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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 중국의 토루

포토 에세이 | 중국의 토루

입력 2011-07-31 00:00
업데이트 2011-07-3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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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루가 방어 중심의 집합주택이라고?

중국 단체관광에는 어디를 가나 예외 없이 조선족 가이드가 따른다. 중국 공항에 내려 지정된 버스를 타면 조선족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유창한 우리말로 자기소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대부분 조선족 3세로 만주 길림성 또는 흑룡강성에서 왔으며, 할아버지 고향은 경상도 또는 전라도 어디이고, 무슨 김씨, 이씨, 박씨, 최씨…라고 밝힌다. 가이드 생활을 4~5년 이상 오래 했기 때문에 한국관광객들에게 무얼 얘기해야 잘 먹혀 들어갈지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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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대륙의 남쪽 끄트머리쯤의 복건성(福建省) 항구도시 샤먼(夏門)에 갔을 때에도 흑룡강성에서 왔다는 김해 김씨, 김해룡이라는 조선족 가이드가 안내를 했다. 그의 첫 멘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여러분, 중국을 영어로 무어라 하는지 아십니까? 차이나(China)라고 합니다. 우리와 차이가 많이 난다는 ‘차이 나’입니다. 어떤 차이가 나는가? 우리는 빨리 빨리, 중국사람들은 느릿느릿 만만디 라는 것은 다 아시죠. 그보다도 중국 남쪽으로 오면 여자들이 쎄요. 중국에서는 보통 부부가 맞벌이를 합니다. 저녁에 집으로 들어갈 시간이면 남편이 아내에게 전화를 겁니다. 오늘 저녁은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아내가 먹고 싶다는 것을 남편은 장을 봐 가지고 집에 돌아와 요리를 합니다. 여자는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고 쉽니다. 남자가 갖다 주는 저녁을 먹고 여자는 동네로 마실 나가 여자들끼리 잡담하거나 모여서 마작놀이를 즐깁니다. 설거지를 끝낸 남편이 마작놀이 하는 아내 등뒤에서 부채질까지 해주며 응원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남자 중심, 남편 주도의 한국과는 차이가 많이 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국남자와 한국여자가 합쳐지면 한국여자에게는 환상적인 커플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한국여자가 아주 편히 지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중국여자와 한국남자가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어보나 마나 한국남자에게는 죽을 지경일 것입니다.”

조선족 가이드도 한국사람 핏줄이니까 한국사람 특유의 남자 중심, 남편 주도의 DNA가 흘러 그렇게 얘기하는 듯한데, 그것은 조선족 가이드가 요즘은 한국에서도 여자가 쎄졌다는 실정을 통 모르고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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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의 말은 이어졌다. “중국은 엄청 큽니다. 땅덩이가 남한의 100배 가까이, 인구는 25배쯤 됩니다. 제가 사는 흑룡강성에서 여기 샤먼까지 기차로 오자면 꼬박 나흘이 걸립니다. 중국의 구정(舊正) 휴가는 한 달씩 줍니다. 고향에 가는데 기차로 일주일씩 타고 가야 하므로 왕복 보름, 한 달은 돼야 좀 쉬고 올 수 있습니다. 가고 오는 게 지루해서 고향에 안 가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중국은 엄청 커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게 많습니다.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평생 중국 땅의 반도 구경 못하고, 중국 요리의 절반도 못 먹어 보고, 중국에는 8대 지방 언어가 있어서 중국말을 다 익히지도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중국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적으로 볼 때에는 별 게 아닌 듯싶은데 그들이 해놓은 것들을 보면 그 스케일이 대단합니다. 우리 하고는 큰 차이가 납니다. 오늘 우리가 보러 가는 복건토루(福建土樓)도 가서 보시면 놀라실 것입니다.”

토루는 복건성 서남지역에서 강서성, 광동성, 동북지역으로 이어지는 벽촌에 밀집해 있는 중국 민가의 독특한 주거양식이다.

400년 전쯤 나라가 망하는 혼란기에 남쪽 산속으로 도망해 온 한족(漢族)들이 세우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을 객가인(客家人)이라고 부른다. 도망쳐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거나 풍광이 수려한 곳에 자리 잡지 않았다.

