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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36.5℃-장인의 손] 궁시장 유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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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나지막한 산 아래로 난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고즈넉한 곳에 아담한 2층집이 보입니다. 바로 ‘영집 궁시박물관’입니다. 궁시는 활(弓)과 화살(矢)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 박물관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영집 유영기(78) 선생이 설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활과 화살 전문 박물관입니다.

4대째 내려온 가업을 이어받아 화살 만드는 일로 평생을 살아온 유영기 선생. 활의 고장 예천과 함께 화살로 이름을 날렸던 장단에서 태어나 숙명적으로 화살과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떻게 화살 만드는 일을 시작했을까요?

지금은 ‘화살의 시대’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화살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서울은 물론 저 북쪽 신의주에서까지 주문을 받았다는 화살 제작 가문의 후손답게, 화려했던 시절에 대한 자부심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조선을 둘러싼 3국의 으뜸 병기를 꼽을 때 중국의 창, 일본의 검을 들었다면 조선은 단연 활이었습니다. 조선의 활은 그 특유의 형태와 기능으로 주변국에 ‘명품’으로 각인됐습니다.

유영기 선생이 화살을 만드는 과정은 정밀하기 그지없습니다. 제대로 만들려면 130번의 과정을 거쳐야 화살 하나가 탄생합니다. 그래서 장인은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카본 화살에 대한 안타까움이 큽니다. 정밀한 공정이 필요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나무를 고르는 것부터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합니다. 언제 어디서 자랐느냐에 따라 화살의 품질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잘 말린 대나무의 마디를 갈아서 없애고 껍질을 벗기고 촉 끼울 부분을 깎아내는 과정 하나하나에 정성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화살의 무게를 하나하나 재기 위해 아직도 저울을 사용합니다.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가 화살촉을 끼우는 부분에 물에 불린 쇠심줄을 감는 일입니다. 그대로 살촉을 끼우면 목표물에 맞는 순간 대나무가 산산이 쪼개지기 때문입니다. ‘질기기가 쇠심줄 같다’는 말이 있듯이, 이렇게 감아준 화살은 철판도 뚫는 힘이 생깁니다.

화살을 만드는 전통기법이 유영기 선생 대에서 끊기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마침 아들인 유세현(49세) 씨가 전수조교로 그 맥을 잇고 있습니다. 지금은 군에 입대한 손자도 일을 배우고 있다고 은근히 자랑합니다. 하지만 아들이 화살을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 장인은 그리 달갑지 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중요무형문화재는 역사•문화적 가치에 비해 인식 부족과 경제적 문제 등으로 전승체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요.

유영기 선생과 함께 박물관을 둘러봤습니다. 박물관에 대한 그의 긍지는 대단합니다. 우리 전통을 후대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열망이 곳곳에 정성스럽게 배어 있습니다.

평생을 화살 만드는데 바쳐온 장인, 본인은 장인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까요?

유영기 선생과 마당을 거닐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의 소망은 단 하나였습니다.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그래서 조상의 얼을 후손에게 전해주는 것. 가치관의 혼돈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요? 서울신문 이호준입니다.

글 / 이호준 선임기자 sagang@seoul.co.kr

영상취재·편집 / 문성호 PD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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