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싶은 책이 있는데, 너무 비싸거나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중고서적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서울에 산다면 청계천을 떠올릴 것이고, 부산 사람들은 보수동을 생각할 겁니다. 지금은 인터넷부터 열어보겠죠.
서울 청계천에는 1960년대부터 헌책방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합니다. 1980년까지 호황을 누리면서 한 때 200개가 넘게 있었다는데요. 희귀한 서적을 찾는 사람들부터 교과서나 참고서를 사고파는 중고생까지, 연령층도 다양했습니다. 새 책 살 돈을 술값으로 날려서 찾는 대학생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46년째 ‘민중서림’을 운영하고 있는 정결(74) 사장은 “그 당시는 같은 것이면 헌책을 사고 돈을 좀 절약해서 자기 용돈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회고합니다.
이 좁은 공간에 1만여권이 가득합니다.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공간을 오가면서 원하는 책을 찾아주는데요. 보물찾기가 따로 없습니다.
“예전에는 대학 교수들이 전공서적을 다양한 것으로 활용해 대학생들이 많이 찾았어요. 요즘은 교수들이 자기가 쓴 책만 보라고 하니까,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한때는 중고생 참고서가 잘 팔렸는데, 그런 것도 없죠.”
이제는 그렇게 많던 헌책방도 서른개 남짓 남아있을 뿐입니다.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이곳에 자주 들른다는 조성희(38)씨는 “예전에 나온 잡지 중에서 미처 사지 못한 것들을 사러 온다.”면서 “청계천 헌책방에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오래된 자료들이 많이 있어서 좋다.”고 말합니다.
먼지 수북한 헌책방 대신 이제는 인터넷이 헌책을 사고파는 공간이 됐는데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신고서점이 대표적인 초창기 모습입니다.
“책을 정리하는 데 너무 많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97년에 PC통신에 중고장터를 열고 책을 팔기 시작했죠. 이후 웹에디터 프로그램으로 어줍잖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이 서점 이종명(42) 사장이 인터넷 헌책방을 내게 된 계기이다. 이후 북 어게인, 대방헌책, 훈민정음, 고구마 등 수십여개 인터넷 중고서점이 생겼습니다. 모든 헌책방들의 재고 목록을 한꺼번에 검색할 수 있는 ‘북 아일랜드’ 같은 사이트도 나타났고요.
책 문화도 돌고 도는지, 최근 대형 서점들이 헌책코너를 만들더니,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지난달 서울 종로 2가에 매장을 냈습니다. 다시 책 냄새를 맡으며 책을 살 수 있게 된 겁니다.
서울 대치동에서 이곳까지 헌책을 사러 온 이승관(78)씨는 “헌책방에서 좋은 책들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값도 싼 게 장점”이라고 헌책방을 추어세웠습니다. 손에는 고교 1학년인 손녀에게 줄 명화서적이 들려있습니다.
이 중고서점의 서오현 점장은 “새 책이 많이 팔려야 중고로 넘어오게 되고, 계속 책이 순환되는 시스템을 만들면 독서 인구고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곳을 열었다.”면서 “다양한 가격대의 책들을 보고 구매할 수 있는 게 우리 서점의 장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열린 파주북소리페스티벌에서 세계 최대 책마을인 영국 헤이온와이의 창시자 리처드 부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헌책은 오랜 세월 전 세계를 오가며 인류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그만큼 오랫동안 세상에 남아있어야 했던 헌책, 올 가을에 한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최여경기자
kid@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