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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early bird’지만 너무 힘들다.” 트럭 운전하며 살아남기

“누구보다 ‘early bird’지만 너무 힘들다.” 트럭 운전하며 살아남기

globalsms@seoul.co.kr 기자
입력 2011-03-18 00:00
업데이트 2011-03-1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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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대한민국 가장들은 유난히 고달프다. 옆집 김씨, 뒷집 장씨 할 것 없이 고통스럽다. 고유가, 고물가, 고금리, 높은 사교육비 부담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화물트럭을 모는 김현승(36·인천시 남촌동)씨는 구제역 피해까지 덤터기를 쓰고 있다. “뼈 빠지게 일해봐야 빚만 진다.”는 그의 11일 하루 행적을 18일 오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에서 방영된 'TV 쏙 서울신문'이 따라가봤다.

 

새벽 3시, 누구보다 ‘early bird’

어둠이 깔린 새벽 3시, 대부분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지만 25톤 화물트럭을 운전하는 김현승 씨에게는 새로운 하루를 여는 시간이다.

가족들이 깰까 싶어 조심스레 겉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연신 하품이 나온다. 차량 상태를 점검하는데 어제 넣었던 기름은 벌써 바닥이 보인다. 가까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서 한숨을 내뱉는다. 한 달 수입의 절반가량을 기름 값으로 지출하는 김 씨로선 너무 가혹한 지출이다.

오늘도 500㎞ 강행군이 예정돼 있다. 경기도 오산에 도착하니 새벽 5시. 1시간이면 족한 거리지만 덩치가 탑차여서 제 속도를 내지 못해 그렇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국내 경제마저 어려웠던 3년 전, 신속히 일을 처리하고자 무거운 쇳덩이를 손으로 운반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병원에서 추간판탈출증 판정을 받고 7년간 몸담았던 펌프카 제작업체의 제관공 일을 그만뒀다. 강철판을 자르고 구부려 관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홀로 완성차를 만들 정도로 꽤나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로선 퇴직이 믿기지 않았다. 더욱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병치레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헤맨 것이 화근 이었다. 병원 치료가 미흡해 산업재해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 된 것이다.

결혼 5년차에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충격이었다. 더욱이 부인의 배속에는 곧 세상에 나올 둘째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지독한 경기불황은 그를 나락에서 올라오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일자리를 위해 문을 두드린 회사마다 거절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찾은 게 화물차 운전이었다. 허리가 좋지 않은데 힘들지 않겠냐는 주위의 걱정보다는 당장 가족들이 먹고 살아야하는데, 제관공보다 힘들겠느냐는 오기가 작용했다.

처음 운전대를 잡은 이후 3년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기름 값이든 물가든 모두 뛰어오르는 지금, 그에겐 하루하루가 힘겹다.

 

새벽 5시, 일 해봐야 빚 갚기 바빠

오산에 도착하자마자 톱밥을 싣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답답한 마음에 담뱃불을 붙이고는 김 씨의 넋두리가 이어진다.

“물가가 오르기 전 지난해 10월에는 한 달에 정부보조금 120만원 포함해 600만원 이상 기름 값을 냈는데, 일거리가 줄어 현재는 400만원 정도 내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한 달에 70만원 정도 더 내는 것 같다. 그런데 몇 년째 운송료는 그대로라서 너무 힘들다. 불황이 계속된다면 뼈 빠지게 일 해봐야 빚만 늘 것 같다.”

석유공사의 전국 주유소 평균 경유 값은 지난해 10월16일 리터당 1499원하던 것이 지난 16일에는 1765원으로 5개월 만에 15% 가량 올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대출 금리마저 올랐다.

