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서울TV

옛 극장에서 찾은 낭만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서울 충무아트홀 갤러리. 이곳에선 지난 8일부터 ‘사라진 화가들의 영화’전이 열리고 있다. 세련되고 미끈하게 잘빠진 영화 포스터에 밀려 이제는 사라져버린 극장 간판그림을 한 데 모은 이색 전시회다. 지난 40여년간 단성사, 국도극장, 대한극장 등 유명극장에서 영화 간판을 그렸던 영화간판의 산 증인 백춘태(68)씨를 충북 단양 자택에서 만났다.

그가 이곳에 내려온 것은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멀티플렉스 극장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 영화간판을 그릴 수도 없었고, 실사로 프린트되는 간판도 꼴보기 싫었지...” 그 후 아내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정착할 곳을 찾다가 충북 단양군 가곡면 거대리로 인생후반기의 터를 잡은 것이다. 현재 아내 김병복(64)씨는 여기저기 몸이 아파 요양원에 있어 백씨는 밥도 혼자서 해먹고 매일매일 아내의 간병인 역할을 하고 있다.

1944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6살 때 가족을 따라 월남한 백씨는 인천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유난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화가를 꿈꿨다. 고등학교 시절엔 칠판이 영화 스크린으로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가족의 반대는 크게 없었으나 경제적 형편 때문에 미대 진학은커녕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그는 그림도 그리고, 그림만큼이나 좋아하는 영화도 실컷 볼 수 있는 ‘간판장이’의 길을 택했다. “전쟁이 끝나니 다들 생활이 어려웠고 화가는 생계유지도 힘든 시절이었다. 우선 돈을 만지자 싶어 극장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1959년 ‘이름없는 별들’의 간판을 시작으로 그가 본격적으로 간판미술가로 활동했던 1960년대에는 간판미술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고 수입도 적어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그땐 사람들이 목욕과 이발도 1년에 딱 두 번, 추석이랑 구정에 하던 시절이었는데 영화 관람도 그랬지. 평상시에는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으니까. 극장이 어려우니 자연스럽게 간판 일도 적었고…“

그러다 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간판 제작 수요가 늘어났고 간판미술가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우도 나아졌다. “극장에 처음 들어가서는 월급쟁이로 일했는데 나중에는 간판 당 일정액을 받는 청부제로 변하고 대우도 나아졌어요. 일도 많아져서 잘 나갈 땐 서울시내 개봉관 간판은 내가 다 그렸으니까.”

그는 “극장마다 간판의 전체적 구도나 색상, 기법도 다양해 간판장이들 사이에 경쟁심이 생기기도 했다”며 “개봉일 다음날 극장들을 돌아다니며 간판들을 보고 많이 배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마지막까지 간판 작업을 맡았던 단성사가 2000년대에 들어 멀티플렉스 상영관으로 바뀌고 컴퓨터 실사 간판들이 생겨나면서 붓을 놓기까지 천 여개의 영화 간판을 그렸다.

백씨는 “사람이 그리는 그림은 천개면 천개 모두 다 달랐다며 요즘처럼 컴퓨터로 찍어내는 실사그림에 사람 냄새, 땀 냄새가 없다는 게 너무나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씨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단양에서 벽화 그리는 작업을 하며 꿈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꿈꿨던 ‘환쟁이’가 되어 여전히 붓을 쥐고 살아가는 그가 아름다워 보인다.

박홍규 PD gophk@seoul.co.kr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블로그

서울신문 www.seoul.co.kr

주소 : 100-745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124 (태평로1가 25번지) 서울신문사빌딩 l 대표전화 : (02) 2000-9000

인터넷서울신문에 게재된 콘텐츠의 무단 전재/복사/배포 행위는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위반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서울신문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