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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인사이드] 이동통신 3사 사활 건 총성 없는 주파수 전쟁의 막전막후

[주말 인사이드] 이동통신 3사 사활 건 총성 없는 주파수 전쟁의 막전막후

입력 2013-05-25 00:00
업데이트 2013-05-2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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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라. 푸른 하늘이나 구름 또는 내리는 빗줄기가 전부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가롭게 보이는 이 하늘길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짐꾼들이 빠르게 지나고 있다. 바로 전파(전자파·electric wave)다. 우리는 눈을 떠서부터 잠들 때까지 전파의 도움, 때로는 공격을 받고 살아간다. 뭐든 무선이 대세가 돼 버린 지금, 전파 없는 생활은 상상조차 힘들다.

선이 없이 작동되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전파의 힘을 빌리고 있다. 휴대전화나 인터넷은 물론 편히 소파에서 늘어질 수 있도록 돕는 TV 리모컨, 출근길 버스에서 듣는 라디오, 심지어 목청의 진동이 만들어내는 목소리나 물체를 구별하게 해주는 가시광선까지도 크게 보면 전파와 원리가 같다. 최근 정보통신업계에서 새 논란거리로 떠오른 주파수는 쉽게 말해 이 전파가 다니는 길이다. 각 전파는 진동수, 파장, 진폭 등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구리 전선 대신 주파수라는 길을 지나며 정보를 전달한다. 라디오, TV, 휴대전화 등의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무선 기술은 정해진 대역의 주파수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또 해석하는 기술이 기본이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대역(band)이다. 주파수가 길이라면 대역은 도로의 폭이다. 길이 나 있다고 해서 사람과 자동차, 우마차, 비행기가 한꺼번에 다닐 수 없듯이 주파수 대역도 애초에 정해진 용도로만, 허락받은 사람들만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통사고, 즉 ‘혼선’이 생기기 때문이다. 같은 전화번호를 여러 사람이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에 정부는 주파수를 공공재의 하나로 관리하며 대역별로 정해진 사용자가 정해진 용도로만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24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주파수에 관한 핫이슈인 ‘황금 주파수’ 1.8㎓ 논쟁은 이 대역을 누가 사용하느냐에 관한 문제다. 1.8㎓는 해외 주요 업체들이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에 사용하고 있는 주파수 대역으로 로밍 서비스 활용 등이 쉬워 탐나는 주파수로 통한다. 국내에서도 LTE 사업 용도로 할당된 이 주파수를 두고 3대 이동통신 사업자인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사운을 건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누가 이 대역을 가져가느냐에 대한 미래창조과학부의 최종 결정에 따라 LTE 시장, 더불어 이동통신 시장의 판도가 뒤집힐 가능성까지 있기 때문이다.

논란의 핵심은 특히 1.8㎓ 구간 내 10㎒(1.83~1.84㎓) 대역을 KT에 줄 것인가, 말 것인가다. 현재 이동통신 3사 중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각각 총 40㎒, KT가 총 50㎒ 정도의 주파수를 LTE 용도로 가지고 있다. 이렇게 통신 3사가 비슷한 LTE 주파수 대역을 가진 상황에서 이번 주파수 할당 대상의 하나로 거론되는 ‘1.83~1.84㎓’ 구간은 특히 KT로서는 ‘길을 하나 더 확보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광대역’(broadband)의 실현 때문이다. 광대역은 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주파수 대역이라는 뜻이다. 즉 드넓은 정보의 고속도로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문제의 1.8㎓ 내 구간이 유독 KT에만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건 해당 구간이 KT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주파수 대역에 인근한 ‘인접 대역’이기 때문이다.

LTE는 주파수 대역폭과 무관하게 통신 속도가 일정한 3세대 통신과는 달리 대역폭이 곧 속도를 결정하는 성질이 있다. LTE에서는 대역폭이 2배가 되면 통신 속도 역시 2배로 빨라지는데 현재 업체들이 LTE 광대역이라고 말하는 40㎒ 폭 주파수 대역으로 LTE 서비스를 하면 최고 통신 속도가 150Mbps가 된다. 그러면 현재 LTE 속도인 75Mbps보다는 2배, 유선 통신 최대 속도인 100Mbps보다도 1.5배 더 빠른 통신이 가능한 것이다.

