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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궁중무악 재현 현장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궁중무악 재현 현장

입력 2011-06-04 00:00
업데이트 2011-06-0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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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되 넘치지 않고 슬프되 비통하지 않으니…조선 최고 문화 결정체

145년 전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가 4차분까지 모두 돌아온 뒤 500년 조선왕조 역사와 예술의 중심축인 궁중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는 7월 이들 도서의 일반 공개에 앞서 각종 공연과 기념행사가 진행 되고 있는 가운데 궁중문화의 핵심으로 기품이 넘치는 궁중무악(宮中舞樂)을 재현하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초여름의 성급한 무더위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지난달 29일.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에서는 ‘세종조 회례연’(世宗朝 會禮宴)을 재현하기 위한 국립국악원 단원들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전통 궁중의상을 차려 입은 연주단원과 무용단원들의 이마에는 비지땀이 흘렀다. ‘회례연’은 정월 초하루와 동짓날, 임금과 문무백관이 모여 화목을 도모하기 위해 벌이는 잔치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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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펼쳐진 ‘세종조 회례연’ 재현 행사에서 국립국악원 무용단원들이 임금께 다섯 번째 잔을 올리는 의례 순서로 무고(舞鼓)춤을 추고 있다.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펼쳐진 ‘세종조 회례연’ 재현 행사에서 국립국악원 무용단원들이 임금께 다섯 번째 잔을 올리는 의례 순서로 무고(舞鼓)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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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수정전 앞 정악 공연
경복궁 수정전 앞 정악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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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조회례연 재현 공연
세종조회례연 재현 공연


●경복궁 ‘세종조 회례연’… 뙤약볕 1시간 공연 관객 기립박수

휴일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들은 15세기의 품격 높은 궁중무악을 감상하기 위해 공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근정전 주변에 모여들었다. 뙤약볕 아래서 1시간 넘게 진행된 공연이었지만 도중에 자리를 뜨는 사람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관객들은 수준 높은 공연에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임금이 되는 상상을 하며 공연을 봤다.”는 김정길(53)씨는 “고궁에서 옛 왕조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공연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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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는 향악정재(鄕呈才)에 속하는 궁중무용으로 청·홍·백·흑의 네 빛깔로 네 방위를 나타내는 북을 가운데 두고 추는 군무다(국립국악원 무용단).
무고는 향악정재(鄕呈才)에 속하는 궁중무용으로 청·홍·백·흑의 네 빛깔로 네 방위를 나타내는 북을 가운데 두고 추는 군무다(국립국악원 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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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5년(1433) 당시 ‘회례연’은 악사 240여 명과 무용수 160여 명 등 총 400여 명이 출연한 장대한 규모의 행사였다.
세종 15년(1433) 당시 ‘회례연’은 악사 240여 명과 무용수 160여 명 등 총 400여 명이 출연한 장대한 규모의 행사였다.


제례·연향·조회·군례악 등 다양한 궁중 행사에 사용되었던 궁중음악은 오늘날 정악(正樂)의 한 장르로 분류된다. 아정하고 고상하며 속되지 않고 바른 음악이란 뜻의 ‘정악’. 국립국악원 이숙희 학예연구관은 “예로부터 유교 문화권에서 악(樂)은 인간의 심성을 바르게 하고 사회를 교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낙이불류(而不流) 애이불비(哀而不悲)’라 했던가. 신라의 우륵이 제자들의 연주를 듣고 던졌다는 찬사다. ‘즐겁되 넘치지 않고, 슬프되 비통하지 않은 감정의 절제’가 정악의 특징이다. 정악의 연주에는 민속악에서 느끼는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이입은 없지만 그 담담하고 유유한 장단의 흐름 속에서 선현들의 고고한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정재(呈才)로 불리는 궁중무용은 장엄하고 화려하면서도 모든 것이 절제된 가운데 우아함과 품위를 잃지 않은 정중동(靜中動)의 고혹적인 춤사위입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심숙경 안무자의 설명이다. 어우러진 아름다움의 극치다.

그녀의 표현처럼 무용단원의 춤가락은 마치 숨을 고르고 명상의 세계에 잦아드는 과정처럼 현실을 초월한 신비스러운 멋을 느끼게 했다. 실로 공연이 끝난 후 느끼는 상쾌함에 일상의 불필요한 잡념과 찌꺼기들이 씻겨 나간 기분이다. 선조들의 예술 수준이 이처럼 높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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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공연에서 최적의 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고악기의 방사 패턴 실험(한국산업기술시험원).
무대 공연에서 최적의 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고악기의 방사 패턴 실험(한국산업기술시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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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기 방사패턴 측정 작업
국악기 방사패턴 측정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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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삼현의 하나인 향비파(鄕琵琶)를 고증에 의해 제작하고 있다(국립국악원 악기연구소).
신라 삼현의 하나인 향비파(鄕琵琶)를 고증에 의해 제작하고 있다(국립국악원 악기연구소).


●국내 유일 편종 장인 김현곤씨 “수백 년 전 소리 찾는 일 내 천직”

궁중무악에 사용되는 악기는 ‘악학궤범’(樂學軌範) ‘악기조성청의궤’(樂器造成廳儀軌) 등 고서에 전해지는 방식 그대로 제작된다. 충북 영동의 국립국악원 악기연구소는 과거로부터 전승되는 악기를 복원하고 오늘날의 무대 공연에 맞는 악기를 개발, 연구하는 곳이다.

김영희 학예연구관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 선생이 직접 만들어 사용한 거문고 악기인 고산유금(孤山遺琴)과 세종조 편경(編磬)과 짝을 이루는 세종조 편종(編鐘)을 지난해 복원 제작했다.”며 성과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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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편종 장인 김현곤(76)씨는 악기연구소의 고증에 따라 세종조 편종을 제작했다.
국내 유일의 편종 장인 김현곤(76)씨는 악기연구소의 고증에 따라 세종조 편종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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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곤씨가 고증에 의해 편종을 제작하는 모습
김현곤씨가 고증에 의해 편종을 제작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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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종 장인 김현곤씨의 편종 제작과정
편종 장인 김현곤씨의 편종 제작과정


김현곤(76)씨는 국내 유일의 편종 장인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고향인 전북에서 상경하여 서양 악기 만드는 일부터 시작한 김씨는 국립국악원에서 망가진 옛 악기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수백 년 전의 정확한 소리를 찾는 일이 저의 천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지난해 악기연구소에서 고증한 ‘악학궤범’에 따른 그림과 치수를 참고하여 세종조 편종을 제작했다. 주물 작업을 마친 종(鐘)의 조율을 하고 있는 그의 손놀림이 현란하다. 마치 옛 악기의 소리뿐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도 함께 되살리려는 듯했다.

진솔하고 고상한 궁중무악은 조선왕조가 성취한 최고급 문화의 결정체이다. 햇살이 풍요로운 6월, 싱그러운 자연과 더불어 선조들의 고고한 감성을 헤아리며 또 하나의 슬기를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2011-06-04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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