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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작가 이쾌대 전

월북작가 이쾌대 전

입력 2012-03-12 00:00
업데이트 2012-03-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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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화가 이쾌대의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표현기량을 엿볼 수 있는 전시회가 대구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대구지역을 기반으로 한 작가들을 통해 미술사의 흐름을 짚어보기 위해 마련된 기획전입니다.

1988년 월북작가 해금을 통해 우리 앞에 나타난 이쾌대(1913~1965)는 현대미술 수용초기인 근대기에 활동한 서양화가입니다. 독특한 발상, 신비한 고전미와 현대적 감성, 시대에 대한 통찰과 비전을 작품속에 구현한 보기 드문 경향의 화업을 펼쳤습니다.

경북 칠곡 출신인 이쾌대는 대구 수창보통학교와 서울 휘문고보를 거쳐 1934년 도쿄 제국미술학교에 유학했습니다. 귀국 후 혼란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독자적인 표현기법과 화풍으로 리얼리즘을 개척했으며 특히 30,40년대 최고의 인물화가로 꼽혔습니다. 1941년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1948년엔 성북회화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인민군측 종군화가로 활동하다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감돼 1953년 남북포로교환때 월북, 1965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구미술관의 전시는 혼란한 시대 속에서 정치사의 영향을 받았던 그의 인생 행보보다는 예술적 창조과정 속에서 작가의 고민과 노력, 자기만의 화풍을 성립해 가는 작업과정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입니다.

이쾌대는 인물화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일관되게 인물에 집중했던 화가입니다. 단순한 초상을 그리는 것에 멈추지 않고 탄탄한 데생력을 바탕으로 대상의 심리까지도 감상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가 30대 중반에 그린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과 두 점의 자화상, 붉은 외투를 입은 아내 유갑봉, 독립운동가이자 화가, 그리고 전통 복식연구가로 활동했던 형 이여성, 작가와 부인의 모습을 그린 ‘2인초상’ , 성북회화연구소 주변을 배회하던 거지를 그린 ‘걸인’ 등은 그의 역량을 확인하고도 남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족이 소장하고 있던 드로잉들이 처음으로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쾌대가 서구화풍을 수용하고 학습하던 일본 유학시절 그렸던 인물 대생과 누드 크로키, 작품연구 습작 등 미공개 작품을 포함해 60점의 드로잉은 인물을 통해 내면과 시대 상황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의 고뇌와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분단을 상징하는 불운의 화가 이쾌대의 천재적 기량과 미술사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전시회입니다.

글 / 함혜리 영상에디터 lotus@seoul.co.kr

영상 / 문성호 PD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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