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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인사이드] 인기만점 심야버스, 더 늘리자니 택시 눈치 보이는데…

[주말 인사이드] 인기만점 심야버스, 더 늘리자니 택시 눈치 보이는데…

입력 2013-08-31 00:00
업데이트 2013-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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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심야버스의 고차 방정식

서울시가 지난 4월 19일부터 시범 도입한 심야 전용 시내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N26번과 N37번 2개 노선에서 각각 차량 6대씩 운행하며, 하루 평균 승객은 2098명 수준이다. 1050원의 저렴한 가격(시범 운행이 끝나면 1850원으로 인상)으로 심야의 독점적 교통수단인 택시를 대신해 ‘서민의 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서울 중랑~강서구를 관통하는 N26번 심야 전용버스가 30일 새벽 종로 1가 도로를 달리는 가운데 손님을 기다리는 한 택시기사가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co.kr
서울 중랑~강서구를 관통하는 N26번 심야 전용버스가 30일 새벽 종로 1가 도로를 달리는 가운데 손님을 기다리는 한 택시기사가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co.kr
오는 10월부터 서울시 택시요금이 인상될 예정이어서 시민들의 노선 확대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심야버스 운행을 반대하는 택시업계에 대해서는 고질적 병폐인 승차 거부부터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택시업계는 노선이 확대되면 요금인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항변한다. 일부 전문가는 공공재인 버스 노선을 무턱대고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정된 서울시 예산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심야버스 문제는 시민 편의와 택시업계, 서울시 예산 사이에 상생의 최적합을 찾아야 하는 고차 방정식이어서 해법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시가 모두 만족할 만한 해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30일 “이번 추석 전까지 심야 버스 추가 노선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9일 0시 45분 광화문. 이날 자정 중랑차고지에서 출발한 강서행 N26번 버스에 승객 5~6명이 올라탔다. 같은 시간 종로 2가에서는 은평 진관차고지에서 출발한 송파행 N37번 버스가 손님 3~4명을 태웠다.

N26번 버스는 이미 탑승한 손님들로 앉을 자리가 없었고 8명 정도가 서 있었다. 10분이 지나 버스가 이대, 신촌, 홍대 등 주요 대학가를 정차할 때마다 물밀 듯이 들어오는 승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반면 한남5거리를 지나는 N37번 버스의 좌석은 군데군데 여유가 있었다. 종로에서 N37번 버스를 탄 김성영(48·회사원)씨는 “택시를 타고 분당 집까지 가려면 2만 5000원에서 3만원을 내야하는데 심야버스를 타고 양재역에서 내린 뒤 분당행 택시를 갈아타면 비용은 절반 수준”이라면서 “늦게까지 차가 있다는 생각에 회식자리에서도 편안하게 술을 마실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버스에 탄 대학생 최모(21)씨는 “승차 거부 등을 일삼는 얄미운 택시들을 생각해서라도 노선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식을 끝내고 N26번 심야버스를 탔다는 김영록(30·회사원)씨는 “배차 간격이 너무 길어 한번 놓치면 40분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노선과 차량을 늘리지 않으면 택시의 대안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늦은 밤 취객들의 운전을 맡는 대리 운전기사들도 심야버스의 주요 고객이다. 이날 오전 2시 N37번 노선의 종점인 송파공영차고지에서 탑승해 강남역으로 가던 대리 운전기사 박모(44)씨는 “이전엔 손님을 모셔다 드린 뒤 비싼 택시비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대리기사 전용 무허가 셔틀을 이용했다”면서 “심야버스는 강남역이나 신사역, 종로 등 서울의 주요 큰 길을 다니기 때문에 노선이 굉장히 쓸모 있다”고 밝혔다.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일한다는 박씨는 “사당역에서 상계동, 종로에서 사당역으로 가는 심야버스 노선이 신설되면 더욱 편리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N26번을 타고 강서구청 쪽으로 간다는 대리 운전기사 최모(58)씨도 “예전 같으면 이 시간에 한강을 건너 넘어오는 버스가 없어 강서구청에서 오는 콜을 못 받았다”면서 “개화산역에서 홍대입구, 신촌, 동대문에 이르는 상행선 승객 80% 이상이 대리 기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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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버스를 모는 기사들은 어떤 대접을 받을까. 노선당 총 6대를 운행하는 심야 버스는 기사 1명이 정해진 배차 시간에 따라 버스 1대씩 맡아 한 차례만 왕복 운행한다. 기점에서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기점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시간 40분. 차량 정비와 청소하는 시간을 더하면 하루 5시간 정도 일하는 셈이다. 이번 달부터 심야버스를 운전하게 됐다는 N26번 노선 기사 김모(64)씨는 “낮 근무를 하면 수당 등을 합해 220만~230만원을 벌지만 심야 버스는 급여 실수령액이 150만원 정도”라면서 “그래도 심야 버스의 시급이 낮의 1.5배로, 일하는 시간 대비 급여도 나쁘지 않아 밤 근무를 자청했다”고 밝혔다.