김씨는 3년 전 1억 5000만원 나가던 트럭을 사기 위해 인천 용현동의 89㎡ 아파트를 전세로 돌리고 4000만원 하던 빌라로 이사했다. 전세 보증금으로 모자라 은행에서 4000만원 대출을 받아 5년 할부로 트럭을 구입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지난해 10월부터 불과 5개월 만에 0.75% 올렸다. 한 달에 12만원씩 하던 대출 이자가 늘어 15만원 정도 내던 김씨로선 지난 10일 금리 인상이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큰 액수가 아니어서 아직은 별로 걱정하지 않지만 지출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되는 상황에 이자가 계속 늘어가니 걱정이다.”

 

오전 8시, 넘어가지도 않는 아침밥

오전 8시에 충북 증평에 도착했다. 다른 작업부들이 김씨 트럭 적재함에서 톱밥을 내리고 전북 전주로 가는 폐목재를 적재하는 동안 구내식당에서 동료 기사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 뒤 짬을 내 눈을 붙이려는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큰 아들 초등학교 준비물을 사야 하는데 돈이 없어 이웃에게 빌렸다는 부인의 짜증 섞인 통화였다. 김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결혼생활 8년 동안 고생만 시킨 부인에게 미안하고 배움이 부족해 아이들한테만은 많이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했던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경기가 비교적 나았던 지난해 10월 15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평소 낙천적이고 성실한 성격인 데다 수완도 좋아 일거리가 제법 많았다.

그러나 5고(高)가 본격화한 한 달 뒤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수입이 넉 달 만에 100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수입은 줄었는데 지출은 되레 늘었다. 기름 값 말고도 차량 할부금 160만원과 적금 80만원, 보험료 60만원, 화물차 회사 지입료 40만원, 아이들 학원비 30만원등을 내고 나면 네 식구 생활비로 100만원이 채 안된다고 했다.

더욱이 화물 소개비로 건당 5~10% 제공하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여기에 2개월에 한 번씩 오일교체 비용 40만원, 반기에 500만원씩 부가가치세를 낸다고 했다.

3년밖에 안된 차라 아직 수리비가 들지는 않지만 2년에 한 번씩 타이어 교체하는 비용 500만원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입보다 소비가 많아 신용카드로 지불하고 다음 달 수입으로 메워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오후 2시, 빵과 우유로 차 안에서 한 끼?

전주에서 증평 들러 폐목재를 내린 뒤 다시 톱밥을 싣고 인천으로 향한다. 올라오는 도중에 밥값을 조금이나마 아끼려고 싼 음식점을 찾아 헤맨다. 가는 곳마다 500~1000원씩 고쳐 쓴 메뉴판을 보고 혀를 끌끌 찬다. 이날 역시 차 안에서 빵과 우유로 한 끼를 해결한다.

최근 수입이 줄어든 탓에 매월 40만원 정도 지출했던 외식과 문화생활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취미였던 낚시도 접어 창고의 낚싯대에는 먼지만 수북이 쌓였다.

김씨는 “지금은 저축한 돈과 신용카드로 근근이 생활하지만 만약 사고라도 난다면 정말 대책이 없다. 앞으로도 불황이 걷힐 것 같지 않은데 막막하다. 당장 급한 데로 적금 1개를 해약하고, 아이들 학원비도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밤 10시,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가족 품에

500km가 넘는 강행군이지만 그나마 오늘처럼 일거리가 있는 날은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전국에 확산된 구제역 여파로 우사와 돈사가 폐쇄되자 톱밥을 이용해 퇴비를 만들던 업체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건설경기 악화로 폐목재를 사용하는 건설현장 일거리도 줄었다. 때문에 요즘은 빈 차로 돌아오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녹초가 돼 밤 10시에 집에 돌아온 김씨. 역시 그를 반겨주는 건 가족이다. 아버지의 고통을 아는지 3살짜리 막내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부인과 함께 김씨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들을 보면 힘이 난다고 한다. 또한 전보다 좁아진 집이지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소중하다고 했다.

가족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김씨. 꿈을 포기한 게 아니라 이루기 어렵다고 말하는 그의 처진 어깨에서 대한민국 30대 가장의 오늘을 본다.

서울신문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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