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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엔 다시 제멋대로 현수막·간판… ‘디자인 서울’ 뒷걸음”

“거리엔 다시 제멋대로 현수막·간판… ‘디자인 서울’ 뒷걸음”

입력 2011-04-08 00:00
업데이트 2011-04-1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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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맞은 디자인시대

“대학 다닐 때 많은 교수님들이 그랬어요.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하면 디자인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사실 올 것 같지도 않았고, 오지도 않았죠. 40년 가까이 지난 최근에야 그런 시대가 왔고, 그 중심에 제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권 교수는 ‘디자인 서울 사업’의 핵심이 된 당시를 이렇게 소회했다.

“서울시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역사의 켜가 쌓인 이야기가 있는 도시입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시민이 많은, 지식 총량이 아주 큰 도시이고요. 이런 기반이 있으니 여러 가지 정책을 만들고, 적용하면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죠.”

그런 확신을 정책에 녹이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본부장 취임 전 서울시 관계자 3명에게 조언을 듣고, 오세훈 시장의 취임사부터 온갖 신문, 방송 인터뷰를 섭렵했다. 임기 2년을 압축적으로 활용하려면 시장의 의중을 꿰뚫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취임 후 첫 한 달은 직원들에게 인사를 다니는 대신 방 안에 틀어박혀 ‘정책의 길’을 찾는 시간으로 삼았다.

그 다음 3개월은 간부회의에서 각 국실이 보고하는 내용을 디자인의 관점에서 충고하면서 실력을 보여 주고, 이후 6개월은 도덕성으로 신뢰를 얻었다. 서울시는 어떤 사업이든 주변에 많은 업체들이 있고, 그 업체들과의 관계에서 추호의 잡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소위 ‘1-3-6 전략’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실력과 신뢰를 쌓았다.

“오 시장도 많은 역할을 해주었죠. 총괄본부장을 부시장급으로 두면서 힘을 실어주고, 모든 사업을 디자인의 렌즈와 언어로 보라고 강조하면서 서울시 행정에 디자인을 접목할 바탕을 탄탄히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이 다시 원점이 된 듯한 느낌이라는 게 그 한숨의 근간이다.

●“디자인 서울 어디 갔나… 한숨만”

디자인 도시의 허브가 될 동대문디자인플라자나 시민의 쉼터가 되는 광화문광장 등 수백억원이 들어간 큰 사업을 많이 했지만 그가 무엇보다도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꼽는 것은 ‘디자인 거리 사업’이다. 서울시 안에 디자인 거리 50곳을 결정하고, 이 거리를 정비하는 기간으로 3년을 투자했다.

“거리는 중요한 곳입니다. 시민이라면 단 하루도 피할 수 없는 공간이 거리거든요. 이 거리를 걷고 싶게 만들고, 머물고 싶게 하면 문화가 소통되고, 사람들이 몰리면 지역 경제도 활성화되는 것이죠.”

디자인 서울 사업에 열중하는 한편 ‘되돌아가지 않는 개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도 매진했다. 공공건축, 공공공간, 공공시각매체 등 5개 분야에서 규제와 권장을 엄밀하게 규정했고, 2008년부터 적용했다. 많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서울시는 도시 디자인 측면에서 변화를 이루어 냈다. 2007년 10월에는 세계 디자인단체 총연합회가 지정한 ‘2010 세계 디자인수도’로 선정됐고, 서울역 첨단미디어 버스 정류장은 ‘2010 IDEA 디자인어워드’와 ‘iF 디자인어워드’, ‘레드 닷(Red dot)디자인어워드’를 수상했다. 세계 3대 디자인상을 모두 휩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거리를 보면 ‘울분’을 느낀다고 했다. “현수막은 다시 걸리기 시작했고,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은 간판도 나타나고 있어요. 길에 놓인 시설물들은 관리되지 않고, 길 안내 사인 표준색상도 완전히 무시되고 있지요.”

그는 “선진도시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3년, 5년, 10년, 그 이상의 흔들림 없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실종된 듯한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오히려 지방에서는 공공디자인 붐이 이는데, 서울에서는 식었다. 먼저 시의 의지가 질책받아야 하고, 디자인 가치에 대해 덜 생각하는 시의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끊임없는 저술… 방점은 ‘사제동행’

“차라리 서울시에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잘라 말한다. “2년 동안 서울시에서 야전생활을 하면서 내가 ´형질변경´이 될까봐 걱정했어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죠. 이제는 외곽에서 공간 디자인이라는 언어에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합니다.”

그 큰 발자국은 ‘공간 디자인의 언어’로 세상에 나왔다. 2001년에 낸 ‘공간 디자인 16강’의 후속편인데, 그동안 배출한 직계제자 중 대학 전임교수 40명과 함께 썼다.

“맹자는 군자삼락 중 세 번째 즐거움은 ‘득천하영재이교육(得天下英材而敎育)’이라고 했습니다. 천하 영재를 얻어 가르치고 배출하는 게 즐거움인데, 이런 복을 누리고 있으니 이젠 나눠야죠. 제가 틀을 만들고 각자의 연구 영역을 미시적·입체적으로 썼습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한 덩어리가 돼서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학문의 으뜸이라는 말이 있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제동행’이고 그 결과물이 이 책입니다.”

이 책과 함께 ‘공공디자인행정론’, ‘컬러 프랙티쿰’, ‘쉬운 색채학’, ‘리더는 디자인을 말한다’도 냈다. 이 중 ‘리더는’은 유일한 실용서다.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디자인은 낭비이고, 겉치레이며 전시행정이라는 등 오해와 편견이 난무한 모습을 보며 집필을 결심했다. 세계적인 리더들이 디자인에 대해 어떤 사고를 했고, 국가·도시·기업 운영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보여 주는 책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설득력을 담고 정확도를 기하기 위해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명사 100여명이 어떤 상황에서 그 말을 했는지 연도까지 밝혔다

원점으로 돌아가자. 그는 대체 왜 이렇게 활발하게 저술활동을 하는 것일까.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LA)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를 떠올린다. 당시 교수들 사이에는 ‘책을 낼 것이냐, 짐을 쌀 것인가’라는, 교수에게는 협박과 같은 말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이 잠재의식에 박혀 교수 생활을 한다는 것은 늘 책을 쓰고, 논문을 낸다는 것이 옳다고 돼있다고 했다. 그렇게 1986년에 첫 책을 썼고, 25년 만에 서른 번째 책을 출간했다.

여기서 끝일까. 그는 3권을 더 준비 중이라고 했다. 어떤 책인지 궁금증이 일어 재차 묻자 “제목이나 내용은 비밀이지만 1권은 국민 디자인 도서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아마도 그의 서른한 번째 책은 서울시가 아닌, 대한민국을 겨냥한 거대 담론이 아닐까.

서울신문 최여경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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