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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36.5℃-장인의 손] 도검장 이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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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 농암면 선곡리. 산골 마을의 적막을 둔탁한 소리가 두드려 깨웁니다. 폐교로 보이는 학교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운동장 한 편의 가마에서는 시뻘건 불이 타오르고, 한쪽에서는 연신 쇠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17도의 한파 속에서도 주변 공기는 후끈 달아올라 있습니다. 하얀 작업복에 까만 두건, 작업용 앞치마까지 두른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인물. 그가 바로 국내에 단 한사람뿐인 야철도검 기능전승자 이상선 씨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고려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덩어리에 가까운 쇠를 달궈서 두드리고, 물 대신 눈 속에 넣어 급랭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어느덧 길쭉한 쇠막대로 변했습니다. 그걸 다시 모루에 놓고 땅땅땅 아울러서 균형을 잡습니다. 작업과정 내내 청년 하나가 곁에서 돕습니다. 이상선 씨의 아들 승대 씨입니다. 장인은 쉽지 않은 일을 묵묵하게 함께 하는 아들이 대견스런 눈치입니다. 하지만 부자는 작업과정 내내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이곳은 본격적으로 검과 도를 만드는 작업실입니다. 아직은 길쭉한 막대에 불과한 쇠가 어떻게 도검으로 바뀌는지 지켜보겠습니다. 맨 먼저 하는 일은 연마작업입니다. 거친 쇠막대를 갈아나가니 반짝거리는 속살이 드러납니다. 이젠 제법 칼의 위용도 갖췄습니다. 연마는 작업대를 여러 번 옮기며 지루할 정도로 계속됩니다. 칼날을 만들고 손잡이를 깎아내고…. 불꽃이 튀고 날아다니는 쇳가루로 눈이 매캐하고 목이 칼칼합니다.

이제 칼이 제 모습을 갖췄습니다. 장인이 종이를 칼에 대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싹싹 소리를 내며 잘라집니다.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작업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망치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번엔 칼집을 만들어야겠지요. 칼집은 주로 무늬가 아름답고 견고한 가죽나무를 씁니다. 이제 대략적인 작업이 끝났습니다. 물론 정말로 칼 하나를 완성하려면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장인을 따라서 작품들이 전시된 전시장을 돌아봅니다.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로 다양한 도검이 전시돼 있습니다.

도검장 이상선 씨와 함께 보낸 하루. 구경만 했는데도 몸은 파김치가 됐습니다. 하지만 가슴은 뿌듯합니다. 세상의 외면 속에서도, 오로지 전통검을 되살려보겠다고 40년 이상 쇠와 씨름해 온 장인 이상선 씨.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연장일 뿐입니다. 이들의 닳고 갈라진 손이 있어 우리는 지금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글 / 이호준 선임기자 sagang@seoul.co.kr

영상취재·편집 / 문성호 PD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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