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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림동 고시식당?“식권 10장 이상 구매하지 맙시다” 붙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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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밥값 3000원, 당구 10분에 600원, PC방 1시간에 500원 커피 한 잔 1300원.

반값특별동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물가입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고시생들을 상대하다 보니 물가는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의 반값 수준입니다. 3000원의 값싼 식사라 질까지 낮을 것이라 여기면 오산입니다. 고기반찬에 각종 나물, 후식으로 식혜에 바나나 반쪽까지, 거기다 먹고 싶은 만큼 계속 먹을 수 있는 뷔페식으로 운영됩니다. 고시생들은 배는 물론 마음마저 고시식당에서 채웁니다.

하지만, 최근 이곳 신림동에서 절박한 고시생들의 사정을 외면한 고시식당 주인이 사기죄로 경찰에 입건됐습니다.

‘죄송합니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습니다.’

10일 오전 7시와 밤 7시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취재진이 지난 7일 찾은 신림동의 한 고시식당 지하 1층에 붙은 공지입니다. 그런데 이 식당은 고시생들에게 할인 이벤트를 빌미로 식권을 무더기로 팔고 곧바로 폐업을 해버려 피해자들은 더 큰 배신감을 느낍니다. 고시생들은 “정말 수험생들 어렵게 공부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남은 식권을 환불도 해주지 않고 달아나다니 황당합니다. 문을 닫기 하루 전날만 해도 2주년 할인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사기당했다는 기분밖에 안 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인터넷 포털의 고시생 커뮤니티에는 ‘식권을 10장 이상 구매하지 말자.’ ‘이벤트 하는 식당은 믿지 말자.’는 글이 올라오는 등 불신 풍조까지 생겼습니다. 결국, 피해자 32명이 지난달 22일 사장 이모(37)씨를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피해액만 1000만원이 넘습니다.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고시생들에게는 천금같은 돈입니다.

문제는 고시식당 폐업이 처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2008년 사법시험 폐지 일정이 확정된 이후 고시촌 주변이 점차 공동화하면서 가까운 상점들도 경영난에 처했습니다. 1990년대 말 사시 선발 인원이 1000명까지 점차 늘어난다는 기대감 속에 IMF 위기에도 큰 호황을 누린 것과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울대 학생들의 하숙 및 자취 공간이었던 이곳이 고시촌이란 별칭을 얻게 된 것도 이때입니다.

하지만, 2014년 외시 폐지, 2017년 사시 폐지를 앞두고 이곳의 상권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신규 고시생이 유입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고시학원 관계자도 “인터넷 강의로 수험 준비 패턴이 바뀌면서 더 이상 주거 중심의 고시촌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2년새 신림 9동에서만 고시식당이 4곳이 폐업했다고 상인들은 전합니다.

서점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로스쿨 도입과 동영상으로 10년 새 수험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어요. 경영난에 사채를 쓰는 사람들도 많고…. 아마 이벤트를 했던 것도 경영을 잘 해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관악구나 상인회에서는 재건축을 요구하면서 7급과 9급 공무원시험, 경찰시험 관련 학원들을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고시촌이 조용하고 싼 편이라 직장인들과 다른 시험 수험생들의 발걸음이 다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꿈을 좇아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에 매진하는 수많은 고시생이 있습니다. 밥값도 아껴가며 공부하는 이들은 오늘도 저렴한 고시식당을 찾아 헤맵니다. 이들의 절박한 사정을 악용하는 상술은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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