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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헐려도 화폭은 기억한다

‘그 집’ 헐려도 화폭은 기억한다

입력 2010-09-10 00:00
업데이트 2010-09-10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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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를 기록하다… 강홍구·이수영·리금홍 개인전

집이 헐리고, 거리가 바뀌고, 도시가 달라진다. 누군가에겐 개발과 성장의 과정이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 뿌리 뽑히는 아픔이다. 그리고 여기, 속절없이 사라지는 공간의 기억을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

10년째 재개발, 뉴타운 지역을 사진으로 찍어온 강홍구 작가와 1년간 서울 가리봉동 조선족 문화를 기록해온 이수영·리금홍 작가다. 이들의 개인전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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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 위에 색감을 더해 사라진 공간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키는 강홍구 작가의 작품 ‘그 집-암벽’.
흑백사진 위에 색감을 더해 사라진 공간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키는 강홍구 작가의 작품 ‘그 집-암벽’.


●10년째 재개발 지역 풍경 작업

가회동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강홍구 작가의 ‘그 집’전은 서울 불광동 재개발 지구와 은평 뉴타운, 세종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의 종촌리 등에서 찍은 사진 30여점이 선보인다. 얼핏 보면 재개발 현장의 황량한 풍경을 담은 컬러 사진 같지만 실제는 흑백으로 프린트한 사진 위에 부분적으로 잉크나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것이다.

주인이 떠난 빈집은 흑백으로 남겨 두고, 주변의 나무에 녹색의 색감을 더한 작품들은 사진도 그림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효과를 낸다. 흑백 사진이 완전히 퇴색해 버린 과거의 느낌이라면 이 사진들은 차마 떨쳐버릴 수 없는 추억에 대한 아련한 느낌이 강하다. 작품마다 흰색 물감을 흘려 일종의 표식을 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우연히도 이사가는 곳마다 재개발 지역이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는 작가는 9일 “사진은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뻔뻔함과 공식적인 성격이 강한데 사라진 집과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사진 위에 색을 입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진 작가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회화를 전공했다. 재개발 현장을 찍는 작업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듯싶다. 그는 “10년 했으니 이제 그만 이별하고, 새로운 작업을 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10월3일까지.

●조선족 거리 1년간 체험·기록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3번 출구로 나오면 거리마다 중국어 간판이 넘쳐난다. 구로구 가리봉동의 조선족 거리 풍경이다. 이수영과 리금홍 작가는 지난 1년 이 거리를 쏘다니며 온갖 음식을 맛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1.5평짜리 쪽방을 얻어 한 달간 직접 살기도 했다. 한남동 공간해밀톤에서 18일까지 열리는 ‘가리봉동 진달래반점’전은 작가들이 몸으로 체험한 기록들을 관객과 공유하는 장이다.

전시장은 설치미술과 자료들을 모은 아카이브로 구성됐다. 가리봉동에서 먹었던 음식물을 말려서 전시하고, 다양한 향신료를 한곳에 모아 조선족의 음식문화를 간접 체험하도록 했다. 양고기 꼬치구이의 고향을 찾아 지난봄에 비행기, 기차, 버스를 갈아타고 중국 옌지와 신강, 우루무치까지 다녀온 여정을 영상 작업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조선족 이주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체험하기 위해 솥단지를 옆에 끼고 사막과 황무지를 건넜다. 이주의 고단한 풍경은 냄비, 칼, 국자 등 온갖 세간에 비행기 수화물표를 붙인 설치작품으로 표현됐다.

전시장 한쪽에는 두 사람이 가리봉동에서 즐겨 찾던 진달래반점의 내부를 재현했다. 진달래반점에서 아주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녹취해 DVD로 만들기도 했다.

이수영 작가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가리봉동이 사라질 때까지 가리봉동 기록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공간해밀톤은 한남동 제일기획 인근에 있는 대안 전시공간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10-09-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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