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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다큐 줌인] 2년만에 열린 권투 신인왕전

[포토 다큐 줌인] 2년만에 열린 권투 신인왕전

입력 2011-03-26 00:00
업데이트 2011-03-2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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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은 멈추지 않는다… 챔피언되는 그날까지

“돌아! 돌아! 턱 당기고! 원! 투!”

2년 만에 권투신인왕전 준결승이 열린 지난 11일 남양주체육문화센터 체육관에서는 관중들의 환호소리가 아닌 코치의 외침만이 울리고 있다. 자리를 채우고 있는 관중들도 대부분이 선수들과 관계자들로, 경기가 후반순서로 갈 때마다 관중석의 빈자리는 더욱 늘어간다. 하지만, 링 안은 링 밖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선수들의 열기로 후끈거린다. 링 위의 두 선수는 매서운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4라운드 안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부으려는 듯 쉬지 않고 주먹을 내뻗고 있다. 링 밖의 썰렁한 분위기에 시위라도 하는 듯 간혹 선수들의 피가 관중석까지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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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권투신인왕전 플라이급에 출전한 정태웅 선수가 자신의 스승인 전 WBA 세계챔피언 김태식 관장의 포스터가 걸려 있는 링 위에서 섀도복싱을 하고 있다.
2011 권투신인왕전 플라이급에 출전한 정태웅 선수가 자신의 스승인 전 WBA 세계챔피언 김태식 관장의 포스터가 걸려 있는 링 위에서 섀도복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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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신인왕전 준결승이 열리고 있는 남양주체육문화센터 관중석이 텅 비어 있다.
11일 신인왕전 준결승이 열리고 있는 남양주체육문화센터 관중석이 텅 비어 있다.
●매년 400여명 출전했다 올핸 80명으로 뚝

한국 권투의 전성기였던 1970~80년대에 장정구, 박종팔, 김태식, 백인철 선수 등 13명의 세계챔피언을 배출한 신인왕전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이종격투기 같은 퓨전격투기가 인기를 끌면서 정통격투기인 권투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사그라졌다. 한국의 마지막 세계타이틀 보유자였던 최요삼 선수의 사망으로 권투가 위험한 운동이라는 인식까지 심어지면서 권투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매년 300~400명의 선수가 출전했던 신인왕전에 올해는 2년 만에 열리는 경기임에도 80여명만 출전했다.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니 후원 또한 끊기면서 개최하는 일마저도 쉽지 않다. 한 권투관계자는 “한 경기당 대전료가 40만원인데 누가 그 돈 받고 이 힘든 운동을 하겠느냐.”며 대전료 봉투를 열어 보였다. 이마저도 대전료의 절반은 현금이 아닌 경기관람권으로 지급된다. 결국, 지방에서 온 선수들은 왕복교통비도 되지 않는 돈을 받고 경기를 치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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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수 선수가 운동 중인 서울 중랑구의 한 체육관 거울에 ‘입에서 똥물이 날 때까지’라는 재미있지만 결연한 각오의 문구가 눈에 띈다.
한익수 선수가 운동 중인 서울 중랑구의 한 체육관 거울에 ‘입에서 똥물이 날 때까지’라는 재미있지만 결연한 각오의 문구가 눈에 띈다.
●낮엔 택배기사 밤엔 샌드백 때리는 한익수씨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신인왕전에 출전한 선수들의 열정과 챔피언을 향한 욕심만큼은 전성기를 능가했다. 전북 장수군에서 오미자 농사를 짓고 있는 한익수(32)씨는 신인왕전 출전을 위해 석달 전부터 서울로 올라와 낮에는 택배기사로 일하면서 밤에 운동을 하고 있다. 신인왕전 출전 제한 나이인 32세에 객지생활까지 하면서 챔프의 꿈을 키우는 한 선수는 권투를 왜 하느냐는 질문에 “그냥 좋다. 권투를 시작한 지 이제 8년이 지났는데도 그만두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이것도 중독인가보다.“라며 다시 샌드백 앞으로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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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열린 밴텀급 준결승경기에 출전한 임진욱 선수(청)가 김우람 선수(홍)에게 주먹을 날리고 있다.
11일 열린 밴텀급 준결승경기에 출전한 임진욱 선수(청)가 김우람 선수(홍)에게 주먹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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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급에 출전한 한익수 선수의 얼굴에서 구슬땀이 맺혀있다.
페더급에 출전한 한익수 선수의 얼굴에서 구슬땀이 맺혀있다.
●스승이자 우상인 김태식관장 빼닮은 정태웅군

161cm, 48kg의 왜소한 체격에 곱상한 외모를 지닌 고등학생 정태웅(18)군은 신인왕전 플라이급에 출전했다. 정 선수는 자신의 스승이자 우상인 전 WBA 챔피언 김태식 관장과 같은 체급인데다 권투스타일까지 판박이다. 현재 3전 3승 3KO의 전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 선수는 저돌적이며 물러서지 않는 권투를 한다. 그는 복싱화 바닥이 닳아 4개월마다 신발을 바꿔 신어야 할 만큼 지독한 연습벌레다. 마땅한 스파링 상대가 없어 자신보다 체중이 20kg 이상 나가는 선수와 연습경기를 많이 해 얼굴이 성할 날이 없지만 하교 후 훈련을 거르지 않는다. 이 힘든 운동을 왜 하느냐는 같은 질문에 정 선수 역시 “권투가 좋아요. 관장님처럼 챔피언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며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김 관장을 의식한 듯 수줍게 웃는다. 이런 분위기가 어색했던지 김 관장은 무뚝뚝한 말투로 “권투는 관중을 미치게 만들 정도로 멋지게 해야 해.”라며 자리를 뜬다.

단지 이 두 선수뿐 아니다. 신인왕전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이 관중을 미치게 만들 멋진 주먹질을 위해 오늘도 시큼한 땀 냄새를 풍기며 허름한 체육관에서 숨이 넘어갈 때까지 줄을 넘고 주먹이 부서져라 샌드백을 치고 있다.

바로 이들의 신인왕전 결승전이 27일 오전 남양주체육문화센터에서 열린다. 링 안만큼 뜨거운 관중석의 열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2011-03-2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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