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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 후 1년, 옛 모습 찾아가는 연평도…새집 생겨 기쁘지만 삶은 여전히 팍팍

포격 후 1년, 옛 모습 찾아가는 연평도…새집 생겨 기쁘지만 삶은 여전히 팍팍

입력 2011-11-18 00:00
업데이트 2011-11-2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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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 ‘TV 쏙 서울신문’ 방영

들끓던 해가 수평선 너머로 막 잠긴 16일 저녁, 연평도 중부리 주민 김영길(49)씨는 가로등 불빛 아래서 며칠 전 이사 온 새 집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1년 전, 북한의 포격으로 김씨네 집은 지붕이 내려앉고 유리창이 박살나는 등 참혹한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 그 자리엔 붉은 벽돌로 지은 새 집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든든하게 서있었다. 김씨는 “국민들의 성원으로 지어진 집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다.”면서 껄껄 웃었다.

지난해 11월 23일, 북쪽 포대에서 날아온 포탄 170여 발은 평화롭던 연평도를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전례 없는 북한의 민간인 포격으로 주민들은 한순간에 ‘피란민’ 신세가 됐다. 옷가지도 챙기지 못한 채 섬을 빠져나와 인천의 찜질방, 임대주택 등을 전전해야 했고, 섬으로 돌아와서도 무너지고 부서진 집을 보며 절망을 곱씹어야 했다. 그랬던 연평도가 빠르게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선착장에는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외투와 모자로 감싼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잰걸음으로 일터로 향했다. 얼굴엔 넉넉한 안도감이 묻어났다.

집 앞 계단이며,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정자 부근 등 마을 곳곳에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바다에서 갓 따온 굴을 까고 있었다. 꽃게잡이도 한창이어서 바다에서 건져 올린 그물에서 꽃게를 떼어내는 어민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바닷가 쓰레기를 줍고, 도로를 청소하는 등을 하고 일당 3만 5000원을 받는 일자리사업도 주민들의 일상이 됐다. 연평도 포격 후 생긴 또다른 풍경이다. 일자리사업에 나선 한 할머니는 “집에 가만히 있다면 외롭기도 하고 또 무섭지. 그런데 밖에 나와 일을 하면 달라. 일도 하고 서로 얘기도 나누고 하니 포격을 기억할 틈도 없다.”고 말했다. 마침 마을회관에서는 부녀회원들이 모여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드릴 김장을 담그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종일 수다는 끊이지 않았다.

다시 겨울이 다가오는 요즘, 주민들의 관심사는 단연 ‘주택복구’다. 서부리·남부리 등에서 포격으로 무너진 건물 32동 중 13동의 복구가 마무리됐고, 이 중 일곱 가구는 입주를 마쳤다. 나머지 집도 이달 중 모두 복구가 완료될 예정이다. 집이 속속 복구되면서 주민들은 연평초등학교 운동장에 마련된 임시주택을 떠너 새 보금자리로 거처를 옮기느라 숨돌릴 틈이 없다. 한 주민은 “그래도 운동장 ‘비둘기집’이 정들었는데?”라며 뒤돌아서 삶의 자취가 역력한 운동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남은 주민들은 일상처럼 빨래를 널거나 화분의 화초를 가꾸면서도 들뜬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임시주택에서 조부모와 함께 사는 고성현(10)군은 “새 집에는 내 방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렇다고 그 새 상처가 다 아문 것은 아니었다. 포격의 공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또 북한의 도발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져 있었다. 바다 건너 북쪽 황해도 강령군 해안가에 해안포 진지가 새로 구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런 불안감은 더 커졌다. 어디선가 큰 소리만 들려도 덜컹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았다. 김상숙(80) 할머니는 “군인들 사격훈련은 물론 누가 문만 세게 닫아도 깜짝 깜짝 놀라 곤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포격 이후 달라진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1억원을 들여 마련한 마을버스가 매일 네 차례씩 마을을 돌며 주민들을 실어날랐다.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연평도로 쏠린 덕에 받은 혜택이었다. 옹진군과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평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찾아가는 음악치료’ 프로그램 덕분에 학교에는 바이올린이며 플릇 등 악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서해5도 특별지원법에 따라 주민들에게는 1인당 월 5만원의 정주지원금도 주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고 치유할 수는 없었다. 국민들의 관심이 시든 뒤에 남은 것은 막막하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주민들의 고달픔이었다. 꽃게와 굴을 따서 생계를 잇는 주민들은 하나같이 “생산량이 부쩍 줄었다.”며 한숨을 토했다. 안정적 수입원이었던 일자리사업이 올 12월에 끝나는 것도 고민이다. 달리 먹고살 방법이 없어서다. 뭍보다 물가는 비싼데다 뭍에서 공부하는 자녀들의 학비까지 대야 하는 섬사람들은 겨울 날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 장인석(58) 새마을리 이장은 “언제 또 북한에서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고향을 지킬 것”이라면서 “포격을 당한 연평도뿐 아니라 서해5도 주민들의 먹고 살 걱정을 정부가 조금이라도 덜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막연했지만 절박한 바람이었다.

실향민이나 낚시꾼들이 종종 찾던 연평도는 이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통일교육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연평중·고교 교사들은 포격 당시의 흔적을 간직한 곳들을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연평 통일올레길’을 조성, 9월에 개장했다. 김영호 연구교사는 “올레길을 걷는 모든 이들이 다시는 포성이 들리지 않는 평화의 세상을 기원하는 마음을 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평초등학교에는 복도마다 아이들이 그린 통일 포스터와 표어 등이 걸려 있었다. 그 중 5학년 학생들의 모자이크 작품 아래에 누군가 비뚜름한 글씨로 이렇게 써놨다. ‘남북이 통일해야 포격 같은 일이 사라진다.’ 서해바다 먼 곳의 섬 연평도, 그곳에서 어른들은 고달픈 일상을 꾸리고, 아이들은 조심스레 통일의 소망을 키운다.

글 / 연평도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영상 / 연평도 문성호PD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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