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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턴 “고위층 비리, 사회구조적 문제”

이글턴 “고위층 비리, 사회구조적 문제”

입력 2010-09-06 00:00
업데이트 2010-09-0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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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마르크스주의자 방한…“기독교 국가이념화된 지 오래”

“개인 차원의 위선이 아니라 너무 믿는 사람과 너무 안 믿는 사람으로 양분된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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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저명한 막시스트 이론가인 테리 이글턴 영국 랑카스터대학 교수가 6일 프레스센터에서 ‘인문학적 성찰의 지속 가능성’이란 주제의 강좌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의 저명한 막시스트 이론가인 테리 이글턴 영국 랑카스터대학 교수가 6일 프레스센터에서 ‘인문학적 성찰의 지속 가능성’이란 주제의 강좌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출신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이자 문화이론가인 테리 이글턴 교수는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총리·장관 내정자가 줄줄이 사퇴하는 등 한국 고위층의 부적절한 행위와 관련해 이렇게 밝혔다.

 그가 말하는 ‘믿음’은 종교나 이를 초월하는 개념으로,좌파적 이상(理想)을 일컫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글턴 교수는 “자본주의는 종교뿐 아니라 믿음,신념 자체에 문제가 있는 사회다.돈을 잘 벌기만 하면 어떤 믿음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본주의 등)이념은 다른 형이상학에 기대어 작동하기 때문에 구조적 모순이 생긴다”고 부연했다.

 이어 “예를 들어 미국이 이슬람 근본주의에 놀라지만 사실은 놀라울 정도로 변질된 근본주의에 빠진 시민이 미국에 많다”며 “이는 서구와 친화적인 모든 사회의 문제로,서구는 믿음을 최대 무기로 하는 이슬람에 대응할 무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경우 ‘너무 믿는 사람’이 많은 반면 남한은 ‘믿는 사람’이 너무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글턴 교수는 진보세력의 윤리 문제에 대해 “좌파는 권력투쟁을 하는 동안에는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지만 최근 정치·사회적으로 쇠락하면서 자기가 믿는 가치에 대한 근원적 반성과 함께 타자에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며 “좌파,진보 세력이 더 윤리적이라는 건 어느 사회에서나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힘이 있는 동안에는 그럴 수 없지만 쇠락을 맞게 되면 철학적인 질문이 가능해지는데 신학은 이처럼 좌파의 생각을 풍부하게 했다”며 “신학과 윤리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글턴 교수는 또 “윤리를 얘기할 때 칸트처럼 당위,의무,책무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도덕,덕성으로 접근해야 어떻게 자기실현을 하고 타인과의 관계와 사회조직을 잘 꾸려나갈 수 있는 지,나아가 어떻게 개인과 사회가 함께 발전할 것인지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진보,보수 대신 ‘비극적 휴머니즘’과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이란 용어를 썼다.

 이글턴 교수는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은 현실에서 이어지는 미래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보고 현실은 그대로 두고 조금씩 고쳐 나가자는 것인 반면 비극적 휴머니즘은 기존의 것을 부수고 새로 만들어 가자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현재 상태를 부수고 해체할 때도 인류 발전에 대한 믿음,새로운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일랜드계 노동자 집안에서 로마가톨릭 신자로 자라난 이글턴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지식인 계보를 잇는 레이몬드 윌리엄즈의 제자로,문학과 문화,비평과 이론 등에 걸쳐 40여권의 책을 냈다.

 찰스 황태자로부터 ‘끔찍한 테리 이글턴’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신랄한 문체로도 유명하지만 명료한 논리와 객관적 시각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피에 굶주려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이슬람의 테러행위가 단순히 광적인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미국 등 서구사회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기독교와 관련한 비판도 나왔다.기독교가 지나치게 일찍 국가 이념화됐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가난한 자의 복음이념이었던 기독교가 이미 오래전에 부유하고 공격적인 사람들의 편으로 돌아섰다”고 비판했다.

 ‘이성,신념 그리고 혁명’(Reason,Faith,Revolution)이란 자신의 책이 한국에서 ‘신을 옹호하다’란 제목으로 번역,출간됐다는 소식에 “적과 맞서려면 적을 알아야 한다.신을 옹호한 게 아니라 무신론 주장을 하더라도 합리적으로 논리를 갖춰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고 설명했다.

 또 포스트 모더니즘을 정치적 패배주의로 비판해 온 이글턴 교수는 “데리다,푸코 같은 학자들에게서 배운 점도 있지만 그들은 어떻게 윤리를 마련할지 해답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글턴 교수는 “요즘은 사랑의 의미가 지나치게 축소돼 성적이거나 개인적,가정내 영역으로 한정됐지만 정치적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며 “넓은 의미로서의 사랑은 개인이 자유롭게 발전해야 모든 사람,사회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에서 언급한 이상사회도 사실은 이런 의미의 사랑이 바탕이 된,꿈과 희망이 열려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영국 랭카스터대학,아일랜드 국립대학,미국 노트르담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는 이글턴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고 고려대 영미문화연구소가 주관하는 2010 해외석학강좌를 위해 최근 방한,오는 10일까지 고려대와 교보문고,전남대,영남대에서 ‘신념과 근본주의’ ‘문학의 내면’을 주제로 강의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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