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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후 억류 南외교관-北간첩 1대7 교환 합의”

“월남전 후 억류 南외교관-北간첩 1대7 교환 합의”

입력 2014-12-03 00:00
업데이트 2014-12-0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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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명 전 외무장관, ‘나의 외교 노트’서 공개

과거 월남전 이후 베트남에 억류된 이대용 전 공사 등 주월남 대사관 공관원 3명의 석방 협상시 이들과 남한 내 수감 중인 북한 공작원을 1대 7 비율로 맞교환하는 방안에 남북이 한때 합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은 최근 출간한 책 ‘나의 외교 노트’에서 1978년 인도 뉴델리의 베트남 대사관에서 개최된 ‘억류 공관원 석방을 위한 남북한 및 월맹(베트남) 3자 협상’ 1차 본회담에서 “북한은 국제적 교환 선례 중 최대치가 채택돼야 한다면서 1 대 70(억류 공관원 1명과 북한 공작원 70명 교환)의 비율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당시 3자 협상은 이 전 공사 등을 억류한 베트남측이 “북한이 한국 공관원 석방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조치와 계기가 없이 석방을 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만들어졌다.

외무부 아주국장으로 당시 회담에 참여했던 공 전 장관은 “이(북한 주장)는 브라질 게릴라와 브라질 정부간 내전에서 게릴라에 납치됐던 주브라질 스위스 대사 석방을 위해 그와 70명의 게릴라 부대원을 맞교환한 사례를 든 것”이라면서 “이에 대해 우리는 1대 1의 비율이 적당하다고 맞섰다. 이는 동독에서 체포된 미국 대학생 석방을 위해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을 인도한 예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후 2차 본회담 등에서 교환 비율을 1대 10으로 낮췄고 우리측은 1대 5로 상향, 최종적으로 1대 7이 교환비율로 결정됐다.

남북은 이후 교환자 명단 선정 작업에 들어갔으나 진전이 없었다고 공 전 장관은 전했다.

그는 책에서 “북한은 우리의 일괄 제출 요구에도 불구, 한 명씩 이름을 제시하며 교환 가능성을 타진했다”면서 “그러다 마치 큰 양보라도 한 듯 일괄 제시한 21명의 명단에는 우리가 북한에 제시한 (한국에 수감중인 북한 간첩 사형수) 8명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명단 확정을 위한 토의에서 북한이 의도한 것은 지난 30년간 남파한 간첩들에 대한 재고 조사였다”고 말했다.

이후 남북 협상은 1979년 종결됐으며 이 전 공사 등 억류 공관원은 북한과 베트남의 관계가 변하고 스웨덴이 중재 지원을 하면서 이런 교환 없이 1980년 석방됐다.

공 전 장관은 이 책에서 한일 국교정상화, 코리아 케이트, 동백림 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문세광 사건 등도 기록했다. 출판사측은 “책의 부제가 ‘안에서 듣고 보고 겪은 한국 외교 50년’인 것처럼 그는 ‘이승만에서 박정희까지’의 한국 외교사를 자신의 눈으로 담담하게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기파랑. 344쪽. 1만6천500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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