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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어록...“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김영삼 어록...“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이영준 기자
이영준 기자
입력 2015-11-22 11:00
업데이트 2015-11-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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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지병으로 서거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저항의식’을 담은 말들이 ‘직설화법’을 통해 표출되니 파괴력은 더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79년 헌정 사상 첫 제명 국회의원으로 기록됐다. 그때 김 전 대통령은 “순교의 언덕, 절두산을 바라보는 이 국회의사당에서 나의 목을 자른 공화당 정권의 폭거는 저 절두산이 준 역사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정치권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회자됐다. 특히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저항’을 대표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여겨졌다.

 또 대통령 당선 이후 “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은 시중의 유행어가 됐다. 1995년 일본 정치인의 ‘망언’에 대해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하는 김 전 대통령의 어록. 

 ▲10·26 뒤 나는 대통령이 돼 꼭 4년 단임을 하고 물러나고 싶었다. 그러나 83년 단식투쟁을 통해 대통령을 하겠다는 욕심을 완전히 버렸고, 이런 생각을 버리게 해 준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싶다.(1985년 한국일보 인터뷰)

▲노태우씨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군인 출신으로서 12·12 사태를 일으켰고, 일선 군부대를 빼내 쿠데타를 한 사람이다. 쿠데타 한 사람이 대권을 잡는 것은 군정의 연장이다.(1987년 관훈클럽 토론에서)

 ▲단식 이후 마음을 완전히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설산을 바라보니 더 비워야겠다는 아쉬움이 살아나는 것 같다.(1987년 지리산 등반 중 기자회견에서)

 ▲산행 도중에 많은 낙오자도 있었다. 민주화도 이와 같다. 민주화의 길은 그만큼 고행의 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민주화 산행에 있어서 최종 고지의 200m 전방에 와 있는 셈이다.(1987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은 축제 속에 이뤄져야 한다. 박종철군 사건으로 온 국민이 우울한 지금, 민정당의 6·10 전당대회에서 하는 대통령 지명대회는 초상집에서 춤을 추는 격이다.(1987년 국회의사당 단식농성 중 인터뷰에서)

 ▲선거혁명을 통한 민주화가 내 지론이었으나, 이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젯밤과 오늘 내내 생각한 끝에 이 정권을 완전히 타도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박정희 정권을 타도시킨 사람이다. 기필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타도할 것이다.(1987년 대통령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

 ▲신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눈물과 땀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른다. 우리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199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나는 대통령인 나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는 각오 아래 오늘 나의 재산을 공개하는 바이다.(1993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추석 때 떡값은 물론 찻값이라도 받지 않을 것이다.(1993년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자금을 받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새 정부에 있어 국가기강 확립의 대도(大道)는 하나도 윗물 맑기요, 둘도 윗물 맑기다.(1993년 국가기강확립 보고회의에서 고위공직자의 청렴성을 강조하면서)

 ▲우째 이런 일이….(1993년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과 관련해서)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1993년 신경제계획 민간위원과의 조찬에서)

 ▲요즈음 개혁을 하다 보니 환부 하나를 찾아내 도려내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한다. 32년의 권위주의 시대가 만든 ‘한국병’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실감한다.(1993년 주요 인사 접견에서)

 ▲너무 급히 달려도 위험하지만 달리다가 멈추면 쓰러진다.(1993년 모범수출업체 대표들과 오찬에서 개혁의 속도를 자전거 타기에 비유하면서)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진다.(1993년 금융실명제에 관한 특별담화문에서)

 ▲아직도 골프를 열심히 치십니까.(1993년 경제5단체장 회식에서)

 ▲군 개혁을 단행해 문(文)은 문답게, 무(武)는 무답게, 문과 무가 각기 제자리를 찾도록 했다.(1993년 계룡대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사랑을 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달리는 기차를 보고도 짖는다. 그러나 개가 짖는다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1994년 ‘개의 해’ 의미를 되새기며)

 ▲대통령으로서 정도를 걷고 당당하게 대도를 가겠다.(1994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시 분할론’을 부인하며)

 ▲지지율이 90%를 넘을 때는 너무 높아서 어지럽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민주국가에서는 반대도 있을 것이니,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1994년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분노와 저항의 시대는 갔으며, 투쟁이 영웅시되던 시대도 갔다.(1993년 서울대 졸업식 치사에서)

 ▲북한이 무모한 핵개발을 계속하며 서방의 인내를 시험한다면 반드시 자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1994년 민주평통 운영위원 접견에서)

 ▲보름 후면 남북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장래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키로 했는데 이 소식을 접하면서 아쉽게 생각한다.(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에)

 ▲태풍을 기다리는 것은 밤에 도둑이 들기를 기다리는 것 같지만, 태풍이라도 와 비가 내렸으면 한다.(1994년 극심한 가뭄에 대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남북한 사이의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다.(1994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로마제국은 외침이 아니라 내부 부패로 망했다.(1994년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 사건에 대한 엄단을 지시하면서)

 ▲국민 여러분의 참담한 심경과 허탈감, 정부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대통령으로서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1994년 성수대교 붕괴 관련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치인의 거듭된 망언에 대해)

 ▲저의 임기 중 대통령 중임제 도입이나 정경유착의 온상이 될 내각제 채택을 위한 개헌, 또는 어떤 형태의 개헌도 단호히 반대할 것이다.(1996년 신한국당 전당대회 치사에서)

 ▲북한이 국지전을 일으키면 전면전으로 갈 수 있다.(1996년 여야 및 국회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다.(1997년 차남 현철씨의 한보사태 이권개입 의혹에 대해)

 ▲최 의원 나요, 나. 빨리 일어나야지.(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 불명인 최형우 의원을 문병하면서)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갈 때도 생각해야 한다.(1997년 LA다저스 박찬호 선수 가족 초청 오찬에서)

 ▲국민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1999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회동에서)

 ▲아버지와 딸은 다르다.(2001년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를 평가하면서)

 ▲나도 23일간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2003년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방문해 단식 중단을 종용하면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2008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의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가 엉망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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