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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의 봄은 언제쯤…” 도발 두 달이 흘렀지만 참상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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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보세요. 연평도가 어떤지, 지금. 폐허예요, 폐허. 이런 거 아십니까. 밖에서만 보시고, 안을 들여다 보긴 하셨나요?”

연평도 주민 김종란(52)씨는 울먹이다 끝내 서러움에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11월23일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포탄 170여발을 쏘며 도발한 지 두 달. 연평도는 여전히 포격의 생채기를 안고 있었습니다.

포격 직후 연평도에 들어가 20여일 취재했던 사회부 김양진 기자가 몇 차례 시도 끝에 25일 연평도에 다시 들어갔는데 도발 직후의 처참함에서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28일 오후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의 ‘TV쏙 서울신문’에서 전했습니다.

포격에 무너지고 검게 그을린 주택들은 복구조차 되지 않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포구 근처 음식점은 모두 문을 닫았고, 거리에 인적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관리되지 않은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는 얼어붙은 채 방치돼 있었습니다. 강한 바닷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부딪히던 잔해들은 기괴한 소리들을 토해냈고요.

설 분위기를 찾는 취채진은 미안함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포격 전에 살던 1700여명 가운데 400여명이 돌아와 아둥바둥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배추를 삽으로 긁어내던 이재술(52)씨는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배추는 썩어 문드러진 지 오래였습니다. 이 씨는 “김장하려고 배추 사놨는데 포격 때문에 다 썩어서 버리려고…. 보일러고 뭐고 다 처져서 돌아가지도 않아요. 육지서 수리해주겠다고 온다고 해서 기다리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발전소에 다니는 아들 사정이 딱해 다시 연평도에 들어왔다는 오연옥(73) 할머니는 “보일러도 들어오고, 이젠 냉장고도 가져와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말동무할 이웃이 없어 이날 갖고온 텔레비전으로 그나마 외로움을 덜어내고 있었습니다.

뒷산에 모여선 주민 몇몇이 눈에 들어왔는데요. 지난 23일에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송납재 할머니의 장례식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고인은 생전에 “살아도 연평도에서 살고 죽어도 연평도에서 죽겠다.”며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앰뷸런스에 몸을 싣고 지난달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눈물을 훔치며 장례를 지켜보던 주민은 “몸이 약한 어르신들이 (피격 직후 인천에서) 찜질방 생활을 하면서 탈이 났다. 할머니도 그래서 돌아가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주민들은 안타까움에 눈물을 훔치지만 지금 연평도를 기억하는 뭍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도 정치권도, 모두가 그렇게 그 날의 뼈아픈 고통을 되새기자고 목청을 높이지만 한파와 구제역, 물가 인상 등 눈 앞에 놓인 현안들에 묻혀 연평도는 잊은 듯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는 연평도에 봄이 찾아오기를 빌어봅니다.

서울신문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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