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곧잘 눈에 띈다. 결혼 이민으로 꾸려진 다문화 가정 또한 부산 서쪽과 김해 일대에 펵 많다고 한다. 이 지역은 2000년 전에도 ‘국제적 항구’였으니 허황후 이야기는 결국 ‘오래된 미래’에 대한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허황옥이 실제 인도 아유타에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유주비각에 새겨진 ‘보주태후(普州太后) 허황옥’이란 문구는 이 같은 의구심을 부채질했다. 이와 관련해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의 해석이 명쾌하다. 김 교수는 저서 ‘허황옥 루트’를 통해 허황옥이 몰락한 아유타 왕국의 후손이고, 그들이 정착한 곳이 중국 보주, 현 쓰촨성 안웨현(安岳縣)이란 견해를 편다. 보주는 신어신앙을 가진 소수민족이 살던 곳으로 전해진다. 당시 허황옥의 선조들이 다스렸던 아유타 왕국이 정정불안으로 붕괴됐고, 유민으로 전락한 지배층이 보주 지역으로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이 해석이라면 허황옥의 인도 공주설과 중국 출신설 등 상충되는 두 난제가 자연스레 해소된다.



첫날밤 보낸 명월사의 후신 흥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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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과 허황옥이 첫날밤을 보냈다는 흥국사.
수로왕과 허황옥이 첫날밤을 보냈다는 흥국사.


 긴 항해 끝에 뭍에 닿은 소녀는 하늘이 점지한 피앙세를 만나기 위해 길을 재촉한다. 산 넘고 물 건넌 허황옥은 이윽고 부산 지사동의 명월산에 닿는다. 허황옥은 자신의 옛것을 버린다는 뜻에서 입고 있던 바지를 벗고 산신령께 폐백을 올린 뒤 수로왕과 첫날밤을 보낸다. 수로왕은 허황옥의 빼어난 자태를 달에 비유해 산 이름을 명월산이라 짓고, 첫날밤을 보낸 자리에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명월사도 짓는다. 그 명월사의 후신으로 추정되는 곳이 바로 흥국사다.

 흥국사 극락전엔 명월사 석탑에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단 면석이 남아 있다. 부산박물관에서 펴낸 ‘명월사지(현 흥국사) 현장조사 보고서’는 “석탑 기단 면석에 조각된 보살상 옆으로 천의(天衣)자락이 위로 날고 있는 모습으로 미뤄볼 때 9세기대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고 있다. 기단 면석이 허황옥의 인도 도래설을 뒷받침하는 인도 남부의 사왕석(蛇王石) 문화라는 일부의 주장을 부정하는 결과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명월사가 실재했다는 근거로도 인식된다.





가락국 태평성대 이룬 봉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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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 지배집단의 취락지로 추정되는 봉황대.
금관가야 지배집단의 취락지로 추정되는 봉황대.




 이튿날, 수로왕과 허황옥은 현 김해 응달동 태정마을을 거쳐 가락국의 수도 김해로 환궁한다. 현재의 봉황대로 추정되는 곳에 정착한 이들은 평생 해로하며 가락국을 태평성대로 이끈다. 수로왕과 허왕후가 근거지로 삼은 곳이었던 만큼, 김해엔 강력한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글로벌 국가 가야’의 위상을 새길 만한 유적지가 많다. 수로왕릉(사적 제73호)과 수로왕비릉(사적 제74호)이 첫손 꼽힌다. 특히 수로왕비릉이 인상적이다. 수로왕릉에 견줘 규모는 작지만 무게감에선 결코 뒤지지 않는다. 허왕후가 인도에서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도 허왕후릉 바로 앞에 전시돼 있다.

 수로왕비릉 옆은 구지봉이다. 6개의 알에서 태어난 가야의 왕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김수로왕의 건국신화 시작점이 바로 이곳이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라는 고대가요 ‘구지가’가 불리워진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 ‘달마야 놀자’의 주무대였던 은하사도 볼만하다. 장유화상이 세웠다는 절집으로, 대웅전 수미단에 쌍어문양이 남아 있다. 아울러 가락국 외부를 둘러쳤던 분산성과 성벽 안쪽의 해은사, 가락국 2대 거등왕이 신선을 초대해 국정을 논했다는 초선대, 가락국 왕자들의 탯줄을 묻었다는 태정마을 등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명소들이다.



글 사진 부산·창원·김해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남해고속도로 서김해으로 나와 금관대로, 분성로를 따라 가면 김해 민속박물관이다. 박물관 주변에 구지봉과 수로왕비릉 등이 몰려 있다. 김수로왕릉과 봉황대 등은 예서 각각 한 블록씩 떨어져 있다. 경전철로 한 정거장 거리다. 망산도를 먼저 보려면 남해고속도로 가락 나들목으로 나와야 한다. 부산 신항 방면으로 가다 창원의 용원버스정류장을 찾아가면 된다. 서울에서 하루 세 차례 고속버스도 오간다. 흥국사는 망산도에서 12㎞ 정도 떨어져 있다. 산속에 있어 걷거나 승용차로 가야 한다.

맛집: 김해 구산동 쪽에 보리밥집 골목이 있다. 김해 문화의 전당 옆 내외동 먹자골목에선 돼지뒷고기를 맛볼 수 있다. 동상동 전통시장 음식단지엔 칼국수로 이름을 날리는 집들이 여럿 늘어서 있다. 수로왕릉 옆 김해 한옥체험관에서 맛보는 한정식도 좋다.
2014-05-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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