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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Artist & Space) - ⑧하종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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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바스 표면에 물감을 칠한다는 회화의 고정관념을 깨고,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한국 추상회화의 새 장을 연 화가 하종현(77). 그의 일산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화가들은 캔버스 앞면에 그림물감으로 형상을 그리는 것으로 자기 예술을 완성시켰습니다. 작가 하종현은 그 틀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그는 올이 성긴 마대 뒷면에서 유화물감을 밀어내어, 올 사이로 밀리고 삐져 나온 물감을 도구 또는 손으로 다루며 형상을 만드는 기법을 구사해 왔습니다.

이런 독특한 기법을 통해 이뤄진 그의 작품세계는 확실히 다른 화가들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을 줍니다. 진흙과 거친 지푸라기로 바른 시골집의 흙벽이나, 한약재를 짤 때 삼베사이로 나오는 진액 등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거친 마티에르와 물감, 손 끝의 움직임과 힘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그의 작품들은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자극합니다.

물질이 다른 물질의 틈으로 흘러나가고, 그 물질이 다른 물질과 만나면서 독특한 분위기와 형상을 만들어 냅니다. 화면은 물질인 동시에 활성화된 회화의 공간이 됩니다. 그의 대표작 ‘접합(conjunction )’ 시리즈는 이렇게 만들어 졌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6월 15일부터 두달간 열리고 있는 회고전에서는 50년간 이뤄 온 그의 독창적 작품세계를 시대 별로 집중 조명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실험정신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기의 기하학적 추상들과 1970년대 초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시절의 고민을 담아 용수철, 철사, 철조망 등을 이용한 오브제 작품들은 지금 보아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물감을 뒤에서 밀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접합’ 연작은 1974년 처음 시작되어 2009년까지 35년이나 되는 긴 세월동안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표했습니다. 물질들과의 만남이 빚어내는 만남, 즉 접점이 그의 주된 관심사였지만 표현방식은 계속 변화합니다. 1974년부터 1979년 사이, 초기 실험에서는 마대와 물감의 거친 물성이 두드러집니다. 1980년에서 1989년까지 작품은 정적이고 명상적인 물성의 관조성을 강조합니다. 균질된 질서를 가진 조형감각으로 황갈색, 쑥색 등 고요한 자연의 풍경을 보는 듯 합니다. 1990년부터 2009년까지는 짙은 청색 등 어둡고 선명한 색채가 등장하고 움직임이 크고 활달한 붓의 흔적들이 마치 상형문자의 기호처럼 등장하는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그는 35년간 매진해 온 접합시리즈를 캔바스를 철조망으로 감아 싸고 못을 박는 기념비적인 작품과 함께 종지부를 찍습니다. 그를 옭아맸던 틀에서 벗어나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제작한 ‘이후 접합’은 중성적 색조의 ‘접합’ 연작과 달리 생의 희열을 드러낸 듯 현란한 원색이 물결칩니다. 소재나 기법 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화가인데도 색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왠지 절름발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서 “앞으로 10년간 마음껏 색을 누리겠다.”고 말했습니다. 화려한 색이 출렁이는 작품에 대해 그는 ‘만선의 기쁨’ 같은 충족감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 한국에만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물”이라고 서슴없이 자평합니다. 오랜 세월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한 교육자로서, 서울시립미술관장직을 성공리에 수행한 행정가로서, 그리고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그마큼 많은 일들을 열심히 해 왔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가로서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살아왔다는 점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합니다.

회화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단번에 깨버린 작가 하종현. 거리낌없이, 두려움도 없이 자유롭게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그가 보여 줄 새로운 반란을 기대해 봅니다.

글 함혜리기자 lotus@seoul.co.kr

연출 박홍규PD gophk@seoul.co.kr

영상 문성호PD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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