N37번 노선의 기사 김모(43)씨는 “오전 5시에 귀가해 오후 1시쯤 일어난다”면서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이 때로는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술 취한 승객들이 많아 버스를 잘못 타거나 요금을 두 배로 냈다고 막무가내로 환불해달라고 요구할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심야버스 이용객은 모두 21만 8212명으로 집계됐다. 버스 1대당 평균 175명 가량을 실어나른 셈이다. 중랑구부터 강서구까지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N26번 버스가 1대당 평균 194명을 태운다. 은평~송파구를 지나는 N37번 노선은 1대당 평균 승객이 156명 정도다. 서울시 관계자는 “N37번은 종로와 강남 두 군데가 주요 거점인데 비해 N26번은 홍대입구와 신촌 대학가, 종로, 동대문, 청량리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을 지나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택시 기본요금을 3000원 안팎으로 인상함에 따라 심야버스 노선 확대에 더욱 명분이 실리게 됐다. 서울시는 심야 유동 인구가 많은 도봉산~대학로~구로, 상계동~강남~송파 지역을 중심으로 노선 7개를 추가로 선정하고 지난달부터 본격 운행하기로 했지만 준비 부족을 이유로 두 달째 연기해왔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서울시와 택시업계의 요금인상 조율이 완료되지 않은 탓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택시업계가 임단협을 진행하는데 노선 증설을 발표해 버리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기홍 한국교통시민협회 공동대표는 “노선 확대를 연기한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택시업계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김기복 시민교통안전협회 대표도 “심야 할증 시간을 앞당기고 택시요금이 인상되는 만큼 서민의 심야 교통비 부담이 가중될 것이 뻔하기에 심야 버스를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택시업계도 할 말은 있다. 서울택시운수조합 관계자는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수입이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것을 고려하면 심야 버스는 가뜩이나 어려운 택시업계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개인택시기사 경력 5년인 이모(53)씨는 “지난 4년간 택시 요금을 동결했다”면서 “기본요금이 일본의 4분의 1 수준인 현실에서 기사들은 손님을 조금이라도 더 먼 곳으로 태우고 많이 벌기 위해 불가피하게 승차 거부를 하기도 했지만 이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서울시에서 지난 수십년간 제대로 된 수요 예측 없이 선심 쓰듯 택시 숫자를 늘려놓고 택시업계만 이기주의에 빠진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심야버스 제도가 안착한다면 택시의 보완재로서 충분히 상생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윤혁렬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 연구실장은 “택시요금이 인상되고 심야 할증을 할 계획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택시 기사들의 수입도 늘 것”이라면서 “승객들도 더 빨리 귀가하려면 택시를 선택할 것이고, 택시비가 부담스러운 분들은 심야버스를 선택하는 식으로 이용객이 점차 분리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심야 버스가 낮과 마찬가지로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게 되면 그만큼 좋기만 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수요 예측 없이 무분별하게 노선을 확장하면 결국 시민들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준공영제의 특성상 적자가 발생했을 때 시울시가 이를 보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심야에 수요가 많지 않은 곳까지 버스 노선이 확장되면 결국 적자로 이어지고 시의 부담이 가중된다”면서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대중 교통으로서의 버스와 개인의 맞춤형 서비스인 택시는 엄연히 역할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윤 연구실장은 “버스 노선을 많이 개발하기 보다 현재의 지하철 노선과 비슷한 노선을 운영하면서 지하철이 끊겼을 때의 대체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2013-08-3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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