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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도 천국서 기뻐 뛰겠죠”

“그 이도 천국서 기뻐 뛰겠죠”

입력 2010-07-17 00:00
업데이트 2010-07-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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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간첩단사건’으로 사형당한 남편 30년만에 명예회복 시킨 한화자 씨

전남 진도군 임해면의 한적한 어촌에 살던 김정인(사망 당시 41세)씨.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아내와 함께 오순도순 살았다. 아내와는 5남매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였다. 1980년 8월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김씨는 끌려갔다. 아내와 어머니, 동생도 같이 연행됐다. 김씨가 1964년 외삼촌과 북한에 다녀왔고, 이후 간첩으로 활동했다는 혐의를 받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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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자 씨
한화자 씨
김씨는 “6·25 때 실종됐던 외삼촌이 갑자기 찾아와 일본으로 가자고 해 함께 배를 탔다. 그러나 배가 북한으로 가고 있어 애원 끝에 다시 돌아왔을 뿐”이라며 간첩질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자 그를 기다린 것은 모진 고문. 옆 방에서는 역시 고문을 당하는 아내의 비명이 들렸다. ‘아내라도 살리자.’고 결심한 김씨는 결국 허위 자백을 했고, 1985년 10월31일 사형이 집행됐다. 이른바 ‘진도 간첩단 사건’이다. 김씨는 억울하게 처형됐지만, 두 눈을 기증했다.

졸지에 홀몸이 된 부인 한화자(67)씨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잠이 오지 않아 밤새 동네 거리를 돌아다녔고, 밥도 먹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자식들이 간첩 자식, 미친년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겠구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어 정신을 차렸다.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해 식모살이, 공장 야간작업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고문으로 뼈만 남은 몸이었지만, 일하고 또 일해 자녀 모두를 대학에 보냈다.

김씨의 명예가 회복된 것은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사건이 조작됐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후 한씨는 남편을 대신해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16일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 성낙송)가 김씨에 대해 마침내 무죄를 선고했다. 1982년 김씨의 사형을 확정한 바로 그 법원이었다. 재판부가 10여분간 김씨의 재심 판결을 선고하는 동안 방청석 곳곳에서 흐느낌 소리가 흘러나왔다. 남편을 대신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한씨도 결국 고개를 떨구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재판이 끝난 다음에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한씨는 “그 사람도 천국에서 기뻐 뛸 것”이라는 말만 간신히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례적으로 A4 용지 2장 분량의 ‘판결을 맺는 말’을 덧붙였다. “법원이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 무고한 생명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것은 아닌가 회한을 떨칠 수 없습니다. 본 재판부 법관들은 과거 잘못된 역사가 남긴 가슴 아픈 교훈을 깊이 되새기며, 이 사건과 같은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각오를 새롭게 하겠습니다. 이 판결로 인해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의 넋이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글 사진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2010-07-17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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