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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특급, 박찬호 아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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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안특급’ 박찬호 선수가 3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은퇴 기자회견에 열고 은퇴 소감을 말하고 있다.


13개의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작고 낡은 공주중학교 유니폼부터 공주고, LA 다저스, 텍사스, 샌디에이고, 필라델피아,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까지, 그리고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의 대표 유니폼,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마지막으로 한화 유니폼이 자리를 지켰다. 미국과 일본, 한국을 누비며 19년 동안 국민들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한 그가 마운드에서 내려온다. 한국의 첫 메이저리거 박찬호(39)가 30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자기만의 미래를 얘기했다.



진회색 양복에 오렌지색 넥타이를 매고 등장한 박찬호는 회견 내내 말문을 잇지 못했다. 야구공을 처음 손에 쥐고 잠 못 이루던 10세 소년이 불혹에 접어 들었다. 30년 동안 얼마나 많은 환희와 좌절, 아픔이 그를 관통했을지 본인만 알고 있을 터.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한국 야구 역사에 저만큼 운이 좋은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고 과거를 돌아봤다. 박찬호는 은퇴를 결심한 계기에 대해 “1년을 계획하고 한국에 왔다. 한국 야구를 위해서, 한국 선수들과 교류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팬들에게 공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 목표를 다 이뤘다고 생각했고 이후 할 일에 대한 분명한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미련을 갖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야구 행정과 경영에 대해 배울 예정이라고 했다. “미국처럼 한국도 산업 야구 쪽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미국에 가서 야구 행정이나 경영, 구단 운영 등에 대해 공부할 생각을 갖고 있다. 다음달쯤 가족과 미국에 들어가 확고한 계획을 세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어 샌디에이고 구단주인 피터 오말리와의 인연을 언급하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여러분들에게 알려질 텐데 그런 일들이 오말리의 조언을 듣고 오말리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해 샌디에이고에서 경영 수업을 받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마이너리그라는 어려움을 딛고 메이저리그에 복귀해 124승째를 거뒀을 때가 가장 기뻤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한국에 돌아와 1승씩 달성한 것도 기뻤다. 마지막(10월 3일 대전 KIA전) 선발 등판 때 마음속으로는 팬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송진우 코치의 배려로 선발로 나서 5와3분의2이닝 던진 것이 감동적인 마무리였다.”고 덧붙였다.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노력도 많이 하고 투지도 뛰어나지만 너무 순간의 결과에 집착하는 것 같다. 나도 수많은 실수를 통해 이 자리에 왔다. 목표를 길게 보고 실패와 실수를 견뎌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의 야구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야구는 학교다. 책으로 배우지 못한 여러 가르침을 배웠다. 시련을 겪으면서 야구를 머리로 하지 않고 가슴으로 하는 법을 배웠다. 마운드 위에 서면 항상 외로웠지만 시련과 환희를 거듭하면서 야구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었다.”

글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사진·영상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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