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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36.5℃-장인의 손] 옹기장 박재환

[기록 36.5℃-장인의 손] 옹기장 박재환

입력 2013-04-29 00:00
업데이트 2013-04-2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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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틈만 나면 장독대에 가서 독과 항아리를 정성껏 닦았습니다.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옹기들 앞에서 할머니는 늘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어린 눈으로는 왜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은 지금은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충청북도 청원군 오송읍 봉산리. 전통방식으로 옹기를 빚고 있는 장인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 12호 옹기장 박재환 옹. 그의 집안은 이 곳에서 7대째 옹기를 굽고 있습니다. 현재 옹기를 굽고 있는 가마도 200년이 가까이 됐다고 합니다. 박재환 장인은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했을까요.

장인을 따라서 그릇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꼼꼼하게 들여다봤습니다. 먼저 반죽해놓은 흙, 즉 질덩이를 쓰기에 좋을 만큼 나눕니다. 이때 쓰는 도구를 ‘쨀줄’이라고 하는데요 전에는 명주실을 썼지만 요즘은 철사를 사용합니다.

다음엔 나눠놓은 흙을 길게 늘여서 굵은 엿가래처럼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번엔 흙덩이를 따로 반죽합니다. 또 반죽덩어리를 올려놓기 전에 물레 위에 고운 흙을 뿌립니다. 이를 백토가루뿌리기라고 하는데, 언뜻 봐도 하얀 흙은 아니군요.

이제 조금 전 만들어놓은 반죽에 힘차게 방망이질을 하는데요. 이 과정을 밑창치기라고 합니다. 옹기의 밑창, 즉 바닥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찰진 흙이 골고루 퍼집니다. 그나저나 하필 왜 이곳에 옹기가마를 지었을까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밑창치기를 마친 흙을 ‘밑가새’라고 부르는 도구로 규격만큼 도려냅니다.

바닥을 다 만들었으니 이젠 본격적으로 그릇을 만들 차롑니다. 이처럼 미리 만들어놓은 가래를 하나씩 쌓아올리는 것을 태림질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그릇 바닥과 접하는 부분을 쌓는 첫 과정을 청태림질이라고 합니다.

청태림 작업이 끝나면 바닥과 청태림이 닿은 안쪽부분을 때우는데 이를 고역 돌리기라고 합니다. 청태림과 바닥을 좀 더 견고하게 밀착시키기 위한 작업입니다.

태림질이 어느 정도 진행되니까 그릇 벽에 골고루 방망이질을 하네요. 그릇 벽을 고르는 과정인데요, 수레질이라고 합니다.

다음엔 근개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그릇의 표면을 매끈하게 하는데 이를 근개질이라고 합니다.

일단 밑 부분이 완성되면 또 다시 그릇의 중간부분을 쌓아올립니다. 그릇이 완성될 때까지 태림질과 수레질이 반복됩니다. 마무리 단계에서 그릇의 모양도 잡아나갑니다.

이젠 그릇이 제 모습을 갖췄습니다. 그렇다고 끝은 아니겠지요. 장인이 도구를 써서 그릇 표면에 뭔가 그려넣습니다. 바로 무늬를 새기는 과정입니다.

이제 손잡이만 달면 그릇 만드는 과정은 모두 끝이 납니다.

이번엔 낙관을 찍습니다. 장인의 자부심이자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증하는 절차겠지요. 그런데 지금 만든 그릇은 무엇에 쓰는 걸까요.

이렇게 만들어진 그릇은 잿물을 입혀서 말립니다. 다 말랐으면 이제 가마로 갈 차렙니다.

그릇들을 이렇게 가마에 쌓는 과정을 가마재임이라고 합니다. 무척 힘이 드는 일인데도 장인과 아들 성일 씨 단 둘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젊은 인부 한 둘쯤은 있을 법도 한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배우려 하지 않는 옹기 만드는 일, 아들 성일 씨는 무슨 마음으로 뛰어들었을까요.

가마재임이 끝났으니 이제 불을 붙여야겠지요. 무조건 불만 땐다고 그릇이 구워지는 건 아닐 텐데요.

구워진 옹기들을 꺼낼 차롑니다. 하나씩 두르려 보는 장인의 표정이 만족스러워 보이는데요. 어떤 그릇이 잘 익은 그릇일까요.

요즘 7대를 이어온 이 옹기가마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 일대가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로 지정되는 바람에 가마터가 아파트 부지로 수용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곳은 명당성동보다 더 오래된 천주교 공소가 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합니다. 성일 씨와 몇몇 단체에서 공원 지정을 위해 이리저리 뛰고 있지만 힘에 부쳐 보입니다. 200년 가마터를 아파트와 바꾸는 일은 없기를 기대하면서, 장인의 소망을 물었습니다.

가마 보존을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는 아들 성일씨도 바람이 있을 텐데요.

마지막으로 장인에게 장인이란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오로지 흙에 기대어 80평생을 살아온 박재환 장인. 그의 전신에는 욕심 없이 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선량함과 겸손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의 소망대로 가마가 대대손손 전해져 후손들도 옹기가 주는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글 / 이호준 선임기자 sagang@seoul.co.kr

영상취재·편집 / 문성호 PD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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