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견상 최고지도자 굳혀…실권은 검증안돼”이제부터 근본적 위기 닥칠 개연성”
지난해 12월17일 김정일 국방위위원장이 급사한 지 13일 만인 그해 12월30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면서 북한의 새 최고지도자에 올랐다.김정은 정권이 김 위원장 사망이라는 충격을 극복하며 체제 유지에 진력해온 지 벌써 6개월이 흘렀다.
극도로 폐쇄된 북한 사회의 내부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외견상으로는 김 1위원장이 권력 기반을 비교적 탄탄히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최고사령관으로 군권을 장악한 김 1위원장은 올해 4월11일 제4차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당 제1비서에 올랐고 이틀 뒤 최고인민회의 제12기 5차 회의에서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까지 맡았다.
북한이 김정일 위원장을 ‘영원한 당 총비서’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한 상황에서 김 1위원장이 당·정·군을 아우르는 최고 자리를 모두 거머쥔 셈이다.
북한 헌법과 노동당 규약도 국방위 제1위원장을 ‘최고영도자’로 칭하고 당 제1비서를 ‘당의 수반’이라고 명시해 김 1위원장을 최고지도자로 받드는 내용으로 개정됐다.
또 김 1위원장은 군부대뿐 아니라 만경대유희장, 기계공장 등 경제현장도 시찰하고 소년단 창립 66주년 경축행사 등의 각종 공식행사에도 얼굴을 내미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북한 매체들도 김 1위원장을 ‘최고 영도자’ 등의 존칭을 써가며 우상화와 찬양에 주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사망한 지 불과 넉달 만에 김 1위원장이 최고직책을 모두 꿰찬 것은 아버지의 권력승계 절차 및 과정과 비교해보면 훨씬 신속했다.
김 위원장의 경우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 공개활동을 자제하다가 3년이 흐른 1997년에야 당 총비서에 올랐고 이듬해 국방위원장이 됐다.
김 1위원장의 신속하고 안정적인 권력 승계는 일단 북한 지도부 내에서 심각한 분열이나 갈등은 표출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9일 “김정은이 당대표자회, 최고인민회의 등 규정된 절차를 거쳐 권력을 승계했고 그 지위로 역할을 하고 있다”며 “김정은 체제는 지난 6개월 동안 외형적으로는 상당히 안정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 1위원장이 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있는지를 놓고는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김 1위원장의 정치적 경험과 카리스마가 아직 부족한 만큼 김일성 주석과 김 위원장에 비해 권부 장악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을 근거로 내세운다.
김 1위원장이 1인자 자리에 오른 것도 자신의 능력보다는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이 구축한 정치시스템인 수령제와 이른바 ‘백두산 혈통’이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후광 덕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정권이 겉으로는 안정돼 보여도 내적으로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측면이 많은 것 같다”며 “비전과 리더십이 취약한 김정은이 당과 군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지난 1월 북한 지도자들이 검증되지 않은 김정은에게 의사 결정권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점을 근거로 북한 정권이 김 1위원장을 수령으로 내세워 형식상 유일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당과 군부의 핵심 엘리트를 주축으로 한 집단지도체제가 작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김 1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고모부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사실상 정책을 결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전문가들은 김 1위원장이 북한의 최고 통치자로서 국정 전반을 운영하는 능력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편이다.
김 1위원장이 ‘선군정치’와 ‘강성국가’로 요약되는 유훈통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다.
김 1위원장이 북한 엘리트층의 이해관계를 원만히 조정하고 민심을 사로잡을 비전을 제시한다면 권력을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지도력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유호열 교수는 “지난 6개월은 김정일의 유고상황에 대한 긴급처방 시기였지만 앞으로는 김정은이 최고지도자로서 정책을 조정하고 인사를 관리해야 한다”며 “김정은의 근본적 위기는 이제부터 닥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