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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15박 16일 뒷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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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TV쏙 서울신문’에서는 북한군의 포격으로 ‘전쟁터’가 돼 버린 연평도에서 15일 동안 생활하면서 취재한 서울신문 사회부의 김양진 기자를 불러 취재 뒷얘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다음은 앵커와 김기자가 대담한 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Q.연평도에는 얼마나 있었나요?

A.총 15일 동안 연평도에서 취재했습니다. 지난달 23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이 있은 뒤 곧바로 인천연안부두로 가 배편을 구하다, 이틀 뒤인 25일 오후 3시 옹진군청 소속 행정선을 타고 연평도에 첫발을 내디뎌 9일간 연평도에 있었고요. 이번 우리군의 연평도 앞바다 해상사격훈련을 앞두고 12월 17일 여객선을 타고 연평도에 들어가서 6일간 연평도에 있었습니다.

Q.어디서 생활했나요?

A.25일 연평도에 들어갔을 때는 남은 주민이 20여명뿐이었습니다. 당연히 민박집 구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연평우체국장 정창권씨를 만났습니다. 다행히 우체국장의 부모님 댁에서 머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취재진들은 대부분 연평초등학교 교실에 짐을 풀어야 했습니다.

Q.식사는 어떻게 했나요?

A.인천적십자 배식을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있던 급식차가 그 주 일요일에 28일에 철수했습니다. 육지에서 음식 조달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다음부터는 보통 라면 등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Q.연평도의 주민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A.연평도 주민들 상태는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속사정은 달랐습니다. 28일 오후 1시쯤 포성이 들렸을 땝니다. 북쪽에서 포성이 6발정도 들렸습니다. 당시 저는 연평면사무소에 있었습니. 담당 공무원이 군부대에서 전화를 받자마자 육성으로 “대피”라고 수차례 외치더니 정말 순식간에 그 안에 있던 주민 공무원 10여명 인근 대피소로 막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취재진들도 갑자기 뛰었습니다.

마을에 방송을 해야 할 공무원도 놀라서 허둥지둥 결국 5분정도 뒤에야 진정을 하고 마을 방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진들은 대피소 안으로 안 들어가고 주변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렸습니다. 주민들이나 공무원들이 안에서 “빨리 들어와라. 진짜 죽는다.”라고 하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취재진들을 대피소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정말 포격을 겪어본 주민과 겪어보지 않은 제가 다르다는 걸 그때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저는 ‘정말 포 떨어지나.’하면서 북쪽을 보고 있었는데 주민들은 대피소 안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또 대피소 가운데는 포를 맞아 무너질 수 있다면서 벽 쪽으로 몸을 밀착 시켰습니다. 다행히 그날 대피는 북한군이 자신들 영토 내에서 하는 사격훈련이어서 1시간쯤 뒤에 해제됐습니다.

Q.이번에 우리군의 연평도 앞바다 해상사격훈련 때는 어땠나요?

A.오전 9시쯤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주민들이 9시간 30분을 대피소에서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담담한 듯 농담도 주고받았지만 오후 2시 30분쯤 첫 포성이 들리면서 오후 4시까지 1시간 30분 동안은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긴장됐던 것 같습니다.

Q.어떤 에피소드가 있나요?

A.일단 화장실이 없으니 플라스틱 동은 대피소 문 앞에 놓고 소변을 봐야했습니다. 또 라디오도 안 되고 콘크리트 안이라 휴대폰도 안 터지니 외부에 아무런 소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차고 습한 곳에 창문도 없는 곳에서 9시간 30분 동안 나갈 수도 없고, 언제 나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주민들 불안감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숨이 턱턱 막혀서 잠시 바깥바람 좀 쐬려고 했는데 대피소를 통제하던 해병들이 막더라고요. 힘들었습니다.

제가 있던 대피소는 해안 쪽 파출소 옆이었습니다. 이런 대피생활에 익숙한 탓인지 한 할머니가 고구마튀김을 해주려고 고구마랑 튀김가루랑 식용유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대피소 안 고구마튀김 파티가 열렸습니다. 어른 종아리보다 굵은 연평도 토종 백고구마를 튀겨 먹으면서 잠시 공포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Q.생활지원금, 위로금 지급 기준도 문제라고 하던데요?

A.정부가 연평도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위로금·생활안정지원금의 지급기준을 놓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북한 포격으로 피해를 입은 연평도 토박이라도 공무원 등 월정 급여를 받는 주민은 대상에서 제외된 겁니다. 또 같은 군인도 주민 등록이 옮겨지지 않은 현역병은 지급 받지 못했습니다. 반면, 주소지가 연평도인 상근예비역은 지급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포격 당시 연평도에 없었더라도 부모가 연평도에 살거나, 타지에서 공부하는 학생, 최근 1년 중 30일만 실거주한 사실이 확인되어도 지급 대상이 된 것입니다. 피해정도나 지난달 23일 연평도에 있었는지는 지급 기준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연평도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나도 연평도를 떠나고 싶었지만 직무상 그러지 못했다. 생활안정지원금은 아니더라도 위로금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지급 기준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옹진군은 비대위에서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비대위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Q.현장을 죽 지켜본 기자로서 연평도 주민에게 가장 절실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연평도 주민들이 겨울이면 하는 말이 “보일러는 쌀밥 먹고 사람은 보리밥 먹는다.”입니다. 바다를 건너오다 보니 그만큼 기름 값이나 생필품 값이 비싸지는 거죠. 서해 5도가 우리 영토고 중요하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그만한 정책적 관심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국가적으로 서해 5도 주민들에게 더 세심한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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