KT 입장에서는 이 인접 대역을 할당받으면 최소 비용을 들여서 2배로 넓고 2배로 빠른 고속도로를 확보할 수 있다. 반면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 입장에서는 문제의 대역이 계륵 같은 존재다. 두 회사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주파수 대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문제의 1.8㎓ 내 대역을 가져가도 쓸모가 없다. 그렇다고 남을 주기는 아까운 상황인 셈이다.

일단 이 대역의 할당 여부를 두고 SK텔레콤·LG유플러스 대 KT의 대결 구도가 형성된 모양새다.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과 3위 LG유플러스는 이 대역을 절대 KT가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반대로 KT는 애타게 이 대역을 원하고 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을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양 사는 만약 미래부가 문제의 대역을 KT에 할당해 버리면 정책적 판단이 일종의 ‘특혜’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인접 대역을 KT에 할당하면 KT는 5000억원을 투자해 반년 이내 광대역 전국망을 구축할 수 있는 반면 다른 회사들은 약 28개월 동안 최대 3조 3000억원을 쏟아부어야 같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일단 인접 대역은 놔두고 다른 주파수를 할당해 3사가 비슷한 시기에 광대역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 경제 파급 효과가 크다는 주장도 나온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를 근거로 “KT에 1.8㎓ 인접 대역을 할당하면 3사 전체의 고용 유발 효과는 2만 9000명,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3조원 정도지만 공정한 광대역 할당을 하면 고용 유발 효과는 4만 5000명,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4조 7000억원이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KT는 ‘자원 효율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인접 대역을 할당하는 것이 공공재인 전파의 파편화를 막고 효율성을 극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LTE 트래픽이 증가하는 시점에 광대역 LTE 시대를 더 빨리 열 수 있으며 손쉬운 해외 로밍 등의 이점이 있다고 한다. KT 관계자는 “이제 주파수 정책은 사업자의 취약점을 일일이 맞추기보다는 전체 산업 활성화 측면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며 “이미 해외 주요국은 광대역 주파수 할당을 완료하고 앙골라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광대역 LTE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래부는 3가지 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논란이 되는 인접 대역을 제외한 3개 블록을 할당하거나 ▲3개 블록을 대상으로 3사 경매를 부치거나 ▲인접 대역까지 포함해 할당·경매하는 안 등이다. 미래부는 다음 달 최종안 발표를 목표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미래부는 3개 안을 제시한 후로는 감감무소식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아직 내부에서 검토 중이고 결정된 바가 없어 따로 말씀드릴 게 없다”고 전했다.

오히려 바깥에서는 무선통신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주파수 전쟁’을 멈추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언급되고 있다. 업체들은 ‘주파수 할당 중장기 계획’을 요구한다. 이번 1.8㎓뿐 아니라 이후 새로 개간해 할당할 주파수 대역, 또 광대역 LTE를 위한 장기적인 주파수 회수·재할당 계획을 미리 제시하면 눈앞에 놓인 먹잇감을 두고 벌이는 과열 경쟁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해외 사례를 들어 주파수를 공유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업체들이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전파 공유는 경쟁 체제에 있는 회사들에게 한 공장을 주고 나눠 쓰라는 격”이라며 “우선 정서적 문제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주파수 전쟁’의 진짜 문제는 전파의 혜택을 받아야 할 소비자들이 결국 볼모 역할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신 3사는 각 기업의 이해관계를 ‘고객 만족’이라는 말로 포장해 왔다. 이번 1.8㎓ 논쟁 역시 LTE 시장점유율, 시설 투자비, 사업 선점 등을 두고 서로를 견제하는 기업들의 논리가 바닥에 깔려 있다. 고객들이 가장 예민해하는 요금에 대한 언급은 없다.

황금 주파수의 할당에 대한 미래부의 최종 결정은 오는 8월쯤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 소비자들은 휴대전화나 만지작거리며 고래들의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새우의 처지다. 이러는 사이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기업 간 경쟁은 차후 광대역 LTE 요금을 높이는 데 일조할 가능성도 있다. 지금 텅 빈 하늘을 바쁘게 달리는 전파도 결국 오랜 주파수 전쟁에 치여 온 ‘고객’의 땀이 서려 있다고 보면 괜한 생각일까.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2013-05-2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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