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서울TV

장하다 조은지 기자! 여자 럭비 국가대표 도전기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내 꿈은 국가대표다. ‘태극마크 앓이’는 지난해 밴쿠버동계올림픽 취재를 다녀온 직후 부쩍 심해졌다. 대한민국의 대표선수로 국제무대에 나간다는 자체가 숨막히게 근사했다. 그 뒤에 숨은 피와 땀을 결코 가볍게 보는 건 아니지만 태극마크를 다는 건 엄청난 로망이 됐다.

 

‘썰매박사’ 강광배 감독은 스켈레톤을 추천했다. 생소했고 무서웠다. 컬링을 알아봤다. 은근 선수층이 두꺼웠다. 어느덧 20대 후반이 됐다.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체육기자를 지망할 정도로 스포츠에 대한 갈증은 심했지만 그 뿐이었다. 태극마크는 영원한 ‘꿈’으로만 남는 듯 했다.

 

그러다 눈이 커졌다. 대한민국 여자럭비 국가대표 선발전 공고를 봤을 때. ‘노다지’였다. 당장 대한럭비협회에 신청서를 냈다. 같은 과 동기도 꼬셨다. 선발전 전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어두컴컴한 밖을 보며 ‘대회가 연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주까지 시간을 벌어 럭비공을 잡아보고 차보면 뭔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생생한 체험기나 쓰지, 뭐.’ 하며 애써 마음을 비우려 했지만 열망은 커져만 갔다.

 

1일 아침,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맑았다. 선발전이 벌어질 연세대학교 종합운동장으로 가면서 심장은 더 크게 뛰었다. 쿵쾅쿵쾅. 오전 10시, 나까지 52명의 ‘운동 깨나 한다는 여자들’이 모였다. 견제하는 눈빛과 묘한 긴장감. 4조로 나뉘어 기초체력을 측정했다. 등번호 14번을 받은 내가 하필 2조 맨 첫 순번이었다.

 

첫 종목은 지그재그런. 스텝을 통해 민첩성과 순발력을 보는 코너. 대학시절 테니스와 핸드볼로 다져진 발놀림 덕분인지 제법 빨랐다. 팔굽혀펴기는 40개를 채웠고, 윗몸일으키기는 30개를 했다. 50m도 8초2에 끊었다.

 

지옥은 이 때부터였다. 100m를 뛰면서 죽음을 맛봤다. 100m가 이렇게 긴 줄 미처 몰랐다. 피니시라인에 코치선생님들이 “끝까지! 지나가!”를 외치는데 아득하게 느껴졌다. 마음은 생생한데, 기자생활 4년차에 ‘저질’이 돼버린 몸이 야속했다.

 

한숨 돌리며 수다를 떨었다.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에 나갔던 ‘럭비얼짱’ 채성은(18)이 뒷번호. 갑자기 “네? 27살이요? 안 힘드세요?”라며 나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회사에서는 막내급 귀염둥이(!)지만, 여기선 ‘왕왕왕언니’였다. 주변엔 해맑은 고딩들이 바글거렸다. 급 침울해졌다.

 

풀린 다리가 충전되기도 전에 800m가 시작됐다. 다른 도전자들이 스타트부터 너무 빠르게(!) 달려나가길래 곧 뒤처질 줄 알았다. 맨 뒤에서 느긋하게 뒤쫓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두 번째 죽음을 맛봤다. 땀을 흘리면서 ‘너무 나태하게 살았구나.’했다. 이건 해탈이었다. 꼴찌는 면했지만 이미 내 다리는 내 신체이길 거부했다.

 

드디어 럭비공을 만졌다. 캐치와 킥. 대부분이 초보라 능숙도보다는 발전가능성과 감각을 본다고 했다. 나는 날아오는 럭비공을 갓난아기라도 되는 양 받아들었다. 두 번 모두 사뿐하게 잡았다. 얏호. 킥은 망했다. 공의 모양이 얄궂어서 어디를 차야할지 난감했다. 회전없이 쭉 뻗더니 이내 착지. 투포환의 궤도 같았다. 마지막 관문은 보디체크. 중심을 낮추고 강하게 어깨를 ‘들이대는’ 자세는 생소하고 어려웠다. 작년 국가대표 김아가다(21)는 “어깨랑 갈비뼈 나가는 건 기본이에요.”라고 겁을 줬다.

 

2시간 30분의 선발전이 끝났다. 결과는 일주일 내 개별적으로 연락해 준단다. 한동호 감독은 “2~3개월간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칠 생각이다. 24명을 추려 합숙훈련을 한 뒤 최종적으로 12명을 뽑겠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메달이 목표”라고 말했다. 다시 찬찬히 돌이켜보니 나의 ‘태극마크 앓이’는 결국 영원한 로망으로 남을 것 같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