복건토루를 보려면 샤먼 항구에서 버스를 타고 서남쪽으로 2시간 30분쯤 달려야 했다. 골짜기 경사지에 우리나라 천수답처럼 조성된 차밭이 드문드문 보였다. 장주시를 거쳐 논밭만 보이는 남정(南靖)이라는 곳에 도달했을 때 ‘대지토루군’(大地土樓群)이라는 현판이 붙은 입구문이 나왔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어린이공원의 미니 기차 같은 긴 트레일 자동차로 갈아타고 5~6분쯤 갔을까? 논밭 가운데 갑자기 몇 개의 큼직한 토루가 여기저기 나타났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보다는 성채 같은 큰 건물이었다. 높은 토담으로 빙 둘러싸인 큰 원형극장 같이 보이기도 했다. 토루 가운데 그리 크지 않은 대문이 하나, 뒤로 조그마한 문이 하나 더 있을 뿐, 토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접근이 쉽지 않은 집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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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들어서면 건물 중앙에는 하늘이 뚫린 둥그런 중정(中庭)이 있다. 중정은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40~50m 직경의 크기이고, 그곳은 일족(一族)의 대가족 공유공간으로 제반행사가 치러졌을 법하다. 중정 주위는 3층 내지 5층으로 기와지붕이 겹겹이 겹쳐 있는 원형의 거대한 집합주택이라 할 수 있다. 1층에는 부엌과 식당, 2층에는 창고, 3층 이상은 주거공간으로 침대생활이었다. 이 밖에 조상의 위패를 모신 방, 서재, 차 마시는 공간까지 마련돼 있었다. 건물 안에는 빙 둘러 작은 창들을 내놨는데, 사방의 동정을 살피고 급할 때는 활이나 총을 쏘는 보루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런 토루가 한때는 수만 개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3천여 개 남아 있는데 대부분 황폐화 된 채 방치해 놓은 상태이다.

19, 20세기 중국의 혼란시기에 아무도 돌본 것 같지 않고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듯했다. 이것이 2008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32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일약 유명해졌다. 그러나 세계문화유산으로 둥재된 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 관광자원으로 잘 정비되어 있지는 못했다. 원래의 토루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대지토루군에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는데, 주변에 호텔이나 쉴 만한 휴식처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토루 안의 이의루(二宜樓)·동양루(東陽樓)·남양루(南陽樓) 등을 둘러보는 정도이다.

토루 앞에 토속품과 차를 파는 가게들이 몰려 있고, 이런 가게들은 토루 안 중정 속까지 들어차 호객을 했다. 동양루 안으로 갔을 때에는 마당 한복판의 나무판자 무대에서 민속 쇼를 보여주었다. 그 내용은 오래 전 대만에 갔을 때 보았던 춤·리듬·옷차림과 흡사했다. 대만이 바로 복건성의 바다 건너편이니까 이 지역의 것이 대만으로 가지 않았을까 추측됐다.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인상이 남지 않는 것이었다.

대지토루군을 벗어나 인근 대산촌(垈山村)이라는 마을 속에 있는 최초로 만들었다는 토루를 둘러봤다. 1601년 완공했다는 승평루(昇平樓)와 1590년 당나라 꿔쯔이 후손들이 세웠다는 제운루(齊雲樓) 등을 찾아갔지만 둥그런 원형의 토벽만 남아 있을 뿐 내부는 허허벌판이다. 거의 훼손된 집터 자리와 우물터, 그리고 옛날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일부 철조각물만 군데군데 세워져 있었다.

토루를 보기 위해 시골 민가들을 지나야 했다. 빈한하게 사는 농촌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어서 그것이 더 볼거리가 됐다. 우리나라 같으면 지저분하고, 형편없이 못 사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킬까 싶었다. 꾸밈이 없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대만에서 공부했다는 여행사 직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한국과 중국이 축구시합을 하면 번번이 한국이 이기고, 중국이 집니다. 중국의 축구선수들에게는 대한공포증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 중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생각해 보니 중국은 방어 중심인 것 같습니다. 만리장성이 그렇고, 곳곳의 유적지도 방어에만 신경 썼던 곳이 많습니다. 복거토루도 비적 떼나 적으로부터의 방어, 즉 자기 생존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과연 한국은 공격적이고, 중국은 방어적일까. 역사적으로 봐서 한국은 난리가 나면 오히려 도망 가기에 바쁜 가옥 구조가 아니었을까.

글·사진_ 김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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